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사례, 세 가지 이론, 그리고 더 많은 질문들
연말이면 한 해를 정리하면서 반복해서 읽는 책이 있다.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제임스 올워스, 캐런 딜론 지음, 이진원 옮김, RHK). 혁신이론으로 유명한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경영이론을 삶에 접목하여 강연했던 내용을 그의 제자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자가 정리한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뭘하며 살아야 할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는다. 이 책이 가진 덕목이라면 삶에서 갖는 고민을 과학적 이론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얼마전 다른 책에서 접한 흥미로운 사례와 연결지어 생각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1. 사례 - <일상생활연구소>(제현주, 금정연 지음)에서 읽었던 훕훕베이글(hoophoop.co.kr) 박해령 대표의 사례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주말에 할 게 없어 심심해하던 그는 주말에는 학원에서 빵만드는 법을 배우고, 1년 동안 퇴근하면 매일 빵을 만들며 지냈다. 대기업에 다니다 중소기업의 단가를 후려치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별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홍대앞 단골빵집에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빵집주인의 제안으로 구석에 3평짜리 베이글 가게를 열게 되었다. 권리금이 500만원, 월세 150만원, 오븐과 냉장고 등으로 1천만원, 대략 총 2천만 원이 들어갔다고. 베이글만을 전문으로 만들던 박해령씨의 가게는 홍대앞 빵순례길 코스로 포함이 될 정도로 유명해진다. 그러던 중 빵배달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으로부터 입점 제안을 받게되고, 빵집을 하는데 장소가 꼭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집이 있는 광명으로 가게를 옮기게 된다. 3평이던 가게는 6평이 되고, 13평으로 늘어났다. 평소 빵을 너무 좋아해서 직장 다니던 시절, 휴가를 내고 도쿄에 베이글집만 투어를 한 적도 있다고. 하루에만 베이글 1천개를 판다는 이 집은 11시부터 8시까지 영업을 하고 주말에는 문을 닫는다.
2. 이론 1 - 뭘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슨텐슨 외 저자들은 '동기이론(motivation theory)' 혹은 '2요인 이론(two-factor theory)'을 설명해준다.
여기에서 핵심은 일에 대한 만족과 불만족이 하나의 스펙트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에는 두 개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는 돈과 보상, 지위, 고용안정, 직무 조건 등과 관련된 위생요인(hygiene factor)이다. 위생요인은 불만족과 관련되는데, 그 뜻은 위생요인이 충족된다고 자신의 일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불만이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스펙트럼은 동기부여요인(motivation factor)으로 개인적 성장이나 도전적인 일, 성취감, 의미,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 등으로 이것이 충족될 경우 일에 대한 만족감은 지속될 수 있다.
박혜령대표의 경우 전 직장에서 위생요인에 대한 불만이 컸다기 보다는 동기부여요인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이는 퇴직이라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자기만의 빵집을 하면서 이제는 전직장에서 벌던 것보다 더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요인에서 보다 큰 만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이론 2 - 크리스텐슨은 의도적 전략(deliberate strategy)과 창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다. 단순화시켜 말해보면 의도적 전략이란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며 창발적 전략이란 예상치 못한 문제나 기회를 만나 전략이 수정되는 것을 뜻한다. 크리스텐슨은 위생요인과 동기부여요인 모두를 충족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 방향으로 의도적 전략을 취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삶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기회에서 실험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박대표의 경우에도 홍대 단골 빵집 주인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수중에 있던 3천만 원을 다 쓸 때까지 한 번 실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4. 이론 3 - 전략은 종이 위에 혹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고 실현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에 자원을 할당할 때 비로소 실행된다. 박해령씨가 빵집을 처음 열었을 때, 그는 이미 1년 동안 거의 매일 퇴근 후 빵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자신의 돈을 써서 빵만드는 학원에서 공부를 했고, 휴가 동안에는 도쿄에 있는 베이글집 투어를 하기도 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시간과 돈, 관심을 빵만들기에 집중해서 할당해오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많이하고 실제 자신의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걱정만 하는 경우가 많지만, 박혜령 대표의 경우는 전략을 '(종이위에) 세우기'보다는 '실행'하는 데에 많은 투자를 했다. 크리스텐슨은 "갖고 있는 자원을 할당하기에 따라서 당신 인생이 원래 바라던 것과 똑같거나 아니면 의도한 것과 아주 다르게 변할수도 있다" (105쪽)라고 말한다.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읽고 훕훕베이글 박혜령 대표의 사례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면서 이렇게 또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었다.
"뭘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의 리스트는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정리한 질문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위생요소]
1. 나에게 중요한 위생요소(돈과 보상, 지위, 고용안정, 직무 조건 등)는 무엇인가?
2. 그 위생요소를 충족시켜주는 일은 무엇인가?
3. 나는 위생요소 충족이 일과 관련된 불만족을 줄여주는 조건이지 만족을 이끌어내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가?
[동기부여요소]
4. '의미있는 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에게 다가오는 일의 종류는 무엇인가?
5. 그 일은 나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하며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는가?
6. 그 일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는) 내가 원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가? (achievement, rather than competition)
7. 그 일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을까? 달리 말해 그 일을 위해 나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위생요소 vs. 동기부여요소]
8. 위생요소와 동기부여요소가 만나는 일은 무엇인가?
[의도적 전략 vs. 창발적 전략]
9. 위의 8번 질문에서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동기부여요소가 존재하는 곳에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실험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나?
[자원할당]
10. 나는 동기부여요소가 있는 영역에 나의 시간과 관심, 돈을 가능한 만큼 투자하고 있는가?
6년째 반복해서 읽고 있는 이 책은 내게 답보다는 질문을 준다. 그래서 이 책을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참고: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제임스 올워스, 캐런 딜론 지음, 이진원 옮김, RHK, 2012)
<일상생활연구소> (제현주, 금정연 지음, 어크로스)
박혜령 대표에 대한 인터뷰는 아래 두 개의 글을 참조:
(회사를 떠난 사람들 12, 직장생활연구소 손성곤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