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은 나의 힘"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by 혜윰

*유튜브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GjrOjyCLn_U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운명의 여신이라 불리는 세 자매 모이라이가 등장합니다. 세 자매 중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잣고, 라케시스는 실을 감으며, 아트로포스는 실을 자르는 역할을 맡죠. 다시 말해 그들은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즉 인간은 모이라이가 뽑아낸 실타래에 따라 운명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인생관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생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했죠. 예컨대 그들은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에로스 덕분이라거나, 한해 농사의 성패가 데메테르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즉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 삶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신들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이른바 운명론적 결정론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정말 운명 뿐이라면, 우리는 그 어떤 비극적 시련에도 단지 순응하고 굴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까요?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분투했던 비극적 영웅을 다룬 오늘의 책,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입니다.







1. 『오이디푸스 왕』 줄거리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테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테베의 왕 라이어스와 여왕 이오카스테는 기쁜 마음으로 아들을 낳지만 끔찍한 신탁을 듣습니다. 신탁의 내용인즉 그들이 낳은 아들이 장차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잔뜩 겁에 질린 라이어스와 이오카스테는 목동을 불러 아이의 양발을 묶은 채 산에 버리라고 명했죠. 하지만 목동은 그 어린아이를 차마 산에 버릴 수가 없었고, 따라서 목동은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맡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윽고 코린토스의 목동은 아이를 데리고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에게로 가죠. 다행히도 폴리보스 왕은 목동이 데려간 아이를 흔쾌히 양자로 맞아들였고,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줍니다. ‘부은 발’을 뜻하는 오이디푸스라고 말이죠. 이리하여 코린토스의 궁전에서 근사한 청년으로 자란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를 자신의 부모라고 믿은 채 행복한 시절을 보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오이디푸스는 비극적인 신탁을 듣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머지않아 아버지를 살해하게 될 거라는 내용이었죠. 신탁이 실현될까 두려웠던 오이디푸스는 곧바로 코린토스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가 코린토스를 떠나 이곳저곳을 헤매던 중의 일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세 갈래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잠시 후 그들 사이엔 모종의 시비가 일었고 화가 난 오이디푸스는 그들 모두를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행 중 한 명의 정체는 바로 테베의 왕 라이어스, 즉 어릴 적 오이디푸스를 버렸던 친아버지였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이디푸스는 이를 꿈에도 모른 채 자리를 떠났죠. 이윽고 그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마주칩니다.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로서, 테베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는 테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죠.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용감하게 스핑크스에게 도전했고,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수수께끼를 던집니다. “아침엔 다리가 네 개, 낮에는 다리가 두 개, 밤에는 다리가 세 개인 것은 무엇인가?” 이에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답했으며,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말하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로써 오이디푸스는 테베 사람들의 큰 걱정거리를 덜어준 공적을 인정받아 테베의 왕좌에 오르게 되죠. 뿐만 아니라 그는 테베의 여왕 이오카스테와 혼인을 하기도 합니다. 바로 어릴 적 오이디푸스를 버렸던 그의 친어머니 말이죠. 아무튼 테베는 오이디푸스가 왕위에 오르며 한동안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십수 년이 흐른 뒤 다시 테베 땅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나라 전체에 역병이 퍼져 백성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거죠. 이에 오이디푸스는 국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크레온에게 명하여 신탁을 받아오라 말합니다. 잠시 후 돌아온 크레온에 따르면 테베의 선왕이었던 라이어스를 살해한 자를 찾아 그를 사형시키거나 추방하는 것이 신탁의 내용이라 전하죠. 이를 들은 오이디푸스는 라이어스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맹인이었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부릅니다. 오이디푸스는 그에게 라이어스의 살해자가 누구인지 물었고, 테이레시아스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답하지 않았죠. 다만 오이디푸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진실을 알 법한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라이어스의 살해자를 백방으로 찾아 나섰죠. 그 과정에서 오이디푸스는 어쩌면 자기 자신이 범인일 지도 모른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점차로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집요한 진실 추적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모든 진실을 알게 됩니다. 라이어스를 살해한 자가 바로 오이디푸스 본인이라는 사실과, 또한 자신이 결혼한 이오카스테가 실은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 말이죠. 곧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2. 의식과 무의식


사실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은 시간순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극의 맨 첫 장면은 역병이 드리운 테베의 백성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오이디푸스 왕에게 이를 해결해달라 청하는 모습으로 시작하죠. 즉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은 현재 시점의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찾아 점차 과거 시점으로 거슬러가는 시간 역순적 플롯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구성은 프로이트의 자유연상 기법과 닮아 있습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 세계는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뉘죠. 의식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평소에 나 자신의 생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로 그 정신 세계를 가리키고요, 무의식이란 우리가 직접적으로 다가서지 못하는 정신, 쉽게 말해 의식되지 않는 정신 세계를 가리킵니다.



예컨대 한 남자가 탁자 위에 올려진 사과 한 덩이를 보고 ‘저 사과를 먹고 싶다’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곧 의식 세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빨간 구두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가정해볼까요? 이 경우 남자의 무의식적 세계에는 빨간 구두를 향한 욕망이 자리잡을 것이고, 그의 무의식적 욕망은 현실 세계에서 빨간 사과에 대한 욕망으로 왜곡되어 실현될 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인간의 무의식은 비록 우리가 직접적으로 의식할 순 없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죠. 따라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무의식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자유연상기법을 제안했습니다. 자유연상기법이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도록 하는 상담기법으로서 상담자는 때에 따라 내담자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담자가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후 상담자가 내담자의 대답들을 분석하여 그 속에 담긴 내담자의 무의식적 욕망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자유연상기법의 목표라 할 수 있죠.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작중 오이디푸스는 현재의 자아로부터 과거의 자아로 거슬러 올라가려 시도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찾으려는 진실은 과거에 존재하며, 현재의 오이디푸스는 진실에 무지한 존재이죠. 흥미롭게도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대립적인 성격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과 의식 세계에 대응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사과를 탐하는 인간의 의식적인 소망은 빨간 구두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의 변형된 형태일 수도 있음을 살펴봤죠. 즉 인간의 의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며, 따라서 인간은 주체적으로 사유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오이디푸스는 과거의 신탁을 거슬러 자신이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했다고 믿지만 사실 그는 과거에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해, 인간의 의식이 실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현재의 오이디푸스도 과거의 신탁에 따라 운명 지어졌다는 이야기이죠. 따라서 인간은 진실을 찾기 위해 현재에서 과거로, 또한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 세계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3. 질문하기 : 진실을 향한 첫 걸음


앞서 소개해 드렸다시피 프로이트는 자유연상기법을 제안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내담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내담자의 무의식적 욕망을 추론하죠. 다시 말해 프로이트는 의식적 자아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담자의 무의식 세계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키워드는 바로 ‘질문’입니다.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답변으로부터의 회피를 뜻하기 때문이죠. 작중 오이디푸스 역시 ‘라이어스를 살해한 자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며 점차 과거로 다가섭니다. 심지어 그는 질문을 거듭할수록 자신에 대한 추악한 진실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죠. 이처럼 진실을 찾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을 피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질문하지 않는 자는 과거의 진실도, 혹은 무의식에 숨겨진 욕망도 영영 알 수 없을 테니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작중 스핑크스는 질문의 위력에 대한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작중 스핑크스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오답을 말하면 잡아먹는 괴물로 등장하죠. 즉 스핑크스는 질문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두려움을 뜻하는 알레고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질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맞섰습니다. 따라서 만약 오이디푸스가 영웅이라 불릴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수수께끼의 답을 맞혔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에 맞섰기 때문이라 할 수 있죠. 극의 말미에서 마침내 비극적 진실을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유배를 떠납니다. 이러한 결말은 우리로 하여금 맹인 예언자였던 테이레시아스를 떠올리게 하죠. 테이레시아스는 비록 육적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었으나 마음의 눈으로 진실을 응시하는 자였던 데 반해,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가졌음에도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행동은 진실에 눈 감았던 현재의 자신에게 가하는 형벌이자, 앞으로는 마음의 눈으로 진실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의 회피를 택하지 않고 기꺼이 운명 속에서 모든 책임을 지기로 택했던 거죠. 이를 통해 교훈을 삼아 본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과거의 자아, 혹은 무의식적 자아를 수용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그 진실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리 고결하지 않고 추악한 민낯을 드러낼 지라도 그 또한 나 자신임을 인정하며, 나 자신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운명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태도일 테니 말이죠.









이상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그의 악명 높은 가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제안합니다. 그가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어린 남자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성적 애착을 갖는 현상을 뜻하죠. 자명하게도 갓난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편안한 안식처입니다. 따라서 아이는 저 홀로 어머니를 독점하고 싶은 본능을 갖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러한 본능은 아버지로 인해 금방 좌절되고 맙니다. 다시 말해 아이는 어머니를 욕망하지만, 아버지는 그러한 욕망을 억압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여기서 의미를 좀 더 확장해 본다면, 인간은 늘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그러한 욕망은 쉽게 좌절되곤 합니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혹은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서의 탈락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러한 좌절과 상실은 우리 삶의 당연한 일부입니다. 만약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욕망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과 억압에 대한 반감만 내세운다면 우리는 결코 단 한 순간도 결핍된 마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할 것입니다. 프로이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스스로 극복할 의무가 있다.” 즉 욕망이 좌절되는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이며 따라서 우리는 좌절이 우리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마음껏 욕망하고, 한없이 좌절되는 순간 속에서도 다시금 욕망하시길 응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질문의 힘을 엿볼 수 있는 현대적 원형은 다름아닌 ‘청문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차례 질문을 퍼붓고 나면 후보자의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마련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악인이란 스스로에게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을 회피하는 자라 사유될 수 있습니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냈을 때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가리키며 ‘인간’이라 답합니다. 이를 조금 비약하여 해석한다면, 질문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책임이라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의무라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은 ‘부은 발’을 뜻합니다. 이는 그의 부모가 어릴 적 그의 양발을 묶은 채 버리는 바람에 그가 발견되었을 당시 발이 퉁퉁 부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따라서 그의 이름(부은 발)은 신탁을 거부함으로써 얻게 된 결함을 상징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코린토스 땅에서 신탁을 받고, 신탁이 실현될까 두려워 코린토스를 떠납니다. 다시금 그의 발이 ‘부은 발’이 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그는 운명을 기꺼이 수용하고 책임집니다. 따라서 오이디푸스는 태어났을 적부터 신탁을 거부하고 싶은 나약함(부은 발)을 지닌 연약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오직 의지로 극복한 존재입니다. 즉 그는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웅으로 거듭난 것이며,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약점이 있다 해서 영웅이 되지 말란 법은 없음을 시사하는 바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