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해야 할 일에 힘쓰라!"

자사(?), 『중용』

by 혜윰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w4rXH5FOPV8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해 사르트르는 말합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즉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창조적 존재라는 말이죠. 그런데 2천 년 전 동양의 유학자들은 견해를 달리 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는 하늘이 명한 본성을 회복하는 거라 여겨졌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그들은 인간이 ‘빈 서판’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본성을 갖춘 채로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 다만 그 본성이 오염되고 훼손되었다는 설명이죠. 본성의 회복을 통해 사랑과 평화를 실현하길 꿈꿨던 동양 철학의 고전,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예찬하는 오늘의 책, 『중용』입니다.




책의 핵심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풀이하면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요, 성을 따르는 것이 ‘도’요, 도를 닦는 것이 ‘교’이다.’ 라고 번역되죠. 여기서 등장한 세 가지 개념은 『중용』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포스팅에서는 성, 도, 교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포스팅을 통해 동양 철학의 묘미를 맛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1. 성(性)



먼저 성(性)입니다. 앞서 『중용』은 천명지위성, 즉 ‘성’이란 하늘이 명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이때 하늘은 신적인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천하 만물을 다스리는 우주적 질서를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꽃이 피고 지는 생물의 질서나, 해가 뜨고 지는 천체의 질서처럼 말이죠. 이처럼 만물은 인간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우주적 질서에 따라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중용』은 바로 그 초월적 질서를 ‘하늘’로써 은유한 것입니다. 따라서 천명지위성, 즉 하늘이 명한 ‘성(性)’이란 하늘이 만물에게 부여한 본성을 뜻합니다. 예컨대 물고기들이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하늘이 명한 물고기의 성(性)이며, 새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하늘이 명한 새의 성(性)이라 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천명지위성이란 세상 모든 만물이 하늘로부터 명 받은 본성이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마찬가지로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성(性)이 있겠죠. 과연 인간의 성은 무엇일까요? 이는 섣불리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다행히 여러분은 성(性)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훌륭한 사상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바로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죠. 『중용』과 더불어 사서 중 하나인 『맹자』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맹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데요. 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우물에 떨어지는 아이를 보면 돕고 싶은 마음, 즉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을 갖는다고 정의됩니다. 이를 근거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오염되었을 뿐 본래 선하다고 주장하는 거죠.






뿐만 아니라 또다른 사서 중 하나인 『대학』에 등장하는 ‘명명덕’이라는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인 ‘밝은 덕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인간 내면의 명덕은 『중용』이 말하는 ‘성(性)’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중용』을 비롯한 유교 경전들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하늘로부터 명 받은 진실하고 거짓됨이 없는 참된 본성, 즉 성(性)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2. 도(道)


그럼 이어서 ‘도(道)’를 살펴보겠습니다. 『중용』에 따르면 솔성지위도, 즉 ‘성(性)’을 따르는 것이 ‘도(道)’입니다. 그렇다면 잠시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앞서 『중용』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성(性)을 부여 받은 존재라고 설명했는데, 실상 우리의 현실에는 왜 수없이 많은 악인들이 창궐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 하늘로부터 명 받은 성(性) 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욕심 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악(惡)을 뜻하는 한자에도 녹아 들어 있는데요. 한자로 악(惡)을 살펴보면 두번째를 뜻하는 ‘버금 아’자와 ‘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양임을 알 수 있죠.




이를 풀이하면 악이라는 것은 인간 내면의 첫번째 본성, 즉 성이 아니라 그 뒤에 나타난 두번째 마음, 즉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인은 악한 본성을 타고난 존재가 아니라, 성을 멀리하고 욕심을 따르는 존재라는 거죠. 그러므로 『중용』이 말하는 ‘도’는 단순합니다. 우리 내면의 두번째 마음인 욕심에 휘둘리지 말고 하늘로부터 명 받은 인간 본연의 성을 회복하자는 이야기이죠. 그것이 바로 유학이 말하는 자기 수양의 길, 도(道)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도의 주요한 특징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도는 만물에 담겨 있다.



첫째로 도(道)는 보편적이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중용』은 이를 ‘비이은(費而隱)’, 즉 ‘드러남과 숨김’이라고 설명하죠. 먼저 비(費)라는 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들이라면, 은(隱)이란 그 현상들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을 가리킵니다. 이해가 잘 안되신다면 앞서 배운 ‘성’을 떠올려보십시오. 『중용』은 우주의 모든 만물들이 하늘이 명한 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했죠. 바로 이 성이 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은이란 보이진 않지만 온 만물을 작동시키는 우주적 힘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비라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는 모습이나 새가 하늘을 비상하는 모습들이 비에 해당하죠. 이처럼 성은 깊은 심연 속에 숨어 있으려는 ‘은(隱)’이라는 성질 때문에 인간이 직접 발견할 수 없지만 다행히도 ‘비(費)’로써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비의 모습으로 드러난 세상을 열심히 탐구함으로써, 은으로 숨어 있는 성을 깨달을 수 있는 거죠.













② 도를 실천하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비의 모습 속에서 은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도(道)의 두번째 특징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능지능행(能知能行)이라고 하죠. 이는 능히 알아야, 능히 행할 수 있음을 뜻하는데요.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무엇이 옳은 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미 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인간 관계가 그렇죠. 상대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행동만 앞서는 사람은 결국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중용』은 지, 인, 용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각각 배움과, 실천, 그리고 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즉 배우고 실천하기에 힘쓰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걸까요? 이에 대해 『중용』은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안합니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오륜이라고 알고 있는 아주 익숙한 내용이죠. 보시다시피 이 다섯 가지 항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도를 실천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거나, 혹은 친구 사이에 신의가 없다면 이들은 도를 실천한다고 볼 수 없는 거죠. 따라서 도를 실천하는 삶이란 대단히 거창한 사회적 사명을 위해 투쟁하는 삶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③ 도는 순차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의 세번째 특징은 순차성입니다. 도를 실천하는 데에도 일정한 순서가 있다는 거죠. 이는 『대학』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다음으로는 가족을 화목하게 하며, 나아가 국가를 평화롭게 하고, 궁극적으론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단계로 순차적으로 도를 실천해야 하죠.




『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용』은 이를 치곡(致曲)이라 표현하죠. 간단히 풀이하면 아주 일상적인 것에 이르다는 뜻으로서, 즉 도를 실천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서구 지식 사회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조던 피터슨에게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그는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세상을 바꾸려 들기 전에 자신의 방부터 청소하라고 주문하죠. 눈 앞에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외치는 구호는 실상 자기를 속이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도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건 지금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이죠.







3. 교(敎)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추리면 인간에게는 최초의 고유한 본성, 즉 성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여정이 바로 도라는 겁니다. 또한 『중용』에 따르면 바로 이 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에 해당하죠. 이는 쉽게 말해 교육을 뜻하는 것으로서 앞서 살펴본 도의 두번째 특징, 즉 ‘도’를 실천하는 데에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다만 여기서 교가 뜻하는 바는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학습을 넘어서 제도적 차원의 교육 일반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한다든가, 혹은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독려하기 위한 문화 정책 등을 예로 들 수 있죠. 이처럼 『중용』 이 말하는 ‘교’란 인간이 도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문물제도를 뜻합니다. 따라서 만약 오늘날 학교의 목적이 학생들의 도를 바르게 하기 보다 입신양명에만 힘쓴다면 『중용』이 말하는 교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죠.






이로써 『중용』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간혹 『중용』을 읽은 몇몇 분들은 그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라며 비판하곤 합니다. 특히나 도를 실천하라는 『중용』의 메시지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대체 일상에서 무엇을 실천하라는 말인지 알기 어렵다며 푸념하곤 하죠. 하지만 이러한 분들에게 『중용』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도불원인(道不遠人), 이는 도라는 것이 인간의 삶과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죠. 앞서 살펴본 도의 두번째 특징에서도 소개 드렸듯, 『중용』은 우리에게 일상의 사소한 것들부터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면서도 하지 않을 뿐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당장 유튜브를 끄고 책을 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고요, 또 식탐을 줄이고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실천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처럼 도를 실천하기 위한 답은 이미 우리의 내면에 있지만 다만 우리가 노력하지 않을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 도를 실천하려거든 대단히 거창하고 명예로운 사회적 사명을 쫓기 보다 먼저 맡은 바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힘쓰는 건 어떨까요.










끝으로 ‘중용(中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간략히 소개해드리고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중용(中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中和)라는 개념부터 살펴봐야 하는데요. 책에 따르면 중(中)이란 인간의 감정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가령 잔잔한 호수와 같이 아무런 동요도 떨림도 없는 평온한 마음 상태를 나타내죠. 그런데 이처럼 고요했던 인간의 마음도 때때로 상황에 맞는 감정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친한 친구를 만날 때 느끼는 행복한 감정이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느끼는 슬픈 감정처럼 말이죠.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상황에 맞는 감정을 드러내는 상태를 가리켜 ‘화(和)’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중(中)’이란 아직 감정이 발현되지 않은 평온한 마음 상태이며, ‘화(和)’는 상황에 맞는 감정을 드러내는 현상을 뜻하죠.



그렇다면 중용(中庸)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중화(中和)를 힘써 노력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중용(中庸)은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때에 따라 적절한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언뜻 보기엔 무척이나 쉬운 일처럼 들릴 지도 모릅니다.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할 줄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니 말이죠.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남몰래 타인을 험담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슬피 여길 줄 모르고요, 혹은 동료가 승진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지 못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슬퍼해야 할 때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때 슬퍼하고 마는 고장난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곤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중용』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태초에 하늘이 명한 성(性)이 존재하니 말이죠. 그러니 사사로운 욕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성을 쫓아 새로운 존재로 거 아무쪼록 배우기를 힘쓰고 행하기를 애쓰는 자기 수양의 길을 지성무식(至誠無息)한 마음으로 걸어 가시길 응원하며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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