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우주론

사대문과 태극기의 의미

by 혜윰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8kDWcSPctwA&t=10s





『중용』의 맨 첫 문장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으로 시작합니다. 풀이하면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다’라는 뜻으로, 이때 ‘하늘’은 천하 만물을 다스리는 ‘우주적 질서’를 뜻하며 ‘성(性)’이란 만물이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본성을 나타내죠. 가령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하늘이 명한 새의 ‘성’이며, 물고기가 물 속을 헤엄치는 것은 하늘이 명한 물고기의 ‘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하늘은 무엇이길래 이처럼 만물의 질서를 다스릴 수 있는 걸까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동양 철학에서 하늘이 어떻게 사유되는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연구하던 고대 유학자들은 자연의 이치를 사계절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봄은 새싹들이 파릇파릇한 모습을 드러내며 생명이 싹트는 계절입니다. 바야흐로 생육의 시기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여름에 이르면 만물은 따사로운 햇볕을 양분삼아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형통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계절이 바뀌어 서늘한 가을이 찾아오면 드디어 만물은 성장을 완성하게 되죠. 이는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에서 결실의 시기라 합니다. 하지만 끝내 겨울이 오면 만물은 시나브로 소멸되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이때 겨울은 봄을 맞이할 에너지를 준비해 둔다 하여 저장의 시기라 부릅니다. 이처럼 만물은 생성되고, 성장하며, 또한 완성되지만, 끝내 사라지고 말죠. 세상 모든 만물은 이 같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유학자들이 관찰했던 우주적 질서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적 질서란 생육하고, 형통하며, 결실을 맺고, 저장하는 네 단계의 영원한 순환이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개념을 좀 더 확대해보겠습니다. 『주역』에 따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각각 원형이정(元亨利貞)에 대응합니다. 먼저 ‘처음’을 뜻하는 ‘원(元)’은 사계절의 시초에 해당하는 봄에 대응합니다. 만물이 생성되는 사건이 우주 질서의 시작임을 나타내는 바이죠. 또한 형통함을 뜻하는 ‘형(亨)’은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에 해당하고요, 이로움을 뜻하는 ‘리(利)’는 만물이 무르익어 온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을에 해당합니다. 끝으로 ‘곧음’을 뜻하는 ‘정(貞)’은 가을에 맺은 열매를 잘 저장하여 곧은 마음으로 봄을 준비하는 겨울에 해당하죠. 이처럼 사계절에 대응하는 원형이정은 우주의 질서이자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속성이 더 추가됩니다. 바로 정성을 뜻하는 ‘성(誠)’입니다. 이는 쉽게 말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봄이 시작하도록 이끄는 힘, 즉 사계절의 순환을 끝없이 반복되게 하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우주적 질서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단계의 순환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며 이들 각각을 일컬어 원형이정성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한 번 더 개념을 확대해보겠습니다. 만물이 생육하는 봄에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자명하게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선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겠죠. 즉 봄은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며, 동양에서는 이러한 사랑을 ‘인’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성장의 계절인 여름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의입니다. 다만 여기서 가리키는 예의란 단순히 웃어른을 공경하라는 협의로서의 예의가 아니라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실행하는 실천적인 예를 의미합니다. 즉 여름은 예를 실천하며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면 만물은 드디어 자기수양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죠. 이 때 올바른 지식인이라면 잘못된 세상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감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가을은 ‘의’를 상징합니다. 나아가 사계절을 마무리하는 겨울에 이르렀을 때 만물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한 지혜를 겸비할 줄 알아야 하고요, 끝으로 사계절을 지속하기 위해서 우주가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마찬가지로 인의예지를 실천하기 위해 성실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내용을 정리하면 우주적 질서란 생육, 성장, 열매, 저장, 그리고 그것들의 영원한 반복이며, 이들은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사계절의 끝없는 순환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이들을 간단히 줄여 원형이정성이라 부르며, 각 단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치는 인의예지신이라 할 수 있죠. 여기서 좀 더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어보자면, 원형이정성이란 대우주적 질서를, 인의예지신은 소우주적 질서를 나타냅니다. 즉 원형이정성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들의 본질적인 힘이라 할 수 있고요, 인의예지신은 원형이정성이라는 대우주적 질서가 인간의 마음 속에 실현된 상태를 가리키는 거죠.





인간을 소우주라 부르는 것도 이처럼 인간의 마음이 우주를 품었다는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우주로 통하는 중요한 길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잘 닦아서 인의예지신을 실천한다면 그 자체로 인간은 곧 우주와 다름 아니기 때문이죠. 참고로 이러한 유학의 정신은 오늘날 종로의 사대문 이름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당시 사대문의 이름을 작명한 정도전이 인의예지신을 염두에 두고 그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죠. 간단히 해석하면 동쪽엔 사랑을 일으키라는 의미에서 흥인문, 남쪽엔 예를 숭상하라는 의미에서 숭례문, 그리고 서쪽엔 의를 두텁게 쌓으라는 의미에서 돈의문, 또한 북쪽으로는 지혜를 넓히라는 의미에서 홍지문, 마지막으로 가운데에는 꾸준히 성실함을 다하라는 의미에서 보신각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다만 흥미롭게도 홍지문이라는 이름은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홍지문의 뜻대로 자칫 백성들의 지혜가 넓어지기라도 했다가는 정치인들의 무능력이 발각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죠. 아무튼 오늘날 사대문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은 늘 마음 속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우주적 질서와 더불어 인의예지신이라는 삶의 태도를 늘 명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혹시라도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동양의 방위 개념은 서양과는 달리 남쪽이 위로, 북쪽이 아래로 향하도록 그립니다. 이는 예기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 때문인데요.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므로 ‘동양과 서양의 방위 개념이 다르구나’ 하는 정도만 기억하고 넘어가시면 충분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사계절의 순환부터 시작하여 원형이정성, 인의예지신에 이르기까지 유학에서 바라보는 우주관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자명하게도 새싹이 움트는 봄은 이제 막 양의 기운이 차오르는 시기라 할 수 있죠. 그러다 여름이 되면 양의 기운은 폭발적으로 흘러 넘치며 만물은 형통의 시기를 누립니다. 하지만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서서히 음의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하고요, 또 마침내 겨울이 되었을 땐 음기가 정점에 차오르며 만물은 휴식을 취하게 되죠. 이처럼 음양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우주의 근원적인 힘을 가리켜 동양 철학에서는 태극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원형이정성이나 인의예지신도 바로 이 태극이라는 절대적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거라 할 수 있죠. 쉽게 말해 태극이란 음양을 만들어 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힘이라면, 사계절과 같은 현상은 태극의 작용이 현실에 드러난 표면적인 결과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같은 태극은 너무 멀지 않은,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도 녹아 들어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인의예지신을 고루 갖춤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성실히 이루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마음은 곧 우주적 양심과 다름아니기 때문이죠. 우주적 양심이란 별 다른 게 아닙니다. 사사로운 욕심에 흔들리지 않고 마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마땅히 해야 할 바에 충실한 마음을 가리키죠.














일찍이 공자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설명하며 소강사회와 대동사회를 구분한 바 있습니다. 전자는 천하를 사적으로 여기는 사회이며, 후자는 천하를 공적으로 여기는 사회이죠. 이중 공자가 꿈꾸는 세상은 대동사회로서 사사로운 개인의 마음보다 천하의 안정을 도모하는 사회를 가리킵니다. 단적인 예로 대동사회의 군주는 결코 자기 자신의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습니다. 가문의 명예 보다 천하의 안정이 중요하므로 탁월한 인재를 찾아 왕위를 물려줄 테니 말이죠. 즉 대동사회란 개인의 욕심에 함몰되지 않고 천하의 이로움을 위해 힘쓰는 사회를 말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국기가 태극기라는 사실은 매우 뜻 깊은 대목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태극을 회복하여 우주적 양심을 갖도록 힘쓰자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말이죠. 다시 말해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우주적인 마음, 이른바 홍익인간의 정신이 바로 이 태극기 속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대문과 태극기를 볼 때마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보며, 과연 우리 마음 속에 사랑과 실천, 그리고 정의와 지혜가 충만한 지를 반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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