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날

by 달 산

며칠 전 눈이 펑펑 쏟아졌다.

​ 하얀 세상 속에 마당의 나무 가지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마치 축복처럼 느껴지던 아침이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예쁜 털모자와 장갑을 꺼내 끼고 마당으로 나섰다. 강아지처럼 눈 위에서 춤을 추고 사진을 남기며, 나를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 착각에 빠뜨렸던 설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낭만은 짧았고 현실은 두터웠다.

​어스름해질 무렵, 눈은 정강이가 푹푹 빠질 만큼 내렸고 메인 출입구인 대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쌓여버렸다. 가족들의 귀가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제대로 된 눈삽도 없어 쓰레받기 하나를 들고 무작정 길을 내기 시작했다.

​길을 만드는 작업은 묘한 희열이 있었다. 내가 퍼내는 대로 길이 만들어지는 창작의 기쁨이랄까.

​그러다 문득 담 너머를 보았다. 부지런한 옆집 이웃들은 벌써 번듯번듯하게 사람과 자동차가 드나들 자리를 만들어 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매끈한 길을 마주한 순간, 내 손목의 통증보다 '내 집 앞이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가족이 들어올 길'을 내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희미해졌다.

​현관 입구 쪽을 공들여 넓게 치우느라 정작 가족들이 통과해야 할 대문까지는 몇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기운을 다 쏟고 있었다. 절로 나오는 낑낑 소리와 훌쩍이는 콧물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깨어났다.

​'거창하고 멋진 넓은 길 아니라, 당장 대문을 열고 발을 디딜 오솔길이 먼저였구나.'

​본질을 놓친 채 남의 시선으로 힘을 쏟던 나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남의 시선으로 내 마당의 넓이를 가늠하느라, 정작 내가 머물 집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을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늘 나보다 남이 먼저인 삶을 살고 있는 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1시간 반을 매달린 끝에야, 가족들이 무사히 들어올 만한 삐뚤삐뚤하고 소박한 길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 길을 따라 퇴근한 남편과 아르바이트를 마친 딸이 안온한 집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타인의 감탄을 자아내는 넓은 광장이 아니라, 내가 편히 숨 쉬며 걸을 수 있는 나만의 오솔길을 먼저 닦아보려 한다.

​2026년 To-do list

​1번. 내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진짜 나'를 위한 길 찾기


그 길의 끝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낸 나에게 첫 안부를 건네본다.
"오겡끼데스까,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