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흉내

by 달 산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막내까지 대학에 입학하고 모두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집엔 다섯 명의 어른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물론, 겉보기에만 그렇다.


사실 나만 해도 여전히 ‘어른 흉내’를 내며 수십 년을 살아왔다.

내 나이 때의 엄마는 꼭두새벽에 어쩜 그렇게 벌떡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사 남매의 도시락까지 챙겼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둘째 아들은 부다페스트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주말마다 우리가 사는 비엔나 집에 온다.

그럴 때면 나는 아들의 일주일치 도시락을 만들어 주지만,

학교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새벽 타임으로 끊어두면 정말 미워죽겠다.

나는 새벽잠이 많아서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반갑긴 해도, 이럴 땐 아들이 한 주쯤 건너뛰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애 한 번 안 하던 큰딸은 요즘 들어 부쩍 이성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엔 한 친구와 자주 연락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녀석과 통화하느라 가족 식사 자리를 자주 비우고,

우리에겐 무뚝뚝하기만 한 딸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릴 때면, 절친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괜히 서운해진다.


우리 집 막내는 반대로, 정신연령이 제일 높은 편이다.

가끔 내가 공공장소에서 ‘아줌마 모드’로 돌변하면

타박하거나 채근하곤 한다.

그럴 땐 도대체 어떤 어른 흉내를 내야 할지 난감하다.


아직도 난 치과 가는 게 무섭고, 떡볶이가 제일 맛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으면 어린아이처럼 으쓱해지고,

유튜브에 빗소리를 켜놓으면 어린 시절 한옥 툇마루에서

단잠 들던 그때로 돌아간다.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천둥 번개까지 동반된 빗소리를 켜고 잠드는 게 제일 좋다.


그런 내가 세상 점잖은 남편의 정숙한 아내로,

세 아이의 이해심 많은 엄마로,

지인들에게는 편안한 이웃으로,

부모님께는 이제 보호자가 되어

오늘도 애처롭게 ‘어른 흉내’를 내며 파이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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