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필사는 닮았다

by 흐르다

자주는 아니어도, 또 전문적으로는 아니어도, 가끔 마음을 정리할 때 명상을 하는 편이다. 호흡에 집중하는 짧은 명상이나 온몸의 힘을 빼는 수면 명상 같은 것들은 내 마음을 안정시킨다.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명상에 대해 가지는 오해 중 하나는 명상을 '생각을 없애는 훈련'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명상은 생각을 없애기보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아, 떠오르는구나 하고 흘려보내는 일이 명상이다. 그리고 그런 흘려보냄을 통해서 더 깊은 생각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명상과 필사는 닮았다. 필사는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 행위를 뜻하는데, 감명 깊게 읽은 글귀나 시를 적기도 하고 기사나 에세이를 옮기기도 한다.

명상의 효능(?)이나 이점이 많이 알려진 데 비해 필사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데, 나는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본다.

일단 필사를 하려면 글을 읽어야 하는데, 종이책은커녕 인터넷으로도 웬만한 길이 이상이 되면 읽지 않는 게 일상화 된 요즘이다. 현대인의 독해력과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기사가 찾아보면 몇십 개는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읽고 필사를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다. 그 주된 이유로 '지식의 함양' 등을 꼽는 사람이 대다수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고, 나 또한 읽은 글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식의 소유를 위해 필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 오후 우연히 필사를 하면서 느낀 감정은 그것과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지식이나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내는 길로 필사를 했기 때문이다.

필사라는, 무언가를 따라 쓰는 행위를 통해서 잠시나마 다른 일로부터 벗어나서 한 가지 일에 머리를 집중시키고 필사 외에 다른 활동에는 생각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면서 필사와 명상은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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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채우는 행위


첫째, 필사와 명상은 생각의 정리에 가까운 행동이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생각해 내기보다는, 있는 것을 정리하고 그것을 그대로 바라보는 활동이다. 명상이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바라보듯, 필사는 내게 영감이나 감동을 주었던 글을 텍스트로 바라보게 해 준다. 다시 읽어도 감동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글의 자모와 띄어쓰기, 문맥 등을 옮겨 적는 순간에는 글 자체의 뉘앙스보다는 해체된 문장을 텍스트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깊은 감정의 늪이나 생각의 차원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의 감정에 객관적이 되는 것이다.

둘째, 명상과 필사는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다. 흔히들 명상은 조용하고 사람이 없고, 마치 숲 속이나 아무도 없는 실내처럼 고요한 곳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명상은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다. 회사에서 회의 전에, 아침 등교/출근길에, 길을 걸으며 할 수 있는 마음명상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다. 나도 가끔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명상을 할 때가 있다. 필사도 마찬가지다. 필사를 문학적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역시나 고요한 공간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물론 주위가 조용하면 필사를 할 때 오타를 덜 쓰거나 문장을 따라가기 좀 더 수월하지만, 굳이 그런 공간이 아니어도 필사를 할 수 있다. 집이든 밖이든,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필사를 시작해 보면 내 손이 글을 쓰는 대로 내 정신도 집중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 쓰던 깜지 같은 것을 떠올려보자. 무언가를 적는 행위가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셋째, 명상과 필사는 안정을 가져온다. 잠시간 어느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여 빠져드는 일은 그것을 끝마쳤을 때 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것은 만족이나 풍요와도 비슷하다. 엉킨 머리카락을 빗질하여 매만지고 나면 머리칼이 차분해지고 원래의 볼륨이 자연스레 살아나듯이, 내 마음의 엉킨 생각도 명상이나 필사로 다듬고 나면 한결 차분해지면서도 풍성해진다. 일, 학업, 스트레스,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말, 행동으로 어지럽던 머리가 정리된다. 필사를 이용해 그것으로부터 주위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 노동을 하면 아무 생각이 안 들면서 마음이 안정되는 것과 비슷하다.




필사는 명상과 견줄 만큼 마음을 씻어내는 행위다. 무엇보다 닮은 점은 둘 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사를 위해서는 노트 한 권과 필기구만 있으면 된다.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인터넷으로 잘 쓰인 기사나 시를 검색해 마음에 드는 걸로 적어도 좋다. 당장 시작하기에 무리가 없는 취미다.

작업을 끝낸 뒤에도 노트 한 권과 필기구만 남고, 나중에 처치곤란이 될 '완성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내 맘에 쏙 든다. 많은 종류의 취미를 가져봤지만, 결국 나중에는 전리품 같은 수많은 완성품을 버리거나 서랍 한편에 처박아두기 마련이었다. 미니멀 라이프의 관점에서도 필사는 내게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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