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당신께

나는 이렇게 놀아요

by 자화상

어느 비 오는 날, 내 뒤를 졸졸 따라와서 그날로 이름도 없이 같이 살게 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요. 시간이 나면 나는 녀석이랑 놀아요. 내가 좋아하는 가장 얄궂은 놀이는 녀석이 밥을 먹고 있을 때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덥석 꼬리를 잡는 거예요. 녀석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부러 하는 거죠(저는 사이코일까요?). 그럼 녀석은 밥을 먹으면서도 화가 나서 계속 으르렁거려요.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해서는 안 될 짓인 걸 알면서도 꼭 한 번씩 녀석의 약을 올린답니다.

녀석의 신경을 건들지 않아야 같이 살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고양이 같이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고 말 거예요. 삼 년을 세 한 푼 받지 않고 숙식을 제공하고 있는데도 녀석은 늘 당당하게 내게 선을 긋거든요. 고양이가 학 소리를 내면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게 바로 고양이의 ‘NO’예요. 너무도 확연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 의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죠. 자고 싶을 때 놀자고 하면 학 소리를 내요. 우당탕 다가오면 놀랐다고 또 학 소리를 내죠. 고양이랑 살다 보면 저절로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처럼 발걸음을 조심하게 돼요. 녀석의 신경을 건들지 않아야 같이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고양이를 들입다 거절만 하는 동물로 여기면 안 돼요. 원하는 게 있을 때는 물가에 심은 버드나무처럼 얼마나 간드러지는데요. 발라당 누워서 온갖 애교를 부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릎에 올라와서 그르렁그르렁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피곤한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발로 꾹꾹 눌러 지압도 해준다니까요. 가는 데마다 쫓아다니면서 간식 달라고 졸라대는 것은 또 어떻고요. 뭐든 얻어먹겠다고 부지런히 오물거리는 그 조그만 입을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요. 근심이 다 사라지고요.


당신이 번아웃 증후군으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가슴 한편에 늘 게으름을 싣고 다니는 나 같은 베짱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병이죠.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으면 한창나이에 기력이 다 소진되었을까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요. 침대에 누워 스물네 시간 잠만 잔다고 해서 마음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이 아니래요. 자기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무언가에 연결해야만 기운이 다시 차오를 수 있는 거래요. 그러니 이 지점부터 문제가 복잡해져요. 내가 무엇으로 충전되는지 스스로 알아내야 하거든요. 한 번도 쉬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휴식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워런 버핏이라는 부자가 있어요. 전세기 스무 대를 돌려가면서 여행하는 취미쯤은 가졌을 것 같은 그가 가장 즐기는 취미는,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래요. 어느 음료수 광고에서 그 모습을 보았는데 아쉽게도 듣는 사람 입장은 그리 즐겁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뭐 어때요? 본인이 즐거우면 그것으로 된 거죠.


열심히 사는 것은 그만 잊어버리고 이제 노는 법을 배워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차근차근 알아내는 거예요. 여기에 지름길은 없어요. 남들 노는 것을 하나씩 따라 하는 수밖에요.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일반적으로 사람, 자연, 문화에 연결될 때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사실이 연구로 밝혀져 있다고 해요. 알고 보면 그다지 큰 도움은 안 되는 연구지 뭐예요? 자연을 즐기는 법 하나만 해도 아마 만 가지는 넘을 테니까 말이에요.


이 몇 줄 안 되는 글을 쓰는데도 그새 배가 출출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후다닥 국수를 말아 먹고 이어 쓰는 중이에요. 고양이 녀석이 육수에 멸치가 들어간 것을 귀신같이 알고 또 다가오네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호시탐탐 멸치를 노리고 있어요. 육수는 이미 우릴 대로 우렸으니 내주어도 될 테지만 나는 녀석이 그러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서 멸치를 사수하고 있어요. 녀석이 멸치를 먹겠다고 다가오면 밀쳐내는 놀이를 하고 있죠. 이 순간에도 태생이 베짱이인 나의 뇌는 유희 회로를 돌리고 있는 거예요.


나는 고양이와 놀 때 서걱거리던 마음이 부드러워져요. 그렇다고 당신에게 고양이를 키울 것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마다 휴식하는 법은 천차만별이니까요. 당신은 누구와 만나는 것을 좋아하나요? 무슨 음식을 좋아하나요?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이 좋은지, 혹시 그게 아니면 여행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은 아닌지. 하나씩 하나씩 섬세하게 생각해 보고 내게 말해줘요. 내가 다 들어줄게요.


사실 나는 고양이와 노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요. 바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마음을 터놓고 내게 의지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것을 좋아하죠. 마음으로 부르는 내 노래가 당신에게도 괜찮게 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려나 글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고양이 녀석이 어떻게 또 눈치를 챈 모양이에요. 다시 멸치를 향해 다가오네요. 녀석의 사전에 포기란 말은 없는 게 분명해요. 그만 멸치를 내주어야겠어요. 덕분에 또 잘 놀았지 뭐예요.


P.S. 우리 엄마는 고양이라면 아주 질색을 해요. 털 빠지는 짐승을 집에 두었다가는 큰일 난다는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계속 늘어놓죠. 그러면서 엄마는 자나 깨나 성경책만 읽는답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진다나요? 나는 지루해서 하품만 나던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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