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런 날, 저런 날이 있다.
'이런 날’의 화창함이 무색하게, 예고 없이 찾아와 마음을 눅눅하게 적셔버리는 '저런 날'. 오늘이 딱 그랬다.
며칠째 해도 못 보고 우중충하고 음습한 날씨의 연속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햇살이 일주일 내내 정원에 머물며 봄날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 놓지 않았나.
이름 모를 새들이 대추나무 위에 찾아와 맑은 음성으로 지저귀고, 길고양이는 담장을 넘어와 비밀스러운 산책을 즐기다 가던 평화로운 오후. 하늘은 시리도록 맑았고 바람의 결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잔디를 깎고 정원 한편에 들깨 심을 자리를 보아 두었다.
당장이라도 씨를 뿌리면 며칠 내로 파릇한 생명이 돋아날 것만 같아 설레던 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박이 쏟아지고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결국 세탁기 근처를 서성이던 겨울 패딩을 다시 꺼내 입으며, 내 기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두운 무채색으로 물들었다.
기분이 가라앉으니 소통의 바퀴도 삐걱거린다. 분명 같은 언어를 쓰는데 대화는 자꾸만 평행선을 달린다.
예전에는 우리 집의 유일한 직관형(N)인 남편만 외계어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들과도 말이 통하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외계인이었나 보다.
축축한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도 눅눅해졌건만, 가족들은 내 마음의 습도는 안중에도 없이 차가운 논리의 잣대만 들이댄다.
남편과 아침부터 서먹한 기운을 주고받다 설거지를 마치고 도망치듯 방으로 올라왔다.
자기 전, 자존감 한 조각이라도 채워보고자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그때 늦게 귀가한 큰딸이 들어왔다. 차려놓은 저녁 밥을 맛있게 먹었다는 딸의 다정한 목소리에 슬쩍 혼잣말인 척 운을 띄워 보았다.
"어쩜 화장을 지워도 이리 이쁠까, 나는."
평소 화장 전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던 딸이었다.
그 따뜻한 긍정 한마디에 기대어 기분 좋게 잠들고 싶었다.
당연히 "그러게, 엄마 예쁘네"라는 다독임이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 칭찬이 아니라 짧고 날카로운 "칫" 소리였다.
"왜? 뭐가?"
"엄마는 어쩜 그렇게 이랬다 저랬다 해?"
딸의 예리한 지적이 시작됐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딸이 민낯을 칭찬해 줄 때마다 나는 쑥스러움에 "아니야, 지우면 엉망이야"라며 손사래를 쳤었다.
괜찮다고 할 땐 아니라고 부정하더니, 이제 와서 예쁘지 않냐고 묻는 엄마의 모순을 딸은 차마 눈감아주지 못한 모양이다.
결국 꾹꾹 눌러 담았던 속상함이 터져버렸다.
그냥 "응"이라고 한마디 해주면 안 되냐고, 넌 어째 엄마 말에 알았다고 해줄 때가 없냐고 기어이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도 내 모순을 안다고...,
그래서 더 서러운 거라고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말이다.
결국 나는 '쌈닭'이 되어 스스로를 방에 감금시켰다.
말을 늘 곱게 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내 논리의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니, 나는 졸지에 돌봄이 필요한 '금쪽이'가 된 기분이다.
우리 집엔 금쪽같은 내 새끼들이 사는 게 아니라, 오은영 박사님 같은 내 새끼들과 남편이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살고 있다.
오늘처럼 '저런 날'엔 나만 홀로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 된 것 같은 밤이다.
얼른 이 비가 그치고,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춰주는 햇살 내리쬐는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벼르던 들깨도 기분 좋게 심고, 가족들의 따뜻한 칭찬에도 "응, 나 원래 예뻐"라며 뻔뻔하게 화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