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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더미 Aug 18. 2021

귤과 똥의 관계

천기저귀 세탁하기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한 이후 똥이 딱딱해지면서, 기저귀 관리가 쉬워졌다. 똥 기저귀가 있으면 변기 위에 똥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양옆을 잡고 위치를 정한 후 뒤집으면 덩어리진 똥이 물에 퐁당 떨어진다. 기저귀에는 똥의 흔적만 약하게 남는데 손으로 조금 비비면 누가 똥을 쌌냐는 듯 새하얀 기저귀로 돌아간다.   

  

똥 기저귀 황금기가 몇 달 계속되면서 주위에서 기저귀 세탁이 어렵지 않냐고 물어보면 천기저귀 세탁이 왜?라고 대답할 정도로 세탁이 어렵지 않고 그냥 천기저귀도 제법 편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기 낳고 얼마 안 되어 신랑에게 응가 기저귀를 애벌 빨래해 달라고 하니 갑자기 얼굴에는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라텍스 장갑을 끼고 화장실에서 애벌빨래를 했다. 임신 중에 신랑이 기저귀 세탁을 해주겠노라 약속을 해주었음에도? 그 모습을 보고는 “그냥 기저귀 세탁은 내가 할게.” 말해버린 뒤로 아직도 내가 기저귀 세탁 담당이다. 말은 신중해야 한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태양이의 똥은 똥이라고 하기는 어색한 ‘응가’에 가까운 액체 같은 물체였다. 기저귀에 착 달라붙어 있어서 똥을 털어낼 수가 없어 그냥 말 그대로 손으로 손빨래를 한 후 저녁에 소변 기저귀와 함께 세탁기를 돌렸다. 그 때는 또 응가를 찔끔찔끔 자주 싸기도 해서 정말 응가빨래가 일이었다.     


그렇게 아기가 응가를 할 때마다 애벌빨래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이유식을 먹고 점점 똥이 덩어리지기 시작해서 똥 기저귀 치우는 것이 굉장히 쉬워졌다. 그냥 변기 위에 기저귀를 뒤집으면 똥이 변기 속으로 툭 들어간다. 이 때 물이 변기 밖으로 튀지 않게 또 조심해서 변기 안쪽까지 옮긴 후 뒤집어야 한다. 그 기저귀를 그냥 세탁실로 옮겨서 조금 남아 있는 똥의 흔적만 지운 후 과탄산소다를 푼 물에 담근다. 그러고 저녁에 소변기저귀, 똥기저귀를 모아서 세탁기로 세탁한다.     


그렇게 예전에 힘들었던 똥 기저귀 애벌빨래 시절을 잊고, 아 천 기저귀 사용도 별거 아닌데~ 생각이 들 때쯤이다. 신랑에 대한 나의 사랑에서 시작된 일이다. 여름인데 과일가게에서 때아닌 귤을 팔았다. 원래 제철 과일, 국내 과일 위주로 구매하는데 귤을 좋아하는 신랑이 생각나서 귤을 조금 샀다.      


그런데 신랑보다도 아기가 먼저 귤을 달라고 했다. 한 개 먹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계속 귤을 달라고 하고 한 번에 5개도 먹었다. 다 먹었는데도 자꾸 부엌에 와서 귤을 찾고, 없다고 해도 달라고 울고불고. 결국 또 귤을 샀다. 왜 이렇게 좋아하나 먹어보니 내가 먹어도 진짜 달다. 아기가 좋아하고 가공식품도 아닌 과일이니 많이 먹으면 좋지 않나 싶지마는 이렇게 많이 먹여도 되나 생각이 든 것은 똥 때문이다.     


귤을 많이 먹고 난 뒤에 똥이 너무 변했다. 완전히 딱딱하지도 않지만 동그랗게 뭉쳐있는 귀여운 찰흙 같은 똥에서 질퍽하게 기저귀에 축 달라붙어 있는 응가로 변한 것이다. 뒤집어서 털어도 변기에 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엉덩이에도 미끌미끌하게 달라붙어서 몇 번을 씻어도 잘 씻기지 않는 응가다. 그렇게 똥 기저귀와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이 응가는 냄새도 심한 느낌이다. 배설물은 건강의 척도가 아닌가!? 귤의 양을 제한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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