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듯이 살아야지.
유튜브 속 그녀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명징했다.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삶의 끝자락을 마주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일까.
가수 양희은 씨는 이제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명품 가방을 비우고, 언제든 떠날 사람처럼 가벼운 천 가방 하나를 든 채 '텅 빈 듯이' 산다고 했다.
그 말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내 마음의 수면을 흔들었다.
어느덧 50대 중반, 거울 속의 나는 낯설다.
분신술을 부린 듯 번진 흰머리와 중력을 이기지 못해 처진 눈가,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신체의 통증들.
발바닥이 지면을 밀어내는 것조차 버거운 날이면, 몸은 나에게 나직이 속삭인다.
"이제는 좀 가벼워져야 한다"라고.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서러운 억울함이 고개를 든다.
누군가는 다 채워보고 나서야 비우는 삶이 홀가분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크게 채워본 적이 없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가족의 빈 곳을 메우느라 나의 옷장은 계절을 잃어버렸다.
세월을 따라 두툼해진 상체와 변해버린 체형을 가려줄 변변한 옷 한 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제야 나를 위한 '채움'을 막 시작하려던 터였다.
이 채움은 과연 욕심일까? 아니, 나는 이것이 '나를 대접하는 마지막 의식'이라고 믿는다.
양희은 씨가 명품 가방을 비운 것은 그것이 더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 '무거운 껍데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지금 내가 나를 위해 고르는 것들은 수년간 비어있던 내 자존감에 부어주는 따뜻한 온기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무거운 명품이 아니라,
아직은 낯선 50대의 나를 다독이고 여전히 순수함이 남은 나의 얼굴을 환하게 감싸줄 '나만의 천 가방'을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언제나 떠날 듯이 산다는 것, 그리고 텅 빈 듯이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결핍이 아니다.
나를 괴롭히던 불안과 타인의 기대 같은 '무거운 짐'은 과감히 비워내되, 그 빈자리를 내가 정말 좋아하고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들로만 '밀도 있게' 채우는 일이다.
잠 못 드는 밤, 두세 시간마다 깨어나 마주하는 적막 속에서 나는 다짐한다.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양희은 씨의 명품 가방처럼 기꺼이 내던지기로.
대신 그 자리에 지금의 나를 충분히 사랑한 흔적들을 채워 넣기로 말이다.
나를 충분히 아껴본 사람만이 미련 없이 가벼워질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진정한 의미도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언젠가 떠날 존재이기에,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가장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사랑 말이다.
나는 오늘 나를 위해 채운 편안한 옷을 입고, 가장 가벼운 발걸음으로 '곧 떠날 여행자'처럼 집을 나선다.
내 마음은 비워내어 고요하지만, 나를 향한 애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