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수단화시키고 자신을 소외시키는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탈출할 필요
아직도(영원히 일지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는 우월감을 사려는 사람이 자존중감을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것 같다. 우월감은 잘 보이고 자기존중감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둘의 구분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둘 다 무엇인가를 열정적이고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기로는 동일하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같은 결과에도 세상을 해석하는 ‘해석논리’가 다르다. 우월감이 높은 사람은 결과를 중시한다. 자신의 가치가 결과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을 때는 우쭐하고 만족스럽지만 부정적 결과에는 크게 좌절하고 쉽게 열등감을 느낀다. 부정적인 결과에서 우월감의 비슷한 말은 열등감인지 아들러(Alfred Adler)는 “자기가 타인에 대해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배후에는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반면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열정과 몰입을 더 높이 평가하고 만족해한다. 과정에서 어떤 것을 느끼는가를 중요시한다.(과정을 누리려는 사람은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그래서 부정적 결과는 새로운 과정을 위한 도전과 기회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성공을 위해서 시도할 새로운 과정에 더 큰 호기심과 가치를 두는 경향이 높다. 이러니 실패에 대한 해석논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요구하는 우월감은
자신이 하는 일과 시간을 모두 수단화 시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내어주는 것과 같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판단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있는지 아니면 타인의 판단에 있는지에 따라 우월감과 자존감은 차이가 난다.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요구하는 우월감은 자신이 하는 일과 시간을 모두 수단화 시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잘 했다고 해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어도 그 어떤 상대와 비교해서 좋지 못하면 스스로를 그 성공을 인정하기 어렵다. 1분 1초도 자기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마이너스 시스템인가! 자기존중감은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이 그 일 자체인 경우가 많다. 그 일을 하는 것이 의미 있고 즐겁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목적과 보상이 된다는 의미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왜 그것을 하니?”라고 물으면 타인의 인정과는 상관없이 “재미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한다. 놀이나 레저 스포츠 외에도 우리가 하는 일들이 스스로의 의미만 부여되면 이것은 ‘자기목적적(autotelic)' 행동이 될 수 있다.
자기존중감과 우월감의 균형이 깨지고 나면
우월감은 인간에게서 자신감과 자기가치를 빼앗아 타인에게 넘겨주게 된다.
우월감은 타인에게서 확인하는 자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서 열심히 하는 자기목적적 행동의 바탕에는 우월감이 아닌 자기존중감이 자리하고 있다. 타인의 기대와도 호흡하지만 타인의 인정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우리 행동의 동기를 타인의 인정이나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함에 빼앗기지 말고 자신의 즐거움, 의미, 자기 능력의 확장 등 자기 자신에게 두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역경을 뚫고 원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일을 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논리’를 가지는 것이다. 타인이나 주변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유를 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주변의 환경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기를 갈망한다. 인간이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학습하려는 것은 자신감을 느끼려는 욕구 때문이다. 호기심과 도전, 알려고 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진화적으로 자신감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집단을 떠나서는 생존이 힘들었던 환경, 그리고 집단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인정을 받아야만 했던 인간의 환경을 보면 우월감에 대한 집착도 이해할 수 있다. 자기존중감과 우월감의 균형이 깨지고 나면 우월감은 인간에게서 자신감과 자기 가치를 빼앗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경향이 있다. 우월감은 타인에게서 확인하는 자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때 타인이 만족하지 못하거나 1등이 아니면 자신의 가치와 믿음을 지켜내기가 힘들어 진다. 이것이 우월감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월감은 장기적으로 회복력을 갖기 힘들지만 자기존중감은 회복력을 더욱 더 활성화시킨다. 오히려 역경이나 실패는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해석된다.
“나는 단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책의 제목을 통해 우월감을 사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우선순위를 받쳤던 자신을 통렬하게 반성한 적이 있다. 바꾸면 “나는 단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다.”로 말할 수 있다. 행동의 기준과 의미, 그리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모두 자신에게 있다. 일어난 결과에 대한 수용과 새로운 도전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해석논리”가 자신을 기준으로 움직이게 된다.
우월감과 자존감은 성공의 결과에는 표면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다. 그 차이는 실패나 역경에 앞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우월감은 장기적으로 회복력을 갖기 힘들지만 자기존중감은 회복력을 더욱 더 활성화시킨다. 오히려 역경이나 실패는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해석될 것이다. 성공의 자리에도 우월감은 홀로 돋보일지 모르지만 자존감을 통한 성공은 주변의 많은 사람을 함께 그 잔치에 끌어들이게 된다. 꼭 1등이 아니어도 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의 사람들을 물리치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성공을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기가 수월하다.
유행과 같은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실패와 성공을 반죽할 수 있는 힘을 키워가야
우월감과 자기존중감을 구분하는 것부터 진정한 자기존중감과 행복의 자리가 만들어 진다. ‘타인의 인정’이란 끈을 놓아 버릴 때 좀 더 쉽게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다. 실패한 것 같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가치와 의미가 명확해진다. 그리고 내가 달렸던 시간은 자신을 위한 도전의 시간으로 하나도 버릴게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나는 단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유행과 같은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실패와 성공을 반죽할 수 있는 힘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길에서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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