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zog Mar 06. 2020

오페라 “살로메”와 영화 “감각의 제국”

오페라 “살로메”와 영화 “감각의 제국”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는 기이하고 기묘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희곡을 각색한 작품에서 살인, 자살, 엽기, 근친상간적 뉘앙스, 외설적인 춤 같은 퇴폐적인 요소는 혼돈의 카오스를 창조한다. 1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는 약 100분간 지속될 뿐이지만, 3시간 넘게 진행되는 어느 작품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환한 달이 고개를 내민 밤, 미녀 살로메는 정원을 산책하던 중 감옥에 수감된 예언자 요카난과 마주친다. 그의 하얀 피부와 외모에 반해버린 살로메는 자기소개도 하지 않은 채 간절하게 부탁한다. ‘한 번만 입맞춤을 허락해 주세요. 제발’ ... ‘싫은데요’ 살로메의 반복된 구애를 단칼에 물리친 요카난은 감옥으로 돌아간다. 내면 깊은 곳에 큰 상처를 입고 기분이 울적한 시점에, 때마침 의붓아버지 헤롯 왕이 등장한다. 그는 살로메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지금 그의 앞에서 춤 실력을 선보이면, 그녀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도, 자신이 가진 영토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한다. 음흉한 사심이 담긴 요청을 거절하고 거절했던 살로메는 결국 비장의 카드인 ‘일곱 베일의 춤’으로 왕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은쟁반 위에 요카난의 목을 얹어 갖다 줄 것을 요청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 간다. 유혈이 낭자하는 무대에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은 날카로운 괴성처럼 다가온다. 음산한 에로티시즘은 가슴을 찌릿하게 한다. 기괴함이 절정에 다다른 마지막에, 살로메는 요카난의 잘린 머리를 붙들고 입맞춤을 하며 고이 아껴놓았던 사랑의 말을 펼쳐놓는다. “… 당신은 아름다웠어! 당신의 몸은 은 받침 위에 세워 놓은 상아 기둥이었어. 은으로 빚은 비둘기와 백합이 가득한 정원이었어. 상아 방패들로 장식된 은 탑이었어...” 억눌려있던 욕정이 그로테스크하게 분출되는 동안, 참상을 눈 앞에서 목격한 헤롯 왕은 인내심이 극에 달하고 결국 부하들에게 살로메를 살해할 것을 명한다. 


살로메의 비뚤어진 짝사랑은 오늘날 스토커의 집요함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전자레인지 속 팝콘처럼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면서 광기를 띠게 된다. 살로메의 유혹적인 관능성과 절규는 예나 지금이나 관객을 아찔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1905년 12월 9일 드레스덴 오페라 하우스(젬퍼 오퍼)에서 초연되었을 때 작곡가와 출연진은 38번의 커튼 콜로 화답받았다. 1907년 1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처음 소개된 날 청중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단 한 번의 공연 후에 막을 내려야 했던 작품은 1933년까지 오페라단의 레퍼토리로 편성되지 못했다.


살로메의 히스테리는 곧 요카난의 신체 일부에 집착하는 ‘시체 애호증’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살로메”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시체 애호가가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각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시체 애호증’은 현실에서 접하기 힘든 금단의 영역이다. 10년에 한 번 ‘세상에 이런 일이’ 뉴스로 볼 수 있으려나. 물론 호러 마니아를 위한 B급 영화는 종종 탐냈던 소재이긴 했다. 외르크 부트게라이트 감독의 “네크로맨틱”(1987)은 무덤을 파헤치고 부패한 시체와 관계 맺는 커플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고, “키스드”(1996)는 시신 안치소의 영혼 없는 몸뚱이에 매료되는 여주인공을 지켜봤다. 이때 ‘시체 애호증’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정신 질환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오페라 계에 “살로메”가 있다면, 영화 계에서 그에 대응하는 작품은 아마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일 것이다. 20세기 초 “살로메”가 충격적인 설정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20세기 후반 “감각의 제국”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포르노그래피의 예술성을 논할 때 언제나 언급되는 영화는 1976년 공개될 시점에 온전할 수 없었다. 수위 높은 성관계에 대한 묘사는 검열 당국의 가위질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관은 늘 일부가 삭제되고 수정된 버전을 상영했다. 비록 살로메가 성경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고 영화의 주인공 아베 사다는 실존하는 인물이지만, 두 작품은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여성 서사에서 유사성을 갖는 듯 보인다.


때는 1936년, 고급 술집의 종업원인 사다는 술집 주인이자 유부남인 이시다 키치조와 내연 관계를 맺는다. 불장난으로 시작된 사다와 키치조의 애정은 시간이 갈수록 크기가 커져간다.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와중에 사랑은 어느새 절대적인 진리가 된다. 기가막힌 속궁합은 두 남녀의 정신을 인도하면서 운명적인 사랑의 세계로 진입하게 한다. 키치조의 정부로 머물고 싶지 않은 사다는 그의 사생활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아내를 비롯해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지 말라며 질투하고, 협박하다 결국에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마지막 순간, 키치조의 목을 조른 사다는 그의 은밀한 부위를 절단하고 피로 그의 상반신에 글자를 적는다. “사다와 키치, 영원히 함께”


“살로메”와 “감각의 제국”에서 상대방의 신체 일부를 소유하는 행위는 일종의 상징성을 갖는다. 이는 가질 수 없는 상대를 간직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살로메와 아베 사다는 차갑게 식은 상대의 얼굴을 맞대고 만족감을 느낀다. 살로메의 사랑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널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파괴하겠어’. 사다의 사랑은 살로메의 파괴적 본성에 한 가지가 덧붙는다. ‘곁에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립다’. 



“살로메”와 “감각의 제국”에서 노골적인 묘사 방식은 대중성과 거리가 있지만, 작품의 예술성은 여전히 관객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이 호소력은 상당 부분 여성 캐릭터의 능동적인 성격에서 유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그들은 상대방을 먼저 자극한다. 뇌쇄적인 이 도발은 그들이 여성이기에 강력한 힘을 갖는다. 만약 살로메가 남성이었다면, 그는 그저 변태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만약 아베 사다가 남성이었다면, 그는 일개 살인마에 지나지 않았을까. 살로메와 사다의 진취성은 남성을 당혹스럽게 한다. 적극적인 그녀들의 태도는 곧 치녀의 성향으로 정의될 것이다. 차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기회가 찾아오면, 거침없이 스킨쉽을 시도한다.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상대에게 먼저 키스하자고, 먼저 섹스하자고 신호를 보낸다. 치녀들의 욕망 덩어리는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지 않다.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불리는 90년대 대중가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대다수의 이별 노래는 늘 지난 사랑에 집착했다. 떠난 버스처럼 붙잡을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한 집착은 언뜻 구차해 보이지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쿨병’만 남은 세상은 얼마나 건조해질까. 인간의 집착이 사라진 예술 작품의 서사는 얼마나 빈곤해질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오시마 나기사는 각자 ‘살로메’와 ‘아베 사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극단으로 치우친 개인의 집착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 종합 예술의 형식으로 직접 체험하게 한다. 섬짓한 취향으로 나타나는 이 집착은 경악스럽지만, 때로 그들의 집착에 감사하게 된다. 당사자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