매거진 문장들

도 일주 라이딩기 : 20200607

by 전영웅

도 일주 라이딩을 해야겠다 다짐하고 부터는 걱정이 몰려왔다. 사고가 나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아픈 무릎은 괜찮을까,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을까.. 실제로 우측 무릎은 보호대 없이는 검도를 하지 못할 정도로 아팠고, 나는 이전에 두 번, 중간에 일주를 포기한 전적이 있었다.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도 일주 라이딩을 완료한 횟수는 총 5번이다. 머리 속에서는 이미 내가 달려야 할 곳의 지형과 경치들이 자전거 속도에 맞추어 뒤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기대 2, 걱정 8 정도의 뒤섞인 마음으로 혼란스러웠다. 혼란을 바라보는 마음 속 나는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약간의 서글픔도 찾아들었다. 이전 라이딩을 생각할 때엔 기대가 전부였고, 사고나 포기같은 걱정은 일어나지 않을거라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지금의 로드를 타고 달리다 갓길 분리화단에 제대로 부딪혀 나는 어깨와 손가락을 다치고, 로드의 앞바퀴 휠이 휘어버렸다. 손가락은 나았고 휠은 교체한 후, 트라우마를 제대로 날려버리겠다며 페달을 클릿페달로 바꾸고 클릿슈즈도 사들였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클릿탈착의 부담은 로드 위에서의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뭐가 잘 안 맞았는지 그때도 아팠던 무릎은 오래 달리면 아파오기 시작했고, 클릿슈즈 속의 발도 무척 아팠다. 내가 도 일주를 포기한 이유는 한 번은 무릎 때문이었고, 한 번은 맞지않는 클릿이었다. 이후로 일 년 반 정도 자전거를 피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다시 평페달로 교체했다. 5년 전 작심하고 거금을 들여 마련했던 지금의 로드는 훨씬 나은 스펙에도 불구하고 나와 제대로 도 일주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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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의 로드와 제대로 섬 한바퀴 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무릎이 조금 나아지는 듯 싶어 조금씩 타 보았더니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바로 결심했다. 도 일주를 예정한 휴일, 그 며칠 전부터 랜턴과 보조등을 충전하고, 휴대용 정비통을 채우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두고, 출발 전날 저녁 타이어 공기압을 맞추었다. 예정은 새벽 4시에 출발하려 했으나, 긴장 때문인지 너무 일찍 깬 후로 잠이 오지 않았다. 모두 잠들어있는 시각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 먹고, 장비를 챙겨 출발했다. 새벽 3시였다.


아마 나에게 라이딩 중 어느 순간이 제일 좋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새벽 라이딩이라 말할 것이다. 초여름 새벽의 청량한 공기, 덥지도 춥지도 않고 노출된 팔과 얼굴로 감싸드는 그 상쾌함. 앞으로는 LED랜턴이 멀지 않은 앞을 비추고, 뒤로는 붉은 점멸등이 반짝인다. 내가 여기 있고, 지금 달리고 있음을 타인들에 알리는 유일한 수단, 그러나 나를 알리는 데엔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치 않다. 새벽의 차없는 넓은 도로를 가장자리 한 차선을 조금 넓게 차지하고 달려도 부담이 없다. 이제 막 시작한 라이딩에 체력은 울끈하게 올라있고, 기대와 청량함에 페달을 움직이는 발은 가볍다. 모든 것이 완벽한 듯, 거침없다. 내 오른쪽으로 펼쳐진 바다에서는 새벽 해무가 올라오고, 그것이 내 얼굴과 팔을 적신다. 그 안에는 해루질 할 때 맡았던 바다의 냄새가 가득하다. 시원함, 청량함, 가벼움, 계속되었으면 하는 어둠 속 기대감.. 그 안에서 나는 지칠 줄 몰랐다. 뒤늦게 몰려 온 약간의 허기를 빼고, 나는 모든 것에 만족한 채 외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돌아서 모슬포항 앞까지 내달렸다. 3시간이 채 안 된 라이딩 끝에 날은 완전히 밝아졌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도일주는 해안도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구간별로 특징이 조금 있는데, 내가 사는 외도에서 시작되는 애월해안도로는 업힐과 다운힐이 여러번 반복된다. 한림에서 모슬포를 거쳐 사계까지는 비교적 평탄하다, 그러다가 사계에서 화순을 거쳐 안덕을 넘는 길은 가파르다. 중문에서 강정 법환 서귀포 시내 그리고 쇠소깍까지 역시 업힐과 시내구간으로 라이딩이 편하지는 않다. 위미를 지나면 남원 표선 온평 성산을 거쳐 하도 월정 김녕까지 평탄한 도로가 이어진다. 문제는, 그 때부터 체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쇠소깍을 거치면서 나는 무릎에 이상신호를 느꼈다. 문제는 아프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무릎 바깥쪽에서 찌릿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안장에 닿은 엉덩이가 쓸려서 아프기 시작했다. 오른 무릎은 신경쓴다고 보호대를 하고 시작했는데, 왼쪽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 무릎이 앞으로의 라이딩을 힘들게 하겠구나 싶었다. 시작은 체력으로, 힘든 업힐은 초반에 거의 지나왔고, 이제 남은 체력과 몸의 신호들을 관리하며 달려야 한다. 오전 10시, 나는 남원 해안도로의 초입에 있었다. 모슬포 이후로 50분 라이딩 10분 휴식을 유지하고, 보급은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을 활용했다. 이제까지 마신 게토레이만 해도 세 통이다. 냄새만 생각해도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표선에서 점심으로 컵라면과 에너지바를 먹고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파스와 붕대를 사서 아픈 왼쪽 무릎에 붙이고 보호대를 바꾸어 댔다. 오른 무릎은 면수건을 대고 붕대로 감았다. 쓰린 엉덩이는 어찌할 겨를이 없었다. 라이딩 전용 바지를 살까 하다가 그 우스꽝스런 디자인이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통증만 없으면 체력은 괜찮은데,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무릎과 엉덩이의 통증이 의지를 팍팍 깎아내리고 있었다. 바람과 날씨는 표선을 지나며 좋아지고 있었다. 바람은 동남풍에 산남은 안개가 조금 높이 깔렸다. 위미와 남원을 거치면서는 안개비도 내렸다. 바람은 심하지 않았으나, 동남풍 맞바람은 그래도 버거웠다. 라이딩을 할 때의 가장 큰 적은 맞바람이다. 표선부터는 북쪽 방향 라이딩이니 바람은 이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뒤에서 불어주면 반갑기까지 하다. 그런 기대로 라이딩을 이어갔지만, 온평을 지나니 바람보다도 드러난 햇볕에 힘이 들었다. 안개끼고 바람부는 산남을 지날 때, 산북은 화창하고 더웠던 것이다. 이 섬의 라이딩은 한 번에 네 개의 날씨를 경험하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


파스와 붕대 효과는 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도를 지나면서부터는 별 효과를 못 느꼈다. 클릿으로 달리는 젊은 친구들은 나를 추월하고 있었고, 삼삼오오 MTB를 타고 라이딩하는 친구들은 어디 들렸다 오는지 같은 구간에서 마주치기를 반복했다. 나의 체력은 이제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고, 하루 만에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은 여유보다는 기록이나 목표에 대한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페달을 꾸역꾸역 밟았다. 밟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을 애써 외면하고, 쓰린 엉덩이를 가끔씩 들어 자세를 고쳤다. 자세 때문에 목과 핸들바를 잡은 손목도 통증이 생긴 건 이미 예전부터였다. 몸이 아프니 자꾸 쉴 생각을 했다. 그런데, 쉬다보면 제 시간에 집에 돌아갈 수 없다. 기록이 어찌되었던 간에, 나는 50분 라이딩 10분 휴식을 철저하게 지켜나갔다. 그래야만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이딩 후반은 지침, 체력방전 이런 것보다는 그냥 처절한 고난의 행군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평소 라이딩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자세와 페달링의 불균형, 복장이나 장비에 있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때문일 것이다.


달리면서 차들과 두어 번의 갈등이 있었다. 로드는 도로교통법 상 차에 속한다. 그리고, 타이어가 가늘어서 아스팔트 도로 위가 최적이다. 제주에는 환상자전거도로라고 해서 파란 선으로 섬 한 바퀴 경로를 칠해 두었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개판이다. 도로와 갓길을 오가며 그어져 있고, 인도 위에도 칠해져 있다. 어떤 법률적 보호도 없다. 그리고, 갓길은 공사와 주차와 튀어온 흙과 자갈들로 범벅이다. 로드만을 위한 길은 있을 수 없다. 로드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길은 결국 차로이다. 도로 가장자리로 붙어 달리면서, 추월을 못하는 아주머니의 성화와, 나를 추월해서 서려던 버스와의 갈등이 한 번 있었다. 피할 수 없는 갈등 속에서 사고가 일어나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모든 고통이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마지막 구간인 제주시 구간에 접어들었다. 토요일 오후의 차 많고 복잡한 시내구간을 바닥을 느끼는 신체로 통과해야 했다. 게다가 왼쪽 무릎은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아 완만한 업힐도 힘든데, 시내구간에는 사라봉 능선을 오르는 업힐구간이 있다. 나는 일찍 그 구간은 포기했다. 거의 다 와서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그냥 그 업힐은 걷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오현고에서 사라봉 운동장까지 20분을 걸어 올라갔다. 로드를 타지 않았음이 아쉽지만, 이 구간의 포기는 지금도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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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저녁 6시. 총 시간 15시간, 라이딩 시간만 12시간, 총 구간 227.3km. 평속 19km/h. 이 정도면 내가 생각했던 기록으로 만족한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과 동네친구들이 모여 완주 축하 세레모니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맥주세례를 받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동네 조카들이 축하의 상장을 수여해 주었다. 무릎통증은 최고조였고, 나는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해 냈다는 성취감으로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하자면, 나는 안 한다고 할 것 같다. 총 여섯 번의 도 일주 완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로드로 해보려 했던 성판악과 1100도로 업힐은 단념했다. 무릎에 무리가 너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은 조금 남는다. 이후로는 로드를 처분하고 MTB로 갈아탈까 하는데, 그 전에 이 녀석과 함께 어디를 좀 더 달려볼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달리다보면, 내 앞에 주어진 구간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어느새 내 뒤에 놓여진 과거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달렸을 뿐이고, 그저 달리는 행위로 걱정과 두려움은 지나가 버렸다. 달리는 나는, 그저 현재에 열심일 뿐이다. 쓸데없거나, 너무 단순한 깨달음을 얻었다. 사는 것도 비슷한 것 아니겠냐 하는 깨달음. 그저 열심히 살아가면, 앞에 놓인 어려움이나 고난은 어느새 뒤로 가 있음을 종종 깨닫는다. 중요한 건 자세였다. 현재의 열심을 너무 고통스럽게 겪지 않을 자세와 준비. 나는 준비가 약간 덜 된 자세와 몸으로 현실같은 라이딩을 조금 고통스럽게 이어나갔다. 하루만에 섬을 한 바퀴 일주한다는 자체가 훈련이 안 된 사람에겐 무리이긴 하지만, 라이딩을 하며 겪은 고통은 자체로 내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항상 무언가 조금 부족한 모습으로 현실을 조금 어렵게 겪어나간다. 그래도, 나는 내 뒤에 놓인 과거들에 뿌듯함을 느낀다. 나쁘지 않은 삶 만큼, 나쁘지 않은 도 일주 라이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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