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LAH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왔다. 방송영상과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했다. 든든한 울타리였던 학교는 동시에 진절머리 나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과 정말 많이 싸웠다. 은근한 신경전은 기본이요 파열음이 날만큼 소리를 지르며 싸운 적도 있다. '폭력'이라는 단어는 meme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쏘아댔다. 예술에 취한 몇몇의 사람들은 종종 실수를 저질렀고 지레 겁먹어 숨는 어린 청춘답게 비겁한 방식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지성을 총동원하여 변명 해댔다. 한 치의 여유도 없던 나는 끝까지 네 잘못을 알렸다! 앙칼지게 몰아세웠고 그 끝은 파국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겐 예술에 취한 주정뱅이였으려나? 이제는 기억도 가물해져 아릿한 감상만 남은 그 시절 그곳을 한시라도 빨리 탈출해야 했다.
돈이 대안이었다. 상경과 동시에 독립했으므로 나를 잘 부양하기 위해선 어차피 벌어야 했다. 근로장학생을 신청하고 이와 병행할 수 있는 모든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내 카페, 매점, 영어 강사, 행사 스텝 등 그중 최고는 재택 영상 편집 아르바이트였다. 그렇게 연을 맺은 곳에 취직했고 학교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인간군상에 속하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자주 언급하게 될 L과 A를 여기서 만났다. L은 사내 업무 효율 증진을 위해 스카우트된 개발자였고 A는 영상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에 관심이 많은 경영학도였다. 만남에 경우의 수가 있다면 거의 0에 수렴하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L과 나는 딱히 교류가 있진 않았다. 업무가 전혀 겹치지 않았고 조금 겹치더라도 한두 마디 정도 나누고 나면 정적이 흘렀다. A는 여기저기 호기심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더니 마침내 적성을 찾았고 그 길로 퇴사해버렸다. 이야기 끝...이 나도 어색하지 않은 흐름이지 않은가?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우리에게는 계속 친해질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나는 L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A는 근처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나의 하우스 메이트가 되었다.
하루 반나절은 L과 나머지 반나절은 A와.
나를 중심으로 셋의 친밀도는 엑스 제곱의 그래프처럼 상승했다.
영상편집은 절대적으로 들여야 하는 시간이란 게 있다. 많이 해야 많이 번다. 조금 하고 많이 버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 일차함수 그래프의 삶에 점점 질려가고 있었다. L의 옆에 앉아 있다 보니 개발 이야기를 하나씩 듣게 되었는데 '솔루션'이란 게 만들어 놓으면 알아서 돈을 번단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 회사에서도 솔루션이란 걸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디어는 이렇다. 영상 편집자들이 자주 쓰는 트랜지션들을 몽땅 모아 산돌구름 같은 메신저 형태로 구독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설령 사업화가 어렵더라도 회사 내부 편집자들끼리 잘 쓰면 되니 로우리스크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이템은 회사의 우선순위에 밀려 관심 밖으로 벗어났다. 대신 내 머릿속 일 순위로 자리 잡았다.
누구나 조금 일하고 많이 버는 삶 꿈꾸지 않는가? (아님 말고.) 나는 온 염원을 담아 원하고 또 원한다. 경제활동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를 얻고 좋은 풍경을 찾아다니며 작업하는 삶...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 그 솔루션이란 게 내게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단 말이지? 그러면 그게 뭔진 모르지만 일단 난 솔루션을 해야겠어. 그때부터 IT와 관련된 키워드를 서칭하며 모든 기사를 읽었다. 모르는 건 출근해서 L에게 물어봤다. IT회사라고 하면 구글, 구글 그리고 구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배달의 민족, 쿠팡 등이 IT 회사라는 것이었다. 2020년에 들은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걸 왜 몰랐지? 내가 '개발 세상'에 눈을 뜨게 되자 L은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아기처럼 정보를 흡수했다. L과 나누는 정보들은 나를 통해 A에게 전달되었다. 호기심 대마왕 A가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리는 이를 동기화 과정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술분야엔 기술로 개선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차차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동안 막연히 불편해야 해서 불편하겠거니 싶어 넘겨왔던 것들에 대해 L에게 물었다.
"영화제 정보들을 한 번에 볼 수 있게끔 모아 놓는 웹페이지 만들 수 있나요?"
"네."
"영화제 일정도 한 번에 볼 수 있게 캘린더로 만들 수 있나요?"
"네."
"그냥 다 되나요?"
"네."
자유의 몸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건가 ㅜ 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침 퇴사도 했겠다. 각자 경제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스몰 프로젝트로 솔루션을 만들어 보자고 L과 A에게 제안했다.
이때는 몰랐다.
산꼭대기에서 눈을 굴리면 산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