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이후 다시 일상을 되찾기 위해 해 왔던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
부제: 암 경험 활용 지침서
저는 흔히 말하는 결혼적령기, 비교적 젊은 나이인 서른두 살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치료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이 암이라는 녀석을 수습하기에도 정신이 아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 경력단절이라는 두려움이 항상 존재했기에 소속된 회사와 협의해서 재택근무를 병행하였고 일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막상 3년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좀 더 치료에 집중했어도 되었을 법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긴 인생에 찾아온 잠깐의 쉼표, 그 쉼표를 충분히 즐겨도 되었으니까요. 미혼의 젊은 암환자가 직면하는 가장 큰 걱정은 두 가지 일 것입니다. ‘결혼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뭐 먹고살지?’라는 두 가지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더 이상 두려움의 아이콘 ‘암’이 아닌, 특별한 경험으로 활용되는 암경험 지침서를 시작합니다.
암환자가 되면 여러 특혜들이 주어집니다. ‘중증환자산정특례‘와 같은 제도적인 것은 암경험을 즐기기 위한 특혜가 될 수는 없겠지요.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온 ˙ 오프라인 경계 없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여러 채널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 먼저 일기를 써 내려가는 것으로 ’나‘라는 사람의 기록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모든 감정을 모두 토해내고자 시작했던 글쓰기는, 같은 경험을 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통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읽게 되는 기록은 살아가는 데 있어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글쓰기라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고 나니,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이때가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으로 단발, 장발, 흑발, 금발... 온갖 가발 아이템을 착용하다 보니, 다양한 패션을 시도하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꼭 인모가 아니더라도 상당한 기술로 구현한 저렴한 가발이 많이 있습니다. 가발 하나가 하루의 애티튜드를 바꿔주는 경험도 이때가 아니면 흔히 해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올해 여름에는 시원했던 민머리 시절이 그립기도 했으니까요. 한번 민머리를 해보니 이제는 삭발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암 경험은 작은 것부터 두려움을 없애주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귀한 경험입니다. 기왕 직면한 현실이라면 내일은 내일 생각하고, 조금은 즐겁게 오늘은 보내도 되지 않을까요?
좀 더 많은 다양한 영역의 긍정적인 암 경험자와 소통하고 싶다면, 사회적 기업들의 활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암 경험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과 강연들을 통한 활동은 항암 치료과정에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아픔‘만이 가득한 공간이 아닌 활기찬 에너지가 넘치는 곳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을 때, 불안한 심리가 많이 해소됩니다. 치료가 힘들다는 이유로 움츠러들 때에는 몸과 마음에 괴로움도 함께 찾아왔고, 나에게 온전한 쉼의 시간을 줄 수 없었습니다. 활동적인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짧은 명상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가장 완벽하게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YES!
저뿐만 아니라 주변 암 경험자들 모두가 경험한 현실이자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암 경험을 직면한 순간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랑에 대한 깊이가 깊어질 것입니다. 반면에 멀어지는 관계도 있겠지만, 이미 양쪽 혹은 한쪽이 먼 관계였기에 더 멀어진 것일 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면 좀 더 깊이 있는 관계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연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암 경험은 ’나‘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암 경험 이전에 저는 가족과 친구, 연인과의 관계에서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배려라는 이유로 마음과 표현을 감추고, 상대에 맞추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겸손이 덕목이라는 틀 안에 항상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습니다.
’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들을 하나 둘 해낼 때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을 아프게 바라보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덕분에 결점이라 생각했던 암 경험이, 지금은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귀한 경험이 되어 스스로를 이야기가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치료 과정, 그리고 암 경험자로서 지내는 지금까지도 아직은 불편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크게는 체력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불편함을 감내하면서까지 상대를 위하는 상황들은 피하고 있습니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상대가 편하면 좋은 관계들은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기적으로 생각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서로가 모두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가 가장 건강하고 깊은 사랑이 있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배려가 아닌 이해를 기반으로 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암 경험은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할 때에 진정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는 말의 뜻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암‘이라는 고약한 녀석도 즐길 줄 아는 사람, 진정 사랑하는 관계들로 가득 채운 사람. 이 모든 걸 다 해낸 대단한 이 경험으로 못할 것이 있을까요?
항암치료 중에도 회사 생활을 병행했지만, 경영악화 등의 여러 사정으로 치료가 끝난 후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암 경험을 새로이 맺는 사회생활 속 관계들에게 공유해야 하는 건지, 이 경험이 이직에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는 않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처럼 온 힘을 다해 지친 몸으로 버텨가며 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건강이 제일 중요한 시점인데 야근도, 외근도 잦은 공간 설계 디자인의 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앞으로 나는 이제 뭐 먹고살지?
10여 년간 한 분야의 경력을 쌓아왔지만 기술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 저에게는 방향을 잡기에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수입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다시 어떤 일이든 시작해야 하는 급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암 경험으로 새로운 것을 접하고 시도하는 용기는 기본기가 되어있었고, 그동안의 경력을 활용한 넓은 분야에 닥치는 대로 입사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나의 일상을 규칙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 수단‘으로서의 사회 복귀를 꿈꾸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반 동안의 구직자 생활은 10번의 면접과 함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암 경험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일에 몰두하는 기본 성향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말이에요.
위치가 가까워 출퇴근이 용이하고 체력 소모가 적은 위치, 그동안의 경력을 기반으로 분야를 넓힐 수 있는 업무, 지금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 등을 모두 영위할 수 있는 곳에서 복귀의 신호탄을 올렸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길게 남은 만큼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일들을 도전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래는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 진학에 대한 꿈도 꾸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잠시잠깐 동경했던 귀농의 꿈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전의 ’나‘를 한 가지로 표현해 왔다면 이제는 다양한 얼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에 그치지 않고 ’ 이때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이 앞서요. 생각과 함께 실행하는 사람이 되고 보니 하루가, 그리고 일 년이 참 10년처럼 알차요.
우리 이제 ‘꿈’을 먹고살아요.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것이 아니라, 가장 빠른 날이기에 오늘만큼 좋은 날은 없을 거예요.
돈의 가치도, 사회생활의 가치도 모두 ‘나’를 1순위로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귀한 경험이니까요!
* 본 글은 ‘루닛케어’에서 주최한 암 극복 글쓰기 공모전 ‘아이캔세이’ 출품작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출품작에 대한 모든 권한은 ‘루닛케어’에 귀속되었으며, 브런치 게시는 상업용도가 아닌 개인 소셜 채널로 문제가 되지 않음을 확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