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책 6권 읽는 방법
나는 보통 3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다. 무슨 말이냐면, 집에 항상 세 권 정도의 책을 구비해 두고 각각의 때와 장소에 따라 나눠 동시에 읽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세 권의 책은 읽는 시기, 장소에 따라 그 내용과 판형이 다르다. 먼저 한 권은 출퇴근길에 읽는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나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 가방에 지니고 다녀야 하므로 지나치게 두껍거나 커서는 안 된다. 양장본으로 만들어져 들고 읽을 때 펼치기 어렵거나 무거우면 탈락이다.
내용 또한 중요한데, 번잡한 만원 지하철 안에서는 독서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너무 어렵거나 메모가 필요한 내용의 책보다는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집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시집도 좋다. 조도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종이가 코팅되지 않은 것이면 더 좋다. 코팅 재질의 종이는 빛을 반사해서 글자가 날아가 읽기 힘들고 지하철의 백열 조명과 만나면 눈이 금세 피로해진다.
두 번째는 아침에 책상에서 읽는 책이다. 나는 출근 전 15분가량 짬을 내 책을 읽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차피 읽는데 집에서도 또 읽느냐고? 그렇다. 출퇴근길 책을 못 읽는 날이 많아서 아침 시간을 따로 할애하는 거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젖은 우산을 들고 서서 책을 꺼내 읽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앞뒤양옆 사람과 거의 한 몸이 되어 가는 날에도 책 읽기 어렵다. 또한 나는 출근길에 환승을 하기 때문에 독서의 흐름이 짧게 토막 나기도 한다. 간밤에 온 연락에 긴 답장을 해야 하거나 혹은 피곤한 날 그냥 눈을 감고 열차에 몸을 맡길 때도 있기 때문에 아침 시간을 따로 내 책을 읽는다.
아침에 책상에서 읽는 책은 나눠진 챕터의 호흡이 짧아야 한다. 책에 빠져있다가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책장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처럼 이야기가 죽 이어지고 중간에 끊기가 어려운 책은 적합하지 않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 처음 읽는 긴 텍스트이기 때문에, 책을 읽다 다시 눈이 감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챕터가 잘게 나눠져 있으면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한 권은 잠자리에서 읽는다. 자기 전 10분이라도, 아니 그냥 한 페이지라도 무언가 읽으려 노력한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만지면 숙면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숙면을 위해, 그리고 자기 전 뭐라도 읽었다는 만족감을 위해 한 권은 침대맡에 둔다.
이때 책은 내용이나 판형에 크게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아무거나 편하게 읽는다. 평소 읽어보고 싶었지만 쉽게 도전하기 힘들었던 철학서도 좋다. 나는 이 방법으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다 읽었다. 지금은 미국의 부호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읽고 있다. 지루하고 어려워 몇 장 읽다 잠이 온다 한들 상관없다. 어차피 잠자리에 두는 책이니까.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 내려가는 방법으로 독서하는 사람이 꽤 많다. 이러한 독서법을 ‘플랫폼 독서법’이라고도 한다. 이 독서법을 활용하면 여러 책의 내용을 서로 연결해 그 주제에 대한 거대한 지식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 독서법을 부르는 말이 있다는 것도 지금 알았다.)
이 독서법으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 궁금할 수 있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면 내용이 헷갈리지 않느냐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안 헷갈린다. 책의 내용은 그 형식으로 표현된다. 말랑한 인문 에세이는 작은 판형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글에 여백이 많으면 각 페이지의 레이아웃 디자인도 그에 맞게 여유롭다. 대체로 전체 분량이 길지 않기 때문에 두꺼운 양장본 표지로 만드는 경우도 많지 않다. 철학 고전이나 어려운 단어가 잔뜩 들어간 전문 분야의 책은 길이가 길 수밖에 없고 디자인 자체도 비교적 딱딱하다. 양장본으로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종이책만이 가진 물성은 책의 분위기를 만들고, 촉감으로 그 책을 기억하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없다. 글씨체와 지질까지 책의 내용과 어울리게 만든다. 종이책은 양손에 잡히는 종이의 부피감으로 어디까지 읽었는지 알 수 있고,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과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의 느낌도 온전히 와닿는다.
아주 어릴 때 읽었던 책 중에 기억나는 게 있는가? 있다면 책의 내용과 함께 표지 디자인과 감촉, 그 책만의 종이 냄새 등이 한꺼번에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더라도 헷갈릴 일이 없다. 각각의 책은 각기 다른 감각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책은 읽는 것이다. 출판업계는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소장가치가 있는’ 책을 찍어내고 다양한 사은품을 붙여 소비자를 유혹한다. 물론 사서 읽으면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열독을 다짐하는 많은 사람이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 않는다. 책을 일단 구매해 놓고 언젠가 읽어야만 하는, 일종의 숙제처럼 여기게 되면 책장에 꽂힌 책등만 봐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도서관은 이러한 숙제에서 해방시켜 준다. 또한, 수만 권의 장서가 가득한 쾌적하고 넓은 서재(!)를 제공하며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다. 도서관에 온 다른 사람들을 보며 독서 의지를 불태우기도 좋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반납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싶은, 혹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사람이면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도움이 된다. 좋든 싫든 기한이 지나면 책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빌려놓고 안 읽으면 도서관에 가느라 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기 때문에 한 페이지라도 뒤적이게 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끝까지 읽을 수도 있다.
딱히 원하는 책이 없더라도, 일단 도서관에 가면 한 권 정도는 읽고 싶어지는 책을 만난다. 하도 유명해서 제목을 익히 들어본 책이 있을 수도 있고 예전에 읽다 포기했던 책도 있을 수 있다. 제목에 끌려 나도 모르게 집게 되는 책도 있다. 운동을 하려면 일단 집밖으로 나와야 죽이든 밥이든 되는 것처럼,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면 어떻게든 된다.
내가 원하는 책이 있다면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 도서관은 희망도서에 편성된 예산이 있다. 수준이 너무 낮거나 미풍양속을 헤치는 책이거나 과도하게 비싼 책이 아니면 대체로 구비된다. 한두 달가량 책이 도착하길 기다려야 하지만, 그동안 다른 책을 읽고 있으면 된다. 오래 기다렸다 책을 받아보는 기쁨도 있다.
결국 다독에 있어 고려해야 할 지점은 ‘읽는 행위에 어떻게 재미 붙일까’ 하는 문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나에게 잘 맞았던 방법은 도서관에서 한 번에 3권 정도를 빌린 뒤 동시에 읽는 것이었다. 반납 기한이 다가오면 같은 방법으로 또 세 권을 빌린다. 조금 덜 읽었어도 괜찮다. 한 장도 안 읽은 것보다는 무조건 나으니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독서하면 어려울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