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모든 것에 직면하는 것
지경을 넓히다.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곤 했다.
이럴 땐 그저 나의 사고와 아량과 이해가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고 무한긍정을 담아서 염원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너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이렇게 말을 하거나 듣는 경우가 있다. 너의 형편과 사정이 거침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도록 뭘 했니? 혹은 누가 그랬니?... 같은, 사정이 상당히 안 좋아졌을 때 지경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흔히 기도에서 쓰는 지경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땅의 경계를 뜻한다는 걸 찾아서 알게 되었다. 지경을 넓힌다는 건 땅덩어리를 넓혀주시옵소서.. 이 뜻인가? 성서적으로 해석하면 믿음이 더 견고해지고 강해지며 세상적으로도 월등한 존재를 뜻한다는 걸까? 누구의 설명을 안 들어봐서 잘은 모르겠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지경이 넓어진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알아야 하고 체험해 봐야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안락함 평안함만 추구하면(그렇다고 내 인생이 평안함만 있진 않겠지만) 지경이 넓어질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대개는 절망한다. 절망하고 울부짖고 세상을, 신을 원망한다.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고 그 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을 찾으며 편안함이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내부적 외부적) 나의 고통이 확 다가오는 순간이 오면 한동안 우울함의 늪에 빠져 지내기도 한다.
뭘 알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런 흔해빠진 기도나 읊으면서 말이다. 이 상황이 되면 지경이고 나발이고 그냥 나 세상 사는 동안 편하게 좀 해 주세요. 그런 기도가 장땡인 거 같고... 고통 속을 헤맨다고 누구나 지경이 넓어지는 건 아니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세상이 소수를 우선하고 인정하는 곳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염원한다. 내가 다수이면 다수를 우선하고
소수이면 소수를 우선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젠 다수여도 소수를 생각하고 존중하는 세상이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