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대하여
15살인 제스는 부모님과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지병이 있던 할아버지가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병원으로부터 할아버지가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는다. 제스와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할아버지가 살던 고향에 가서 며칠 지내다 오기로 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제스는 신비로운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서사시 같은 작품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은 장문으로 된 시'라는 말이 떠올랐다. 장편 서사시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소설이다. 인생을 강과 바다로 비유하는 것은 문학작품에서 색다른 것은 아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강과 바다의 이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날카롭고 깊은 주제를 담고 있다.
|인생의 끝에 서있을 리버보이
“예전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야. 저항해봐야 소용없단다. 우리는 그걸 받아들여야 해."
약간은 냉소적인 제스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통달한 말을 꺼낼 때 동화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듯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서 어린 시절 고향 친구를 떠올렸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정리하러 다시 돌아온 고향에 할아버지의 친구는 그곳에 있었다.
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은 할아버지의 리버 보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리버보이를 찾고자 했다. 손녀 제스의 도움으로 고군분투하며 소년을 찾던 할아버지는 결국 그 소년을 찾았고 <리버보이>가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한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으며, 이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강과 같다. 그러나 그 끝에 다다르면 그런 변화와 영원의 소실이 무색하리만치 아름다운 바다로 우리는 모두 흘러간다. 그러므로 그런 변화나 영원하지 못함에 대한 슬픔을 우리는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렇기에 그저 지금 이 순간에 호흡하는 내 삶과 영혼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흘러가다 죽음에 다다르면 존재 누구에게나 살아있는 리버보이는 나타나지 않을까? 변하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할아버지의 말처럼 죽음은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뿐이지.
|쥐지도 펼치지도 않고 힘을 뺀
"단 하루도, 1분 1초도 미래나 과거를 생각하는 데 허비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집중하라고."
제스의 할아버지는 노쇠하고 병든 몸이지만 그 눈빛에 젊은 시절 못지않은 패기와 열정이 살아있다. 삶의 마지막 그림을 그리며 온 힘을 쏟아붓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도 이는 잘 나타난다. 이처럼 현재를 사는 사람은 뒤돌아볼 일이 없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할아버지의 말은 현재를 살라는 말과도 연결된다. 흘러가는 현재에 지나친 무게를 싣지 않는 동시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쉽지 않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의 시끄러움을 붙잡아두는 것 역시 우리 자신이다.
몸에 힘을 좀 빼면 강물에 슬슬슬 몸이 잘 떠내려 갈 것이다. 그처럼 힘 빼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게 결국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다. 과거나 미래를 붙잡지 말고 흘려보내는 것 말이다. 그것을 흘려보내는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삶에 뛰어들 충만한 용기
소년은 거침없이 폭포 속으로 뛰어들었다.
(중략)
바다로 가는 일, 소년은 그 일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몸을 던졌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바통 터치하듯이 리버보이가 제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소년은 강물에 뛰어들어 바다가 시작되는 곳으로 헤엄쳐간다. 제스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이미 뛰어든 소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용기를 내어 소년의 뒤를 따라 강물에 뛰어든다. 뒤따라 열심히 헤엄쳐 바다로 나아갔다. 소년은 그렇게 바다와 한 몸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제스는 한층 성장한다.
나는 ‘꼭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욕심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 무엇이 내 마음에서 우러난, 내 영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었다면 오늘 나는 이렇게 공허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자신을 속이면서 살았다. 즉 나의 삶에 온전히 나를 던져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리버보이인 소년이 강물로 거침없이 다이빙을 하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제스는 머뭇거리기만 할 뿐 뛰어든 소년의 뒤에 남아서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내 소년의 뒤를 따라서 강물에 뛰어들었고 나는 소년과 제시를 보며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절대 하지 못한 것, 앞으로도 자신이 없을 듯한 삶에 대한 용기, 그 순수함이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정리
죽음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죽음에 다다르는 최후의 과정은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 있으나, 죽음 그 자체는 또 다른 성장의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은 '도약' '성장' '성숙' '해방' 등의 여러 가지 긍정의 표피 아래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조장하는 소설인 것은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 모두는 그 아름다운 바다로 가닿을 것이기에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그 바다로 가는 여정인 강물의 삶을 피하지 말고 용기 있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해낸 소설이다. 사실 강물을 바라보는 제스의 눈을 통한 자연 묘사에서도 충분히 느껴질만치 삶은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소설이다.
이 책을 추천해주고픈 사람
: 나처럼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인생을 되새기게 해주는 동화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바쁘게 휘리릭 넘어가버리는 삶속에서 마치 염증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 삶의 무게를 망각할 수있다. 잠시 심호흡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