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살 되던 해, 운전면허증을 따고 곧이어 하얀색 슈퍼티코를 샀다.
그 작은 자동차가 어찌나 예쁘고 마음에 쏙 들던지.
하지만 몇 달 동안은 우리 집 입구 골목에 세워 두고, 슬쩍 외면하며 다녔다.
얼마 전엔 ‘주부라면 백이면 백 다 만족한다’는 에어프라이기를 벼르고 별러 샀다.
그런데 당분간 우리 가족의 식탁엔, 그 기계를 사용할 만한 메뉴가 계획에 없다.
내 젊은 시절의 슈퍼티코처럼, 이 기계와도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새 옷을 사도 한동안 묵혀 두었다가 입는, 그런 독특한 성격의 나.
결혼 15주년이 되던 해, 남편이 생애 처음으로 내게 명품백을 선물했다.
그토록 갖고 싶던 브랜드의 가방이었는데, 나는 또 그걸 바로 들지 못했다. 더스트백에 곱게 넣어 선반에 올려 두고 한 번씩 쳐다보고 만져보기만 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꺼내보니, 백 옆부분이
허옇게 바래 있었다.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땐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 이건 내게 맞지 않았던 물건이었나 보다.’
무언가를 오래 묵히는 내 습관은
새것에 대한 낯섦 때문인지,
혹은 스스로를 천천히 준비시키는 과정인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도 이제 한 달이 되어간다.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 속에 마음은 한껏 부풀었지만,
나는 여전히 브런치와 약간의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아니, 내 안에서 묵히는 중이다.
묵히는 과정을 거치면, 오래된 나의 것처럼 편안해진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내게 과분할 만큼 좋은 일이 생기면
나는 어김없이 이 과정을 거친다.
브런치도 그렇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새 글 알림이 뜰 때면
예전과는 조금 다른 떨림이 찾아온다.
언젠가 내 글도 그렇게 잘 익어,
브런치 작가를 꿈꾸는 남편과 아들에게
따뜻한 자극이 되어줄 수 있을까.
[서랍 속에 묵혀뒀던 이 글을 발행하는 오늘 남편이 브런치 작가에 지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