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심플해질 것
최근 몇 년 새 '루틴', '리추얼' 같은 단어들이 자주 보인다. 파헤쳐보면 의미가 각각 다르지만 대체로 통용해서 쓴다. 어떤 일을 패턴화 시킨 일상이란 뜻에 가깝다. 요새 '갓생' 사는 사람들이 다 리추얼을 한다기에 궁금해졌다. 부자들의 습관이 아침에 이불 정리하기라던데, 나도 그거 하면 부자가 될까?
루틴(routine)은 일상화돼서 그 행위를 한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하는 행위의 집합체다. 우리말로 습관과 비슷하다. 반면 리추얼(ritual)은 의례, 의식이라는 뜻으로 행위를 분명히 인식한 채 의미를 부여해서 하는 행동을 뜻한다. 필요에 의해서 하며 의미가 담겨있다. 두 말은 종종 혼재되어 쓰이지만 루틴에는 행동에 대한 인식이 없고 리추얼은 있다는 게 차이다.
아침에 일어나 폰을 확인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나와서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는 것은 루틴에 가깝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을 하고 자기 전에 명상을 하는 것은 리추얼에 가깝다. 그 행위가 주는 효과를 인식하고 있으며 삶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져가려는 목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좋은 루틴이 모이면 리추얼이 되고, 리추얼이 반복되고 체화되면 삶의 패턴이 생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모양이 달라졌을 때 많은 이들이 루틴이나 리추얼, 습관을 강조한 이유도 이 이유에서다. 일상의 패턴이 무너지면 우리는 혼란스러움을 겪기 때문이다.
tvN의 예능 <어쩌다 사장> 시즌 3를 보면 갑자기 가게를 맡아 운영하게 된 연예인들을 위해 사장님들이 하루 일과를 글로 적어 남겨두곤 한다. 몇 시에 일어나서 가게에 오는지, 와서 무엇부터 하는지, 가게 오픈 전에 준비해놓아야 하는 건 뭔지. 이건 질서다. 이 루틴이 깨지면 하루의 질서가 흐트러진다. 미리 김밥 300줄을 말아놓지 않으면 손님이 와도 팔 수가 없는 거다. <어쩌다 사장> 시즌 1에 나왔던 작은 시골 슈퍼 사장님은 동네 손님들이 가게로 술 한 잔 마시러 오면 통조림으로 안주를 만들어 내어 주었다. 사람들 해 먹이는 건 고되긴 해도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란다. 손님들이 빈 속에 술 마시다 속 버리지 말라는 애정이 담겨있는 행위다. 그분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자 가치관의 방향이다. 질서가 있는 삶은 정갈하고 방향이 정해진 삶은 우아하다.
유튜브에 루틴이나 리추얼을 검색하면 수만 개의 영상이 뜬다. 아침 루틴, 나이트 루틴, 확언 명상 리추얼, 모닝 리추얼 등등. 관련 모임이나 강의도 여럿 있다. 유명인의 모닝 루틴을 따라 하는 사람도 있고 예술가나 부자들의 리추얼을 흠모하며 엮어서 책으로 내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도 아침에 하는 리추얼은 주로 정신을 수양하는 방법론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이불을 정리하고, 명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10번씩 반복해 읽으라는 식이다. 추진력을 얻는 행위들이다. 밤에는 주로 스트레칭이나 요가, 일기 쓰기 같은 걸 한다. 몸과 생각을 정리하는 행위들이다. 이렇다 할 정해진 건 없지만 어쩐지 아침과 밤에 다들 비슷한 걸 하는 걸 보면 그게 도움이 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비슷하게 해 봤다. 아침에는 이불속에서 꼼짝도 하기 싫었고 명상을 하면 잠이 올 것 같았다. 밤에 쓰는 일기에는 회사 욕밖에 안 쓰게 됐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내게 맞는 리추얼을 찾아보기로 했다.
원래 나는 침대맡에 일기장을 두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일기를 썼다. 자기 전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은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복기하며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은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복기하며 싫었던 일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는 거다. 김 부장이 했던 그 말, 내가 했던 실수, 이유 모를 우울함 같은 것. 그런 걸 일기에 쓰면 감정이 해소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나 보다. 부정적인 일은 기억에 오래 남아서, 일기에는 좋았던 일보다 별로였던 일들이 더 많이 쓰였다. 나중에 그 일기장을 다시 읽으면 지금 와서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로 괴로워하는 내가 보여서 가끔은 안쓰러웠다. 근데 사실 자고 일어나면 그런 감정의 대부분은 사라진다. 그래서 일기 쓰기를 아침으로 옮겼다. 아침에 쓰는 일기에는 지나간 일보다 지금 현재의 내 감정과 생각이 더 많이 담겼다. 가끔 어제의 일을 떠올릴 때도 조금은 가물가물해져서 지나간 감정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다. 현재의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일기 쓰기를 단순 기록의 행위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 집중하는 리추얼로 만든 것이다.
반대로 밤에는 자기 전에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정돈한다. 책상 위를 치우고 소파에 널브러진 쿠션을 제자리에 놓는다. 설거지한 그릇들이 다 말랐으면 찬장에 넣는다. 현관에 제멋대로 놓인 신발들도 모아 정리한다. 집안을 순찰하듯 구석구석 살피며 깨끗해진 모습을 보는 게 좋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 고요하고 깨끗한 집안을 둘러보면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호텔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청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지에서는 출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청소나 일은 일상에서 꼭 해야 하는 일들임에도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일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다. 그걸 명확히 알면 스트레스는 확실히 줄어든다.
리추얼은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 행위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리추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글로 적을 만큼 명료해 지기를 바라고 리추얼로 차 마시기나 명상을 하는 사람은 복잡한 고민을 떠나보내고 현재를 오롯이 감각하고 싶은 것이다.
회사 일에 매너리즘이 와 매일 왜 여기 앉아 이 일을 하고 있나 고민했던 때, 업무일지를 썼었다. 업무일지에 오늘 해야 할 일을 적고, 일과가 끝난 뒤에 그 일을 얼마나, 어떻게 했는지 적었다. 그 일지가 모여 일주일, 한 달, 1년 치가 되니 내가 그때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가 확실히 보였다. 그리고 얻지 못한 것도 보였다. 그러니 일이 심플해졌다. 여전히 하기 싫은 부분이 많지만, 크게 괴로워하거나 의미를 없다고 폄하하진 않는다. 어쨌든 이 모든 일이 모여 새로운 결과물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업무일지 쓰기도 내 리추얼 중 하나다.
리추얼은 생각 없이 흘러가는 삶의 방향을 한쪽으로 몰아준다. 그리고 그 방향은 내가 집중해야 할 일로 향한다. 불필요한 고민들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런 삶은 어찌나 심플한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심플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