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여름방학은 반만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밭에서 따 먹던 싱그러운 맛으로 기억된다. 가난했던 외갓집이었지만 대자연은 풍요로웠다. 개울가에 널브러진 큰 바위 위에 널어놓은 옷처럼 몸을 누이고, 칠흑 같은 하늘의 별을 보던 밤. 손으로 빚어 또각또각 썬 칼국수 꼬투리를 화롯불에 구워 먹으며 저 멀리 뜬 달을 보았다. "저 달을 엄마도 보고 있겠지." 그리움에 젖어 잠든 밤이면 부끄럽게도 이불에 지도를 그리곤 했다.
입이 짧고 까다로워 김치조차 못 먹던 셋째 딸인 나를 위해, 할머니는 '호화로운 간장밥'을 내어주셨다. 고소한 깨소금과 참기름, 구운 김을 부셔 넣은 그 간장밥은 오직 나만을 위한 최고의 반찬이었다. 깨를 심을 때 나무 막대기로 30cm 간격을 맞추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나를 '천재'라 불러주던 외할머니의 목소리. 여기까지가 내가 간직한 여름방학의 조각들이다.
배 한 알과 맞바꾼 아들
사실 나는 언니 둘과 남동생 사이에 태어난 셋째 딸이다. 그 시절 셋째 딸이 대개 그렇듯 그리 축복받지 못한 채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 첫 칭찬의 기억조차 남동생에게 '엄마의 자궁 터를 잘 팔았다'는 황당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가만히 떠올려 보니 나는 제법 영악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친할머니는 대를 이을 아들인지 궁금해 내게 물으셨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높은 배나무를 바라보며 당돌하게 답했다.
"배 하나 따주면 말해주지."
삼대독자 집안에 아들이 귀했던 시절, 할머니는 기꺼이 긴 작대기로 배를 따주셨다. 나는 그 달콤한 배를 손에 쥐고 정답을 던졌다. "아들!"
엑스트라가 아니었던 시간들
그 '예언'이 적중해서였을까. 그때부터 나는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언니들과 달리 화사한 분홍 치마를 입었고, 엉덩이까지 길게 땋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큰언니가 부르는 구구단 노래를 곧잘 따라 해 '영재' 소리를 들으며 용돈을 받던 기억도 선명하다.
나는 늘 내가 집안의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 인생이라 생각하며 사랑을 갈구해 왔다. 그런데 오늘 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니, 내 마당엔 이미 나만을 위한 간장밥과 분홍 치마, 그리고 수많은 칭찬이 가득했음을 깨닫는다.
나는 사랑을 갈구하며 자란 아이가 아니라, 의외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