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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Jan 08. 2020

천문, 깝깝하다 깝깝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오늘날도 변함없이 울림을 갖는 “봄날은 간다”의 대사처럼, 허진호 감독의 작품 세계는 영원할 수 없는 야속한 사랑을 그려내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화면 속 연인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했다. 설렘으로 가득한 연애의 시작은 백반처럼 담백했고, 불현듯 찾아온 이별은 죽음만큼 인정하기 힘들었으며, 실연의 아픔을 딛고 성숙해진 내면은 비 온 뒤 굳은 땅을 보는 듯했다.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감독의 관심사가 사랑에 대한 탐구였다면, 사극 “천문”에서 그 탐구는 기대와 어긋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세종 24년, 임금의 가마가 행차 도중 붕괴된 안여사건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장영실이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진 배경을 추적해 나간다. 사건의 배후를 살피는 카메라는 약 20년간 지속된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에 가까이 다가간다. 세종이 얼마나 장영실을 각별히 아꼈으며, 장영실이 자신의 역량을 인정하고 공직에 등용해 준 세종에게 얼마만큼 충정을 바쳤는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두 남자의 친분은 스크린을 훈훈하게 덥힌다. 


영화의 초반부는 세종과 장영실의 우애로 힘차게 약동한다. 코끼리 물시계 그림으로 맺어진 인연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서적으로 끈끈하게 둘을 연결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다. 장영실이 손수 만든 자격루가 작동하고, 혼천의 제작에 세종이 직접 손을 보태며, 천문 관측 기구인 간의를 통해 조선의 독자적인 절기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함께 나누는 발명의 기쁨은 임금과 천민이라는 신분적 차이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전개는 중반 이후로 실타래가 꼬인 것처럼 보인다. 간의가 완성되고, 훈민정음으로 국면이 전환됨과 동시에 둘의 관계는 흐지부지된다. 영화는 차츰 멀어지는 둘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대신, 안여사건의 진실과 정치적 알력 다툼이 주가 된 조선 초기의 시대상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조선의 천문의기를 불태우도록 압박하는 명나라 사신과 세종의 기싸움, 영의정으로 대표되는 사대부와 세종의 견해 차이, 명나라로 후송되는 장영실과 정남손의 감정적인 대립까지, 산만하게 나열되는 사건들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어조를 띤다. 


“천문”은 때로 주말 저녁 KBS 1TV에서 방영했던 최수종 주연의 사극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사극물의 전형적인 구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단순화된 주요 등장인물은 충신 또는 간신으로 구분된다. 세종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이천과 장영실은 정의를 대변하는 반면, “네 이놈!”을 연발하는 정남손과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에 집착하는 사대부는 꼰대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기득권에 불과하다. 진지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삽입되는 유머도 그와 유사하다. 특급 조연 김원해, 임원희, 윤제문, 삼인방의 코미디 앙상블은 마치 개그콘서트의 해묵은 콩트를 보는 듯하다.


2019년 세종대왕의 정치적 리더십에 주목했던 영화는 “나랏말싸미”가 있었다.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을 창제하는 단계를 면밀히 살핀 “나랏말싸미”와 “천문”은 일견 유사한 측면을 보이는데, 작품의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에서 관객이 흥미를 갖고 즐길만한 요소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 매체에서 신선한 이야기는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궁금하게 하면서 관객의 주의를 화면에 고정시키지만, 최근 한국 상업 영화에서 이는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천문”도 그렇다. 장영실과 훈민정음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줄다리기를 설명하는 동안 드라마의 추진력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비록 균일하지 않은 서사에도, “천문”은 작은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최민식, 한석규 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 플라토닉 사랑의 실체에 근접한다. 세종과 장영실의 정신적인 사랑은 순백처럼 맑고 투명하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장면이 몇 있다. 궁궐 앞에 나란히 누운 채로 함께 북극성의 위치를 짚어볼 때, 임금의 침실에서 촛불을 배경으로 즉석으로 만든 별자리를 함께 감상할 때, 그리고 장영실의 심문을 앞두고 허름한 곳에서 남몰래 해후할 때, 배우의 해맑은 표정과 촉촉한 눈빛은 마치 환각에 도취된 것처럼 몽환적이다.


“천문”은 장르적으로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에 속하지만, 배우의 존재감은 빛을 발한다. 이는 배우가 지닌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연출의 감각 덕분일 것이다. 과거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 “외출”의 손예진, “행복”의 임수정, “호우시절”의 정우성처럼 “천문”에서 전에 본 적 없는 중년 배우의 천진난만함은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중년 남성의 얼굴을 누가 이토록 서정적으로 담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 한석규와 최민식의 얼굴만 떠오르는 것은 답답한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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