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들

코로나19시대, 어느 동네의사 소고; 20200821

by 전영웅

covid19에 대처하는 K-방역은 대체로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 나 역시 대체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점은 존재한다. 선제적 대처라는 명목으로 확진자의 대략적인 신상과 구체적인 동선을 공개한다. 이러한 방식은 의도여부와는 상관없이 낙인과 불안을 만들어 낸다. 어떤 확진자에게는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여행했다는 명목으로 지자체가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했다. ‘낙인과 불안’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에게 내려앉는다. ‘혹시 내가 확진자가 되어 내 신상과 동선이 공개된다면..’ 이라는 불안은 모든 삶 모든 관계를 극도로 위축시킨다. 이것이 K-방역의 한 축을 담당한다. 교묘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치사한 기분을 피할 수 없다.


감염병에 대한 방역과, 감염병 자체로 유발되지 않고 시스템이나 정책으로 유발되는 ‘낙인과 불안’이 낯설은 모습으로 교집합을 만들었다. 따로 나누어 생각하면 별다른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가지가, K-방역이라는 구조 안에서는 교묘하게 겹치며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이 독톡함은 어쩌면 국가의료체계의 부실 또는 부족에서 기인하는지 모른다. 정부 입장에서 감염병 방역은, 정권을 유지할 것인가 또는 몰락할 것인가와 긴밀히 연결된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10%도 되지 않는 공공의료 능력으로 covid19를 상대해야만 했다.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듯이, 지난 covid19에 의해 대구는 거의 의료붕괴 수준이었다. 음압병실, 중환자실 등이 갖추어진 공공의료시설과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의료인들의 자발적 봉사’ 였다. 판데믹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확진자와 중환자는 국가 입장에서는 재앙일 것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의료 수용능력으로 상황을 통제하는 데에는, 선제적 방역과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낙인과 불안’을 잘 활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사랑제일교회와 8.15 광화문집회발 확진자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에 격리시설의 절대적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짐에서, 우리의 공공의료 현실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체계없이 흘러온 한국의료의 역사에서 공공의료는 한 때 30% 정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다 민영화와 신자유주의 정책 등등에 의해 공공의료는 10% 이하로 떨어졌다. Covid19 사태는 그런 현실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만들어주었고, K-방역은 조금은 변태적인 방식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런 와중에, 정부는 장기적으로 이런 현실을 개선해보겠다며, 우선적으로 의사인력의 증원계획을 내놓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익숙한 누군가들의 주장이 정부의 정책으로 나오니 그리 새롭지는 않다. 목적은 공공의료의 적정선 회복인데, 이미 자본시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진 의사들의 수를 늘린다고 해서 공공의료가 회복이 될지는 미지수다. 의료접근성이 우수한 우리나라에서 의료의 문제는 시장성에 기반한 의료분포의 불균형이고, 시장성에 매몰되어 필수의료분야가 고사직전까지 내몰렸다는 점이다. 게다가 공공병원이나 공공의료분야로 유도할 의료인력에 대한 대우가 시장성에 걸맞게 책정될 수 있는가도 문제다. 돈되는 피부성형 분야가 아닌,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의 필수의료분야에의 인력유도방법 및 공공의료에의 유도방법없이, 전문의 취득하면 3년 정도를 취약분야나 취약지역에 묶어두겠다는 식의 발상만 내놓았다. 대체 어떤 ‘대가리’에서 그런 발상이 나왔는지 사뭇 궁금하다.


공공병원 정책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공공병원 설립이나 중소병원의 적극적 국가매입 등등의 구체적인 계획없이 공공의료시설 확충이라는 애매한 말로만 의료인들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니,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현재의 시스템 변화없이 의사만 늘리려는 계획은 실효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의료의 시장성을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밥그릇 싸움만 유발시킨다는 비판을 낳는다. covid19와 K-방역으로 유발된 의료정책계획은 당연히 ‘의료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막무가내로 몰아세우는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는 의사들의 자세에서 ‘의료의 공공성’개념이 희박한 점은 매우 아쉽고, 전략에 있어 치명적 약점이다. ‘공공의사는 세금도둑’이라는 어느 의사의 피켓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내가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고 전문의가 되기까지 국가가 나에게 도움을 준 건 십원 한 푼도 없었다. 내가 의사가 되어 병원을 관리하고 저수가와 싸우며 수익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아 버린 것도 국가였다. 그런 입장에서 ‘의사는 공공재’라는 정부관리의 말은 정말로 화가 나지만, ‘의료는 공공재’라는 국가원칙은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따라서, 싸움의 기저에는 ‘공공의사는 세금도둑’이 아니라, 나라가 공공의료를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데, 현 정부가 발표한 앞으로의 의료정책이 정말 합리적인 방법인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비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저항의 공감을 얻고,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의사간의 감정싸움만 느껴져 안타깝다.


다시 말하지만, covid19 판데믹과 조금은 변태적인 K-방역에서 시작된 의료시스템의 고민은 결국 의료의 공공성 회복이다. 그리고, 의료인력이 정말 필요한 상황이지만, 자본시장에 던져져 정말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개 동네의사의 어떤 괴리감 역시 한국 의료체계의 민낯이다. 많은 것이 답답하고 힘든 이 상황에서 촉발된 정부와 의료계의 싸움, 그 사이 어느 즈음에 서서 복잡한 마음을 어설픈 머리로 조금 길게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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