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원에 단물이 많고 부드러운 중국 배나무가 있다.
올해도 가지가 땅에 닿을 듯 열매가 많이 열렸다.
작은 나무에 가지가 많아서 오백 개는 족히 되는 듯하다.
하지만 약을 하나도 안 치니 무당벌레, 노린재, 풍뎅이, 개미 등등 수많은 종류의 벌레들이 채 익기도 전에 먼저 맛을 보고 찜을 해놓는 바람에
우린 그들이 남겨준 것만 감사히 먹을 수가 있다.
맛있는 배도 내어주지만 이 나무는 그 풍성한 잎과 가지들의 자태가 멋있어서 내심 우리 집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바비큐를 할 때나 커피 타임 때도 함께 그림이 되어주는 멋있는 나무다.
이 집이 내 소유는 아님에도 정원의 배나무를 많이 사랑하게 되었나 보다.
얼마 전 주인분이 오셔서 배를 다 따서 바구니에 담으시고는
전기톱으로 그 탐스러운 배나무를 바리깡으로 밀어놓은 것마냥 가지를 다 자르고 가셨다.
중국인이라 소통도 못 하고 그냥 어버버 하면서 보내드리고는 참 속이 상했다.
비엔나에 몇 해를 살면서 늘 바보처럼 멍청비용도 많이 지불하며 살고 있지만
이날만큼 속이 상한 적도 없었다.
잘려나간 가지들이 내 자식들 마냥 서러웠다.
모두 성인이 된 삼 남매와 부부가 이곳 비엔나에 살게 된 지 5년 차가 되었다.
다섯 식구가 지지고 볶으며 늘 붙어 있다 보니
제발 혼자만의 시간을 소원했었다.
다섯 식구 중 한두 명은 늘상 무언가 어려움이나 불만이 있고 나는 그 마음들을 항상 함께 나누다 보니 중년이 된 지금은 버거움이 느껴진다.
이제 굵은 가지, 잔가지 모두 쳐내고 남아 있는 배나무를 보니 세 아이들이 독립하고 덩그러니 외롭고 쓸쓸히 남아 서 있는 내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내가 힘들어할 때면
‘가지 많은 나무'라며 위로해 주던 말들이 27년간 내 자부심이었나 보다.
비엔나의 이 스산하고 깊은 가을을 몇 번 보내고 나면 저 배나무같이 초라하고 핼쑥한 진짜 나를 만날 것이 두렵지만 한편 새로 난 가지들로 풍성한 잎과 맛있는 오백 개의 배를 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내가 너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