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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Apr 01. 2016

공감 속에 숨겨진 나의 회복력(Resilience)

공감이 나를 버리고 타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나를 위한 회복력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받기를 원한다. 우리의 존재는 관계, 연결성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가졌음에도 뭔가를 함께 느끼고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 만족과 행복감을 안겨준다. 알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의중이나 감정적 반응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공감했을 때의 정서적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인간에게 공감은 긴장의 해결과 안도감, 고립의 탈피와 인간으로서의 확장, 안정감이 아닐까? ‘정’에서 ‘반’을 통해 다시 ‘합’으로 이어지는 진화와 발전의 과정은 아닐지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무너뜨리지 않고 잠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공감(empathy)은 인간의 사회성을 높여 줄뿐 아니라 만족과 안정감 등 긍정적이고 행복감을 선사해 준다. 공감이 나를 버리고 타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능력이고 사회적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역경에 대한 회복력인 셈이다. 


우리에게 ‘공감능력’은 서로 다른 입장으로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는 사회생활 속에서 타인들과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으로 벌어지는 의식적 낭비를 줄일 수 있도록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필요이상으로 긴장하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해석하고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정적이 상상을 강화하기 쉽다. 미숙한 관계에서 우리의 뇌가 상대적으로 낮은 스트레스임에도 필요이상으로 예민한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공감능력은 우리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키워주는 숨겨진 회복력이다.       


 공감은 태도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뇌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거나 적절하게 활성화되지 못하면 자신의 입장을 인식하면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뇌의 여러 기능이 통합적으로 잘 연결되어야 원활하게 발휘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감능력이다. 고차원적인 뇌의 발달과 반복된 경험을 통한 활성화가 받쳐주지 않으면 공감은 어려운 일이다. 공감을 위해서는 일단 우리의 주의가 타인의 상황이나 표정, 신체의 움직임, 말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주의가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사람도 많다.(그럴 필요를 느끼는데 무감각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동한 주의는 타인에서 유지되면서 다양한 정보를 인식하게 된다. 주의에 의해 인식된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회라는 곳에서 인지적 판단을 한다.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를 움직이게 된다. 여기서 정보를 통해 마치 자신이 감정을 느끼듯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슐라는 곳에서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그런 결과들이 전두엽에서 조율되면서 상황을 이해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느낀 점을 마치 자신이 느낀 것처럼 통합된다. 정보나 상황은 타인의 것이지만이를 느끼고 해석하는 것은 자신의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한다. 그래서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는 뇌의 여러 균형이 완성되는 시간이 필요하고 자신을 인식하는 자기인식(self-awareness)능력이 중요해진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이 시스템적으로 잘 작동되어야 공감능력도 원활하게 발휘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이 녹아 있어 해석할 수 있는 바탕이 잘 되어 있어야 공감도 쉬워진다. 그러니 공감능력도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단련하듯이 교육되고 훈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관계로 엮인 삶의 역경을 쉽게 해쳐나가고 대립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기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공감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공감의 출발점이 그렇듯이 그 결과의 혜택도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공감능력은 사회생활에서 성과를 높이는데 유리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감정조절능력을 키워준다. 자연스럽게 감정적 혼란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지켜줄 수 있다. 공감은 자신이 받아 본 배려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릴 적 부모의 공감이 무척 중요해진다. 어릴 때 부모의 공감은 아이의 미숙한 뇌가 작은 스트레스를 잘 이겨 내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점점 일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훈련이 부모의 공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 훈련 속에는 나와 다른 사람의 대립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해석과 대응을 어떻게 할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아이들이 받은 공감은 따듯하고 긍정적이며 편안한 감정을 촉진하는 호르몬을 늘리기도 한다. 결국 공감능력이 삶의 역경에서 회복력을 강화하는 열쇠라는 측면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주의를 집중하고 심사숙고하는 균형감각이 만들어 내는 능력들이다. 경쟁이 심하고 우리의 주의가 산만하게 분산되는 현대는 공감이 쉽지 않은 능력이 될 수밖에 없다. 격렬한 경쟁은 공감을 위축시킬 수 있다. 자원이 귀한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경쟁은 공감적 관심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격한 경쟁에서 때로는 물러서서 바라보는 기회가 더 나은 발전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주의가 분산되어 있을 때는 공감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우리의 주의는 기본적으로 “나”에서 출발한다.  이런 주의를 “당신”이란 타인에 맞춰서 생각하는 일이다. 산만하고 수동적인 주의력으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공감을 통해 가지는 인간의 회복력은 주의를 타인에게 집중하는 반복된 훈련 속에서 만들어지는 셈이다. 감정적인 교류에 능한 부모가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 준다고 한다. 감정적 교류를 통해 아이들의 주의를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래서 얻어진 정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연스럽게 학습하도록 한다. 오늘부터 나의 주의를 “나”가 아닌 “너”로 바꾸어 생각하고 느끼는 훈련을 일기 쓰듯이 해 보는 것을 어떨까? “저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저 사람입장이라면 뭐가 가장 문제로 다가올까?”  몸을 앞으로 하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 경청실습을 의도적으로 하면 상대의 말을 편견없이 들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다. 상대와 일치되고 동기화된다는 의도와 동작만으로도 우리는 인식과 심리는 바뀐다. 그래서 인생도 바뀐다. 


브런치의 글들이 <북프로젝트>의 대상을 받고, 책으로 나왔습니다. 브런치의 글과 그 외의 글들이 세련되게 정제되어 나왔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요~~~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책들의 정원, 김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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