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금덩이

by 달 산

두어 달 전, 잠시 한국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엄마는 사 남매를 불러 모으더니 주황색 작은 주머니 하나씩을 내밀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노랗게 반짝이는 작은 금덩어리였다.

예상치 못한 귀한 선물에 우리 남매들은 모두 기뻐했고, 그 모습을 보는 엄마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나는 엄마를 더 웃게 해드리고 싶어 장난스레 금덩어리를 이마 위에 올리고 사진을 찍어 보여드리기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나 좋으냐"라고 물으셨고, 나는 당연히 너무 좋다고 아이처럼 대답했다. 엄마도 너희들이 좋아해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누군가 들으면 엄마가 부자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 금덩어리는 엄마가 알뜰살뜰 푼돈을 모으고 불려 온 성실함의 결정체였을 것이다. 우린 전혀 몰랐으니...


​안 그래도 금값이 치솟는 요즘, 수중에 금 몇 돈 없는 처지가 내심 아쉬웠던 터라 엄마가 사두었던 그 금을 사 남매에게 공평히 나누어 주신 것이 그저 감사하고 든든했다.


​여든의 연세에도 뼈마디가 쑤시는 것 말고는 건강하셨던 엄마였다. 그런데 작년 이곳 비엔나에 다녀가신 뒤부터 엄마의 몸 이곳저곳에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면 누구나 겪는 귀 먹먹함이 한 달 넘게 가시지 않더니, 이내 어지럼증과 폐렴, 천식까지 겹쳐 기어이 대학병원의 신세를 지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사 남매에게 금덩어리를 나누어 주셨던 건, 퇴원 후 기력이 간신히 회복될 무렵이었다.


​엄마에게 친구 같고 아들 같은 큰사위는 금덩어리를 받은 보답으로 일본 여행을 제안했다.

큰언니 부부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 엄마는 오랜만에 마음이 들떠 행복해하셨다. 하지만 비극은 여행 둘째 날부터 시작되었다.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어지럼증이 심해졌고, 패키지 일정은커녕 숙소 밖을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언니는 낯선 타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채 앓아누운 엄마를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AI 통번역기로는 진료를 해줄 수 없다는 현지 병원의 거절에 가이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보낸 그 지옥 같은 시간들. 언니에게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표는 '그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니, 그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겨우 여행일정이 끝나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본인 때문에 여행을 망쳤다는 미안함과 급격히 무너진 체력 앞에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 듯했다.


천식 때문에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들은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며 엄마의 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금덩이를 나누어 주던 날, 엄마가 우리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엄마 나름의 정갈한 '정리'였다.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을 미리 떼어준 것이었다.

우리가 철없이 웃으며 노란 금덩어리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엄마는 소리 없이 긴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던 셈이다.


​손바닥 위에 놓였던 그 작고 노란 덩어리가 오늘따라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엄마를 잃을까 너무 걱정된다. 지독한 약의 부작용 대신, 평온한 숨결이 엄마의 밤을 지켜주기를. 나의 기도가 엄마의 텅 빈 마음을 온기로 채워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행히 엄마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며 회복 중이시다.

타국에 있는 나는 그저 전화기 너머로 마음을 보낼 뿐이지만, 엄마가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지면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가만히 나열해 본다.


​[엄마가 기운 차리면 하고 싶은 일들]

​​

-​엄마 침대에서 수다 떨다가 같이 잠들기

-​사 남매 다 모여서 웃고 떠들며 돌아가신 아빠 흉보기

-대한민국 ​아름다운 곳으로 꽃구경 가기

-동네 목욕탕 하와이 가서 소금방 찜질 함께하기

-시골 장터에 다니며 맛난 거 사 먹기

-건강이 허락한 다면 그토록 가고 싶어 하셨던 몽골에 가서 늦도록 밤하늘의 별 보기



뒷모습 -나태주


​뒷모습이 예쁜 사람이 참으로

마음이 예쁜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자기의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

뒷모습은 오로지 남에게만 보이는 모습

​어머니, 오늘 당신의 뒷모습이

왜 이리 작고 눈물겨운가요

​평생을 앞만 보고 자식들을 향해 걸어오시다

이제는 한 줌 햇살 아래

구부정하게 서 계신 당신의 뒷모습

​그곳에 제가 미처 읽지 못한

사랑의 문장들이 가득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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