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6
대학생 시절 나는 낭만을 멀리했다. 나에게 그것은 치기 어린, 어쩌면 젊음을 낭비하듯 뛰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낭비해 보기에는 나는 고칠게 많았다. 낭만적인 시간을 가질 마음 한편의 공간이 없었다. 그때는 내가 못하는 것들을 찾아 이겨내는 시절이었다. 책과 멀었던 나는 독서를 취미 삼았고, 내향인으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외향적이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노력했지만 나의 부족함은 여전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그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새로운 경험과 낭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나 싶다.
올해 초 시간이 많아질 무렵, 나에게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들이 없었다. 비워둔 시간을 채우기 위한, 확신이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회고 모임에 들어가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썼고, 러닝을 다시 시작해 주 3회씩 뛰며 10km 마라톤을 나갔다. 이러한 행동들은 켜켜이 변화를 주었다. 글을 더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뒤 글쓰기 모임 모집 글을 우연히 보고 신청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조금은 나에게도 낭만이 찾아오고 있다고 느꼈다. 그 낭만은 나의 자발성에, 그리고 변화에 있었다.
대만 여행을 갔을 때, 도자기 샵을 여럿 구경했다. 투박한 찻잔, 정교한 그릇들을 둘러봤다. 나라면 집에서의 쓸모를 생각하고 구입하지 않았을 도자기 머그를 하나 골랐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물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머그잔을 비행기에 실어 가져왔다.
나는 선물의 가치를 그 사람이 이 선물을 사용하며 느낄 편리함이나 효용에 두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이 이런 효용도 좋지만 선물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러닝을 하며 묵은 감정을 쓸어내고, 여행을 하며 새로운 감정을 불어넣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삶의 많은 이유가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만 여행에서 구매한 머그잔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그 물건의 쓸모보다는 그 안에 담긴 마음과 낭만을 전하고 싶다는, 나에게는 아주 새로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 감정이 나를 조금 더 풍요롭게 했다.
대학 시절, 나는 낭만을 치기 어린 낭비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낭만을 삶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쓸모없는' 물건을 사고, 묵은 감정을 씻어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효용만을 따지던 과거의 나에게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의 감정들을 알아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