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타임과 AI

2025.09.17

by 이월

나는 영화 어바웃타임 좋아한다. 이 영화에 빠졌을 때는 생각날 때마다 돌려보곤 했다. About Time이라는 제목에 맞게 영화의 소재는 시간여행이다. 주인공 팀은 시간여행이라는 능력을 알고 나서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시간에 대해 자유가 생긴 팀은 소심했던 전과 다르게 자신감을 얻는다.


AI로 대표되는 요즘 시대의 기술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슈퍼파워 같다. AI를 처음 접하고 나서 나의 생활 방식도 달라졌다. 찾고 싶은 정보가 있을 때 이제는 단어로 이루어진 검색어 보다 질문을 작성해 궁금한 점을 묻는다. 문서를 정리할 때면 정리해야 할 문서를 마구 드래그해서 집어넣고 원하는 결과물을 열심히 설명한다. 전보다 짧은 시간을 들이고도 결과물을 얻는 경험을 하니 뭐든지 할 수 만 있을 것 같다.




팀은 시간여행 능력을 여러 방면으로 시험해 본다. 첫사랑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시간을 수 차례 돌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보고 마음에 들도록 행동한다. 하지만 무수한 시간여행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는 걸 실패하고 단념한다.


나도 AI와 다양한 것들을 시험해 봤다. 잘 풀리지 않는 고민을 털어내 보기도 하고, 작문을 하도록 시켜서 원하는 글을 뽑아내보기도 한다. 엄청난 기능들이지만 나에게 꼭 맞지 않은 답변으로 실망도 한다. 적응되지 않는 부분은 일하는 순서가 완전히 반대라는 것이다. 원래라면 FM대로 이론-실습-적용의 프로세스를 밟아왔는데 지금은 일단 답을 내리고 그 답을 검토하며 학습한다. 이런 반대로 하는 방식이 잘 적응되지 않고 가끔은 나를 바보로 만드는 느낌이 든다.




시간여행에 많이 익숙해졌을 때쯤 팀은 아버지의 말대로 하루를 2번씩 살아본다. 첫번째 하루는 짜증 나던 업무들이 가득하고, 바쁘고 피곤하던 일상들이었다. 2번째 겪는 하루에서 그 일상 중의 보석 같은 순간들을 찾아 누린다. 그렇게 순간들의 귀중함을 누릴 수 있도록 시간여행을 사용하게 된다.


많은 AI를 거쳐가는 정신없는 과정이 지나고 최근에는 AI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답을 내고 후에 검토하는 방법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질문을 좀 더 잘하게 됐다. 며칠 전에는 AI를 사용해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PC용 업무용 타이머를 만들었다.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다. 노트북 화면의 한편에는 AI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사실 내가 어바웃타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팀이 시간여행을 그만둔 순간이다. 무수한 시간여행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그 시간을 오롯이 느끼고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AI를 쓰는 걸 그만둔다는 건 아니다. 사실 AI는 이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잘쓰고 있다. 하지만 AI를 쓰면서 쉽게 답을 얻는 것을 넘어서 나의 삶의 밀도가 깊어졌으면 한다.

AI가 해준 디자인이 왜 맘에 안들까. 디자인 용어를 찾아보고 디자이너의 시선이 어떤지 찾아본다. AI가 작성해 준 글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나의 글쓰기가 좀 더 말끔해지도록 질문해 본다. 나의 자유는 삶의 밀도를 올리려는 태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것들은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에게 살아 남아있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 어바웃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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