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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Feb 28. 2018

철구, 인터넷 방송의 저속함과 통쾌함 사이

BJ 철구의 방송은 저속하다. 반박할 수 없는 팩트이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철구는 “욕설과 선정적 언사”를 일삼으며, “청소년에게 유해성을 끼치는” BJ이다. 여기에 그가 지금까지 내뱉은 몇몇 무뇌 발언, 간장 사건, 상식 외의 행동이 덧붙여 언급된다. 하지만 단순히 저질이라는 표현으로 철구의 인기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7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즐겨찾기 버튼을 누른 이유는 조금 다른 데 있다. 철구 방송에는 단순히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엽기적 차원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기발함이며, 어느 누구의 방송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신선함이다. 그것은 방송만 생각하는 인간의 머리 속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유래하는 새로움이다. 물론 철구 방송이 유발하는 값싼 웃음은 구체적으로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도 일견 옳다. 하지만 그 값싼 즐거움이 왜 그렇게 호소력을 지니는지 생각해보는 일도 꽤나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영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담론


어떤 대중문화 현상이든 대중의 지지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90년대 서태지, 00년대 아이돌 가수의 경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주체를 모방하는 다수의 대중은 그 영향력을 확인시킨다. 개인 방송 BJ는 현재 대중문화에 큰 지분을 차지한다. 유명 BJ의 인기는 여느 연예인 못지않다. 유명세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10대, 20대에 끼친 영향으로만 따지면 철구는 단연 으뜸이다. TV에 얼굴을 비추는 연예인 누가 철구만큼 젊은 세대의 언어에 영향을 미쳤는가. 철구의 말투는 약 15년 전 귀여니의 이모티콘 이상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철구는 이른바 급식체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커뮤니티 게시판 어디를 다니더라도 글에서 그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하물며 동네 PC방에 들리더라도 급식 친구들에게서 그 영향력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졌구연 지렸구연~ , 앙 기모띠, 인정? 어 인정, 응 아니야~ 등 급식체와 그 변화형의 사용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방송을 켰다하면 최소 시청자 만명에, 조금 흥한다 싶으면 수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하니, 그 수치는 때로 종편 방송 시청률과 엇비슷하다. 인터넷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철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터넷 방송은  현대인의 삶의 양식에 침투하고 있다.


BJ의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에 관한 담론은 활발하지 않다. 인터넷 방송과 관련된 논의는 대체로 규제와 관련된 것이다. 아프리카 TV, 트위치의 인기 BJ가 왜 젊은 대중 층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왜 수많은 시청자가 ‘철구업’과 ‘보이루’를 외치는지 그 원인 진단은 쉽게 찾기 힘들다. 그들의 방송은 동네 재래시장 신발가게의 만원짜리 구두처럼 언급할 가치도 없는 싸구려로 인지된다. 인터넷 방송은 조금은 마이너한 취향으로, 그 방송을 보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특정 BJ를 향한 사회 주류의 경멸적인 시선은 BJ의 이름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 껄끄럽게 한다. 대도서관처럼 밝고 긍정적인 미소로 가득한 BJ는 논하기에 큰 무리없지만, 욕설을 일삼는 인물에 대한 분석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논의를 하면 그 방송을 보는 저질로 낙인찍힐까 두렵다. 특히 공중파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은 인터넷 방송의 폐해를 집중 보도하면서 대중의 부정적 인상을 확신으로 강화시킨다. 몇 달 전 1일 별풍선 결제 한도 문제를 다루며, 시청자 한 명이 하루에 6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별풍선으로 결제했다는 뉴스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방송의 폐해를 보도하는 뉴스는 모자이크 처리된 철구 방송을 1순위 자료 화면으로 활용한다. 중학생에게 대야 채로 간장을 퍼붓는 퍼포먼스는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영상이다. 팩트가 무엇이었든 철구는 기행을 일삼는 인간 그 이상은 아닌 것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언행, 선비스러움에 대한 부정


개인 방송에서 컨텐츠를 위해 투입되는 예산은 제작 시스템을 갖춘 공중파 예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신 공공성에서 탈피한 사적 성격의 인터넷 방송은 폭넓은 자유를 보장받는다. 마치 대기업 상업 기획 영화보다 독립 영화 제작에서 연출 개인의 자율성이 침해받지 않는 것처럼,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는 저렴한 퀄리티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개인 방송의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철구는 인터넷 방송의 빛과 어둠을 모두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정 포맷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방만한 자유에 따른 온갖 병폐를 거울처럼 비춘다. 철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이든, 그 반대쪽이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방송의 외연을 확장시켰다는 사실이다. 이전 어느 누가 돼지를 방구석에 데려다 놓고 푸드 파이터를 진행한다는 발상을 떠올렸는가. 이전에 누가 감히 방송 중에 시청자에게 삿대질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철구는 인간의 비열함과 추잡함, 더러움과 염치없음을 방송의 전면에 내세운다. 이건 일종의 발상의 전환으로, 철구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은 여기에 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이예준은 이상적인 BJ의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그로를 끄려는 관종 욕구, 수십 시간의 진행에도 텐션을 유지할 체력, 방송 흐름을 읽는 천부적인 감각, 돌발적인 상황을 방송의 일부로 포섭시키는 순발력, 수만 명의 시청자의 여론에도 휩쓸리지 않는 멘탈, 철구식 운영이라 일컬어지는 시청자와의 밀당 스킬을 지니고 있다. 보이는 라디오, 먹방, 겜방 등 어느 장르에서도 최정상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 특히 굶주린 야생 짐승을 보는 듯한 게걸스러운 먹방은 방송의 백미이다. 매 순간 시청자에게 웃음을 제공하려는 창조적인 잔머리와 광란의 퍼포먼스는 TV 어떤 예능보다 직접적인 자극을 제공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철구는 기승전결의 이야기 형식을 적극 방송에 끌어들이는 유일한 BJ이다. 그는 무한도전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시청자에게 어필했던 요소를 자기 만의 방식으로 소화시킨다. 게임 방송을 하더라도, 그는 단순히 게임만 하지 않는다. 괜시리 같은 게임을 하는 다른 BJ에게 시비를 건다. 예컨대 실력면에서 저 하늘 위에 있는 택신 김택용에게 시비를 걸고 원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 후, 며칠에 걸쳐 연습하고 도전해 극적인 승부를 보여준다. 배틀그라운드를 할 때도 고수를 찾아다닌다는 무협지 컨셉으로, 이야기의 큰 줄기를 구성한다. 승부에 대해 혹시나..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최대한 그 기대를 충족시킨다. 먹방과 푸파도 마찬가지이다. 짜장면 먹방도, 10그릇 최단 시간 처리 기네스북에 도전한다. 푸드파이터의 경우에도 극단적인 벌칙을 걸어놓고 진행한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적재적소에 주작을 끼얹으면서, 승부를 꽤나 아슬아슬하고 스릴 넘치는 것으로 연출한다. 시청자는 진행에서 어중간한 재능의 한 개인이 노력을 통해 발전하는 모습과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본다. 미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시청자는 인간 승리의 휴먼 드라마를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서나 광대는 겉으로 젠체하면서 속으로는 비틀어진 성욕과 탐욕으로 가득한 기득권 층을 조롱했다. 오늘날 공중파 TV에서 이러한 광대의 역할은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원인이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들의 존재가 매체를 점유하는 윗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 층의 시선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광대의 모난 면도 다듬어질 수밖에 없었다. 매체의 자유를 보장받은 철구의 포지션은 부분적으로 광대의 것과 유사하다. 광대로서 철구는 최소한의 체면도 내다 버린다. 오로지 웃음을 원하는 시청자는 그에게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는 선천적으로 개그맨이기 때문이다. 전쟁 뒤 폐허를 연상시키는 작은 공간에서 그는 인간의 예의범절을 모두 져버리고 스스로를 희화화시킨다. 별풍선을 주면 온갖 행위 예술을 선보이고 즉흥적으로 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 컵라면과 만두를 먹기도 한다. 여기에 조금의 수치심도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그러한 모습에 자부심을 갖는다. 수많은 이들은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기에 열광하는데, 이 행위가 그들이 몸서리치게 역겨워하는 선비스러움, 즉 기성세대의 위선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뻔한 욕구를 내면 속으로 감추는 엄숙주의는 대한민국에서 일종의 미덕이다. 사실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하지만, 가면을 쓰고 아닌 척 시침 떼는 일. 타인에게서 그 욕구를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천박하다고 혀를 차는 근성. 뒤에서는 질펀하게 즐길 걸 다 즐기면서, 남의 즐김에 관해서는 손가락질하는 기질. 자연스러운 욕망을 금기시하고 제도적으로 규제해 부정하려는 선비스러움. 철구의 말과 행동에서는 그러한 위선을 찾을 수 없다. 그는 많은 경우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정직하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원하는 걸 원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별풍선을 원하면 원한다고, 기모찌하면 기모찌하다고 말한다. 꼰대질에 물린 젊은 세대가 철구의 행위에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철구의 방송에서는 기성에 알랑거리는 아부가 없다. 철구 방송에는 조금의 선비스러움을 용납하지 않는 데서 오는 상쾌함 같은 게 있다. 철구는 자본주의가 만든 괴물이지만, 분명 보고 있으면 통쾌해지는 괴물이다. 





수위에 조금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터넷 방송 예능의 본질은 TV 예능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든 웃음을 유발하는 데 초점이 있다. 공중파 관계자는 시청률을 원하고 아프리카 BJ는 별풍선을 원할 뿐이다. 다수의 공중파 방송 예능은 현재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EBS화되어 아무런 빅재미도 제공하지 못하는 무한도전 같은 예능은 이제 생명력이 다했다. 어떻게 인간이 썰렁 개그로 한 시간을 때우는 개그콘서트, 얘들 말장난 수준의 토크쇼만 보고 살 수 있는가. BJ들은 보다 노골적인 조크를 듣고 싶은 순간에 그것을 즉시 들려준다. 특히 철구는 인간의 밑바닥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인간의 저열한 욕구를 언제든지 만족시켜준다. 인터넷 방송은 TV방송이 반영하지 못하는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젊은 세대가 지향하는 가치의 얼굴을 반영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좋게 말하면 가식 없이 솔직하다. 과거 아프리카 TV 서수길 대표의 발언, 누가 “뭐라고 하든 x까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아프리카”라는 말은 논란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단순히 PD수첩을 공격하는 발언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매체의 핵심을 잘 꿰뚫은 통찰력 있는 말이다. 필터링되지 않은 솔직함은 곧 인터넷 방송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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