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by 전영웅

할망은 자기 침대에 모로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치매는 점점 더 심해져서 몸의 움직임마저 잠식했고, 식사는 거의 하지 못하는데도 혈당은 더 이상 통제되지 않았다. 나는 보호자에게 어머님은 이제 임종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렸다. 이대로 편하게 집에서 임종하시게 하는 것도 효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며칠 후 들리는 소식으로는 보호자는 가만 두는게 죄스러워 할망을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했다. 병원에 실려간 할망은 그대로 중환자실로 들어갔고, 탈수와 당뇨와 현저한 인지장애로 여러 검사와 함께 콧줄, 소변줄, 중심정맥관을 거치했다고 했다. 할망은 잠시 의식을 차리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만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보호자는 다시 고민했다. 중환자실에서 언제까지 지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비용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몸에 여러 관을 거치한 상태로 요양병원으로 전원하기로 결정했다. 요양병원으로 간 할망은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다 임종할 지 모를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가만히 두면 편안하게 임종했을 할망을 병원으로 보낸 보호자? 집에서 편안하게 임종하시길 권한 나? 할망을 보자마자 온 몸에 관을 꽂고 다양한 의학적 처치를 한 병원의 의사? 쉽지 않다. 다만 각자의 위안과 이득이 있을 뿐이다. 불편한 마음에 위안을 얻은 보호자와, 할망의 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한 병원 의사의 노력, 그리고 나의 일말의 아쉬움. 그리고, 결정적으로 평정과 자연함을 상실해버린 할망이 있었다. 마치 전쟁이 벌어진 뒤 폐허가 되어버린 전쟁터처럼, 모두의 감정과 행위의 중심에서 의미없는 상실만 남아버린 할망의 몸뚱아리.. 어느 누구에게도 무어라 할 수 없는 존재의 황폐..


어느 누구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의미는 우리를 감싼 구조의 문제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쉬이 상상할 수 없는 삶, 그래서 나다운 죽음을 구상할 수 없는 입체적 빈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사회의 법령들 인식과 제도들..


이 책은 그런 문제들의 배경을 역사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리고, 생애 말기돌봄의 영역에서 오래도록 있어 온 경험으로 이후의 미래를 제언한다. 사실 우리는 죽음과 생애 말기의 삶에 대한 문제를 자주 접해왔다. 단편적인 문제제기에 시선이 분산되어 유기적인 접근을 하지 못했던 우리의 인식에, 체계적인 정리와 통합 그리고 그 안의 핵심을 분명하게 짚어낸다. 다양한 형태로 경험해야 할 우리의 생애 말기의 삶은 어떻게 존중되고 어떤 방식으로 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안락사 존엄사를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현실이지만, 그 말들의 한없는 가벼움들을 적확하게 지적하고 반성하게 한다. 인간의 존엄이란 그리 쉽거나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독백처럼 이어지는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진지함을 요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한없이 가벼워지는 세상에, 존엄사 안락사 생애말기 같은 중요한 아젠다들이 너무 쉽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야 할 때다. 나의 생애 말기의 삶과 죽음이 가볍거나 비루해지지 않도록, 축제같은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할망의 임종이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편안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난 알 수 없다. 무어라 할 수도 없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이 상황 속에 당사자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 의문만 남을 뿐이다. #나는_친절한_죽음을_원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