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좋아하는 일에 하루 몇 분을 쓰나요?

by 흐르다

어느 날 우연히 본 뉴스레터에 그런 문장이 있었다. '당신은 좋아하는 것에 하루에 몇 분이나 쓰고 있나요?'. 글쓴이도 어느 책에서 본 문장이라는데, 그걸 읽고 생각해 봤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하루 몇 분을 쓰고 있나. 대부분의 평범한 생활인은 자신의 하루를 원하는 걸로만 채우기 힘들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 일로 돈을 벌어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각해 본다. 나는 하루 중 얼마큼의 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쓰고 있지?




내 시간을 남에 맞춰서 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회사 갈 준비를 한다. 옷을 입고 단장하고 물 한잔을 마신다.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것들의 순서는 대략 비슷하다. 시간을 확인하고 집을 나서서 회사로 간다. 저녁이 될 때까지는 가끔 재미있고 때때로 의미도 있고 대체로는 지루한 무언가를 한다. 집에 돌아오면 해는 저물어있다. 배가 고프다. 밥을 해먹기도 귀찮다. 대충 한 끼를 때우고 나서는 널브러져서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뭘 볼지 고민하다 잠든다. 중간에 운동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 등 다른 일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매일이 비슷하다. 지루할 때도 있지만, 이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좋다. 평범한 하루가 있기에 가끔씩 일어나는 삶의 이벤트가 큰 재미가 된다. 무엇보다 이 사랑스러운 권태로움이 있기에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가끔은 내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도 되나, 싶다. 나를 찾는 사람에게 응답하고 'RE:'가 5개쯤 찍힌 메일에 계속 이어 답장하면서 하루가 지나도 되는 것인가. 하루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 없다. 일에서의 성취 말고 낭만에서의 성취. 순수하게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그래서 자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시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루 24시간 중에 일부는 잠을 자는 데 쓰고 출퇴근에 쓰고 일을 하는 데 쓴다. 그러고 나면 내 시간은 저녁 잠깐 서너 시간이다. 그래서 그 짧은 여유 시간을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자꾸 게으름을 피운다. 잠들면 다시 회사를 가야 하니까.

시간이 한정적이라면 '어떻게' 그 시간을 쪼개 쓸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어디에 얼마를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과 같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에 쓰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출근 전이나 퇴근 후를 이용하는 방법뿐이다. 나는 어떤 시간을 선택할 것인가.



말로만 좋아한다고 해놓고


나는 지금껏 내가 아침형 인간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침엔 알람 소리를 5분 뒤, 또 5분 뒤로 미루고 미뤘다가 겨우 일어나는 편이고 새벽만 되면 집중력이 좋아진다. 학창 시절 시험기간에는 낮 시간엔 놀다가 밤만 되면 불을 켜고 새벽까지 공부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제는 밤새서 하는 게 당연했고 학교 앞 24시 카페에 새벽까지 남아서 글을 쓰곤 했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다. 심지어는 교수님도 글은 밤에 쓰고 아침에 퇴고해라, 그러면 고칠 점이 보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글 쓰는 인간은 으레 그랬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졸업하고 나서도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에 <공부왕찐천재> 채널에 출연한 김미경 강사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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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을 보고 문득 일찍 일어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새 일상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용기는 사라져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조차 대충 흘려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를 남의 요청에만 응대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회사에 가기 위해 눈을 뜨고, 일어나면 메일함을 열어 나를 찾는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했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그래서 그냥 나를 위한 목표를 세웠다. 앞으로 일찍 일어나 보자고.

그래서 평소보다 알람을 10분 일찍 맞췄다. 고작 10분이지만 어쨌든 10분 늦게 일어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봤다. 큰 변화가 있진 않았다. 그다음 주는 10분 더 당겼다. 여기서부터는 변화가 좀 느껴졌다. 아침에 나갈 준비를 다 했는데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괜히 집안을 정리하거나 시계를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면 일찍 졸리기 때문에 주말에도 일찍 눈을 뜨게 됐다. 그다음 주에는 15분을 당겨봤다. 이제 아침에 뭘 해야 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라클 모닝, 아침 확언 같은 걸 찾아보면서 갑자기 의욕에 불탔다. 그리고 아침에 하기로 제일 먼저 결정한 것은 저녁에 쓰던 일기를 아침 시간으로 옮긴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내가 기특해서 이런저런 감상을 마구 적었다. 그다음 주에도 기상 시간을 조금 당겼다. 아침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로는 특별한 규칙 없이 기상 시간을 그때그때 조금씩 당겼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지금은 예전 평소 기상 시간보다 한 시간 반가량 일찍 일어난다.(나의 아침 루틴에 대해서는 글을 따로 적어볼 생각이다.)

아침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를 잘 들여다보면 나의 욕구를 알 수 있다. 나는 그간 운동할 시간, 아니 의지가 부족했고, 글을 쓰고 싶어 했으며, 책 읽기를 좋아했으나 시간이 없다며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좋아한다고 하면서 정작 거기에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니.

우리는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는 시간을 쓰고 있을까? 시간을 '못' 쓰는 것이라면, 하루 중 조금이라도 시간을 낼 수 있는 때가 언제인가. 혹은 시간을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시간을 내야만 한다. 그게 애정의 증거다.



시간 없다는 핑계로 안 하는 모든 것


'나태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게으름을 심판하는 장치로 등장하는데, 원판 위에서 돌아가며 죄인을 깔아뭉개는 원기둥을 피해 뛰어야 하는 곳이다. 이 원판 위에서 떨어지면 물에 빠져 인면어에게 물어뜯긴다. 죽어서까지 편히 쉬지 못하고 나태지옥에서 끝없이 뛰어야 하다니. 그래, 우리는 코로나19로 격리하는 동안에도 수천 번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와 수플레 오믈렛이 유행한 민족 아니던가.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 모두에게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 좀 덜 하고, 다 같이 조금씩만 게을러지자고도 한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쉴 시간이 늘어나는 것보다 그렇게 늘어난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다.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검소한 삶을 살아온 걸로 유명한데, 퇴임 이후 작은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공식적으로 신고한 전 재산은 폭스바겐의 1987년식 비틀 자동차 한 대다. 그가 한 말로 전해지는(상당 부분 의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 중에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살 때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시간으로 사는 것이다. 이 시간에 대해 인색해져야 한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써야 한다.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지금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만일 자유로워졌을 때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나는 바로 그 일을 요즘 매일 아침마다 한다. 침실의 커튼을 걷고 창을 열어 아침의 공기를 마시고, 산책을 나갔다 온다. 계절이 매일 변하는 것을 본다. 산책을 다녀와서 차를 한 잔 끓여 책상에 앉으면서 지금 느끼는 이것이 자유구나 생각한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을 때 할 일을 지금 당장 한다면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

주변인들에게 요새 일찍 일어난다고 자랑을 잔뜩 한다. 그러면 일찍 일어나서 무엇을 하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시간 없다는 핑계로 안 하는 모든 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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