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유튜브 해석 : https://www.youtube.com/watch?v=b-XxKRunCSM
근대 철학의 첫 단추를 꿴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말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즉 사유능력의 주체이며, 바로 그러한 사유능력이 인간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설명이죠. 하지만 과연 인간이 정말 사유의 주체라 불리울 수 있을까요? 질문이 잘 이해가 안 되신다면 별똥별(유성)이 무수히 떨어지는 어느 밤하늘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밤하늘의 별똥별은 ‘떨어지는 행위’의 주체라 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별똥별은 단지 떨어지는 사건을 수동적으로 겪는 객체에 지나지 않으며 다만 이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마치 사건의 주체처럼 우리에게 착각되어질 뿐이죠. 어쩌면 인간과 생각의 관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일 지도 모릅니다. 즉 인간은 ‘생각하는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생각이라는 사건이 먼저 발생하고나서 뒤늦게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죠. 무의식의 발견을 통해 실은 우리 모두가 분열된 자아에 지나지 않음을 고발했던 20세기의 명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입니다.
영국의 근대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빅토리아 시대이죠. 이는 1837년부터 1901년에 이르는 시기로서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시대를 가리킵니다. 당시 영국은 명실상부한 최전성기를 누리며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통했죠. 그런 의미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는 단지 영국만의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유럽 사회에 끼치는 영국의 막강한 영향력과 더불어 영국의 문화는 곧 유럽 전체의 문화로 자연스레 퍼져 나갔죠.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른바 빅토리아 문화라고도 불리우는 영국 특유의 엄숙주의입니다. 이는 쉽게 말해 솔직한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신사적인 태도를 고수하려 하는 다소 강박적인 예절 문화를 뜻하는데요. 즉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불쾌하거나 섭섭한 상황에서도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표면적인 예의를 차리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옷을 입을 때나, 상대방에게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심지어는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단어를 선택할 때조차 사회가 규정한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신경증적으로 주의했죠. 다시 말해 당시 유럽인들은 소위 디코럼(decorum)이라고도 불리우는 엄격한 예의범절 규정을 지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강박 증세를 보인 것입니다. 즉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저마다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의식적인 욕망 속에서 자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자발적으로 억압했던 거죠.
그런데 프로이트는 바로 그러한 억압이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은 바로 이 억압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되죠. 프로이트 따르면 인간의 억압된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 마음 속 깊은 창고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창고가 가득할 때까지 억압이 극에 달한다면 이는 곧 신경증 질환이나 히스테리 증세로 이어진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설명이죠. 프로이트는 바로 그 마음 속 창고를 가리켜 무의식이라 이름 붙입니다. 즉 인간의 정신 세계에는 우리가 늘 인식하고 느끼는 의식 세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도 같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이트는 꿈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꿈은 낮 동안 억압되어 있던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이 드러나는 현상이었던 거죠. 쉽게 말해 프로이트에게 꿈이란 꿈속에서라도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무의식 세계의 욕망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욕망의 좌절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사회 도덕에 반하는 것이어서 좌절되기도 하고요, 혹은 가족의 반대로,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자기 자신이 자발적으로 욕망을 포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끝내 실현하지 못한 욕망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비록 우리의 의식은 과거의 욕망을 잊었다 할 지라도 우리 내면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억압된 욕망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는 이야기이죠. 프로이트는 꿈을 그 증거로 제시합니다. 억압된 욕망을 실현하길 바라는 인간의 무의식적 바람이 인간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든다는 설명이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처럼 프로이트에게 꿈이란 억압된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소원 성취의 과정으로 이해됐던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주장 을 비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꿈속에서 그들이 진정 바라는 바와는 정반대의 꿈을 꾸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예컨대 프로이트의 환자 A는 어느 날 자신의 둘째 조카가 죽는 꿈을 꿨다고 합니다. 프로이트의 말 대로 정말 꿈이 소원성취의 과정이라면 과연 A는 둘째 조카의 죽음을 욕망했던 것일까요? 이를 해명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꿈의 왜곡’이라는 중요한 성질을 덧붙입니다. 꿈의 왜곡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욕망이 꿈속에서는 사실과 다르게 표현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욕망에 대한 억압이 심할수록 왜곡된 꿈을 꾸게 된다는 설명이죠. 실제로 프로이트가 자유연상 기법을 통해 A의 꿈을 해석한 결과에 따르면 환자 A는 둘째 조카가 죽는 꿈을 꾸기에 앞서 첫째 조카의 죽음을 겪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A는 첫째 조카의 장례를 치르며 우연히 옛 연인을 마주치게 되죠. 즉 둘째 조카가 죽는 A의 꿈을 해석하면 장례식장에서라도 옛 연인을 마주치고 싶은 A의 무의식적 욕망이 다소 왜곡된 방법으로 꿈속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꿈이란 억압된 욕망의 왜곡된 실현이라 할 수 있죠.
꿈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은 꿈의 사고와 꿈의 내용입니다. 먼저 꿈-사고란 억압된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잠재적 꿈을 뜻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꿈의 주제라고 할 수 있고요, 꿈-내용이란 우리가 실제로 기억하는 꿈의 내용을 가리키죠.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아이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아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때 아이는 자신이 좀 더 자신감 넘치는 성격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죠. 그날 밤 아이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꿈을 꿉니다. 아이는 꿈속에서나마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던 거죠. 이 경우 아이의 꿈-사고는 자신감 넘치는 성격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며, 또한 꿈-내용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연설하는 이미지 그 자체입니다. 쉽게 말해 꿈-내용은 우리가 꿈속에서 경험하는 한 편의 이야기이고, 꿈-사고는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주제라 할 수 있죠.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활동은 여러가지 재료를 통해 꿈-사고를 꿈-내용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꿈의 재료를 꿈-재료라 부르며 꿈-사고를 꿈-내용으로 바꾸는 과정을 가리켜 꿈-작업이라 합니다.
꿈-재료란 말 그대로 꿈이 만들어질 때 사용되는 재료를 뜻하는 것으로 프로이트는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낮의 잔재’입니다. 이는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겪은 모든 기억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컨대 사람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라든가, 혹은 그날의 날씨, 심지어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상대방의 옷차림마저 모두 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죠. 둘째는 유아기의 기억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 경험한 사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무의식에 남아 평생 동안 꿈의 재료로 사용된다는 이야기이죠. 이처럼 어렸을 적 인상이 인간의 무의식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이유는 모름지기 인간의 유아기가 억압의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하루 중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안 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 어린 아이가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는 사회화 과정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며, 이는 곧 억압의 내재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모두 억압된 소망을 무의식 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꿈 속에서 유년기의 기억들을 마주하게 되는 거죠. 참고로 프로이트는 유년기의 욕망을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가설을 도출하기도 하는데요. 이는 그의 이론 중에서도 가장 도발적이고도 논쟁적인 이론인 만큼 잠시 후 따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셋째는 수면 중 신체 자극입니다. 이를테면 잠을 자던 중 요의를 느끼는 경우 비가 내리는 꿈을 꾼다거나, 혹은 잠자리가 너무 더우면 자신의 몸이 불타는 꿈을 꿀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전형적인 상징입니다. 예컨대 물은 생명력의 상징이며, 계단은 성관계를 상징한다는 식이죠. 다만 이처럼 사물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은 대단히 신중하게 행해져야 합니다. 똑 같은 사물이라 하더라도 그것과 관련한 개인의 추억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가령 어떤 사람들은 돼지를 공포의 대상이라 여기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만찬의 상징이라 여길 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흔히 말하듯 ‘돼지꿈은 길몽이다’ 라는 식의 섣부른 해석은 자칫 꿈의 의미를 왜곡하기 쉬우므로 되도록 상징적인 해석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내용을 잠시 정리하면 인간의 꿈은 두 가지 층위로 나눠 볼 수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기억하는 꿈-내용과, 그 이야기 속에 담긴 무의식적 욕망이라 할 수 있는 꿈-사고로 말이죠. 다시 말해 인간의 꿈은 꿈-사고가 꿈-내용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처럼 꿈-사고를 꿈-내용으로 바꾸는 과정을 가리켜 꿈-작업이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활용되는 재료를 꿈-재료라 하는 거죠.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작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압축입니다. 프로이트는 말합니다. “적었을 때 겨우 반 쪽 정도인 꿈도 그 이면의 꿈-사고를 분석하면 족히 여섯 배, 여덟 배, 열두 배는 되는 분량이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꿈-내용은 꿈-사고의 크기에 비해 무척이나 간결하고 생략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이야기이죠. 예컨대 한 사람이 간밤에 하늘을 나는 꿈을 꿨다면 그 속엔 고소공포증에 대한 극복 의지와, 파일럿이었던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혹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 등이 담겨 있을 지도 모릅니다. 즉 꿈-내용은 꿈-사고에 존재하는 다양한 욕망과 꿈-재료들이 압축적으로 중복결정 되어 드러난다는 설명이죠. 둘째는 전치입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뜻하는데요. 예컨대 A라는 사람이 꿈속에서 컵을 깨뜨렸다고 해볼까요? 알고 보니 꿈 속에서 A가 본 컵은 A가 싫어하는 친구가 즐겨 쓰는 컵이라고 합니다. 즉 A의 꿈-내용은 친구를 해하고 싶은 꿈-사고가 친구를 컵으로 전치 시키며 변형된 형태라 할 수 있죠. 다만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왜 전치가 발생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A는 왜 친구를 직접적으로 해하는 보다 노골적인 꿈을 꾸지 않고 고작 컵을 깨뜨리는 데 만족하는 소극적인 꿈을 꿨던 걸까요? 이는 꿈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려 하는 도덕적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A는 친구를 해하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과 동시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억압함으로써 고작 컵을 깨뜨리는 데 만족했던 거죠. 이처럼 전치는 내적 심리의 방어로 인해 자신이 진정으로 소망하는 바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훗날 프로이트의 딸 안나는 이를 토대로 방어기제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하죠. 다음으로 셋째는 감각적 형상화입니다. 자명하게도 꿈속에서 인간은 깨어 있을 때와는 달리 고도의 논리적인 사고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평상시 우리의 추상적인 사고와 관념은 꿈속에선 보다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그림과 형상으로서 드러나게 되죠. 이것이 바로 감각적 형상화입니다. 예컨대 한 사람이 도시 생활에 대한 뿌리 깊은 염증과, 현대 문명의 표면적인 화려함에 지쳤다면 꿈속에서 이러한 복잡한 관념은 단지 그가 숲속을 거니는 모습으로 형상화될 지도 모릅니다. 초록이 우거진 자연과 언뜻 들리는 새소리를 통해 그의 무의식적 욕망이 감각적으로 형상화된 거죠. 끝으로 꿈-작업의 마지막 과정은 바로 2차가공입니다. 2차가공이란 앞선 세 가지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골격이 완성된 꿈을 제법 ‘있음직한’ 이야기로 가공하는 과정을 뜻하는데요. 만약 2차가공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인간의 꿈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난해하여 우리의 의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꿈을 망각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평소에 무의식적 욕망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다시 말해 2차가공이란 무의식 세계의 비현실적인 꿈을 조금이나마 논리적인 모양으로 포장하여 인간의 의식 세계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프로이트의 이론 중 가장 논쟁적인 주제라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간단히 살펴보고 책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리비도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비도란 쉽게 말해 성충동, 혹은 성본능을 뜻하는 것으로 단순한 성욕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고로 섹스의 본질이 쾌락이 아닌 생명인 것처럼 리비도 역시 마찬가지로 쾌락적인 성욕이 아니라 자기 복제와 재생산을 위한 힘이라 할 수 있죠. 다시 말해 리비도란 생명에 대한 의지, 나아가 삶을 위한 에너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리비도가 너무나도 쉽게 억압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유아기 자위는 부모에게 발견되는 즉시 억압되기 마련이고요, 또한 사회적으로도 섹스는 연인 사이에서만 행해져야 한다는 도덕적 억압이 존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리비도를 억압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모든 원시 사회조차 보편적으로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최소한의 억압을 준수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모든 생물 중에서 유일하게 리비도를 억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간의 억압된 욕망은 결코 사라져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억압된 리비도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하여 다른 만족을 구하기 시작하죠. 예컨대 사람들은 재물이나 명예, 권력, 혹은 지식 등을 욕망합니다. 그 결과 인류는 문명을 형성하기에 이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억압된 리비도를 다른 분야에 쏟아 냄으로써 이른바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형성된 문명은 다시금 리비도를 억압하고, 억압된 리비도는 다시금 문명을 발전시키는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리비도와 억압의 순환이 인류 문명을 꽃피웠다는 이야기이죠. 이처럼 프로이트는 리비도와 억압의 변증법을 통해 인류의 역사 발전을 풀어내고자 시도한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사전적 정의는 남자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성적 애착을 갖는 현상을 가리키죠. 이때 어머니는 리비도를, 아버지는 억압을 상징합니다. 즉 모든 인간은 숙명적으로 리비도와 억압의 굴레를 유아기 때부터 짊어진다는 이야기이죠. 다시 말해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리비도와, 리비도에 대한 억압이 인류의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인간은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하지만 그러한 욕망은 좌절되며, 따라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바로 그 역동성이 인간의 생명력이라는 이야기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들, 예컨대 모든 아버지가 아들을 억압하는 것은 아니라든가, 혹은 그것이 너무 남성중심적이라는 비판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무너뜨리는 핵심적인 비판이 될 수 없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무력화하기기 위해서는 리비도와 그것의 억압이 유아기의 보편적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지적이라 할 수 있죠.
이로써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을 아주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인간 자신의 관계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의 등장 이전까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자부했지만 무의식의 발견과 더불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확신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죠. 다시 말해 인간은 모두 분열된 자아이자,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이방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늘 불안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본인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즉 공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러한 불안의 정서는 공포와는 사뭇 다른 정서입니다. 공포는 명확한 대상이 있는 정서이지만 불안은 그 근원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곤 하죠. 따라서 현대인들은 늘 불안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불안이라는 것이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걸까요? 흥미롭게도 자크 라캉(프로이트의 이론을 발전시킨 또 다른 정신분석학자)에 따르면 불안이야말로 인간의 정체성일 지도 모릅니다.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공백이 마음 한 가운데 있으니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이죠. 그러나 공백은 결코 불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공백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은 곧 우리의 삶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쉽게 말해 인간은 스스로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게 무엇인지, 그 정답을 알지 못해 늘 불안하지만, 그 대신 인간은 저마다의 해답을 써 내려갈 자유를 얻게 됐다는 것입니다. 즉 불안은 자유의 대가이며, 또한 자유는 불안의 선물인 셈이죠. 따라서 인간은 불안한 만큼 자유로우며, 자유로운 만큼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가 불안한 존재라는 자기 인식을 통해 타인과의 연대를 꿈꿀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 속 공백을 스스로 채울 수 없는 존재라면 서로가 서로의 공백을 메꿔주는 연대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불안 속에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을 지 모르니 말이죠. 아무쪼록 우리 모두 억압된 욕망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길 소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서두(에서 『꿈의 해석』을 ‘20세기의 명저’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꿈의 해석』이 발표된 해는 1899년이었습니다. 다만 프로이트는 책의 출판 연도를 1900년이라고 표기하여 발표하죠. 자신의 책이 다가올 세기의 명저로 남기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의 염원과는 달리 『꿈의 해석』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이 20세기의 핵심 저서라는 데에는 오늘날 많은 학자들도 수긍하는 바입니다. 하여 저는 프로이트의 ‘꿈’을 뒤늦게나마 실현해주고자 하는 바람에서 ‘20세기의 명저’라고 소개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그 시대의 문화적 코드로 인해 자신의 욕망을 한껏 억압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억압된 욕망은 어떻게든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19세기 유럽 사회의 펍(pub) 문화가 그와 관련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고 합니다. 펍 안에서 남자들은 빅토리아 문화의 억압주의를 벗어 던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며 그간의 억압된 욕망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죠. 다만 여성들에겐 비슷한 대체품이 없었으므로 억압된 욕망의 탈출구가 없었고, 그러한 이유로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히스테리 증세가 더 자주 관찰된다는 견해도 있다고 하네요.
*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 구조는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우리가 늘 인식하며 살아가는 의식 세계이고요, 또 하나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무의식 세계로서 본능이나 감정, 혹은 억압된 욕망 등이 속합니다. 또한 마지막 한 가지는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영역인 전의식으로서, 이는 주의를 집중하여 노력한다면 금방 의식 세계에 떠오를 수 있는 생각이나 감정 등이 해당하는 영역이며 쉬운 예로 문법을 들 수 있죠. 예컨대 우리는 말을 내뱉는 모든 순간 마다 문법을 의식하며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우리에게 문법적 지식을 묻는다면 그와 관련한 지식들을 의식 세계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