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에 겨울이란 없다. 사계절이 여름나라인 곳. 나는 일부러 태닝한 듯한 건강한 피부를 가졌다. 늘 팔다리가 탐스럽게 드러난 복장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내가 일하는 곳은 마을을 벗어나 해변가에 위치한 작은 카페. 내 가게에서 판매일을 한다. 손님은 파도를 즐기러 온 서핑족이나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로컬주민들. 그들은 주로 음료를 손에 쥔 채 자리를 떠난다. 수입은 적지만 나는 그런대로 자족한다. 바쁘지 않을 때에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 화려한 도시의 이야기들을 주로 읽는 걸 보면 그곳을 동경하는 걸까 생각하기도 한다.
타국의 손님들에게서 이질적인 기분과 함께 어떤 그리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두고 온 삶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이 주문한 음료를 건넬 때 잠시 스친 손 끝으로 무한한 블랙홀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때로 그것들은 작은 돌멩이가 되어 가슴속을 한없이 굴러다니기도 한다.
늦은 오후 무렵이면 가게를 닫는다.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세우고 식료품 점에 들러 간단한 식재료를 산다.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즐긴다. 이 외딴곳에서 꿈과 고독에 적절히 타협하며 살아가느라 터득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이른 아침의 조깅도, 주말의 악기 교습도 존중의 방식이다. 내가 날 위해서 하는 모든 소소함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가끔 동네 주민들과 바나나 잎사귀로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기도 한다. 거기서 만난 내 또래의 여성은 인근 리조트에서 춤추는 무희라고 한다. 그녀 역시 자신의 주어진 삶에 만족한다. 그들의 순박한 웃음에 동화되다 보면 화려한 도시에 대한 생각은흩어지고 만다. 도시의 노을도 이곳처럼 선명한 보라색일 거라 믿는다. 나의어떤 상실은 무한한 자유로움으로 온전하다.
그런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인생을 상상하는 오늘은 영하 13도의 겨울 한복판이다. 나는 거기서 잘 지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