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엄마의 천기저귀 사용기
결혼 전 나는 물걸레보다 물티슈가 깨끗하다고 믿었다. 혼자 사는 작은 집에서 물티슈를 뽑아 얼른 청소를 해치웠다. 그렇게 절약한 시간은 신기하게도 항상 의미 없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름도 모르는 연예인 가십 기사를 읽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랬던 내가 천 기저귀를 빨고 있다. 그것도 기꺼이. 천을 자르고 재봉을 하여 만든 기저귀를 사용한 지 2년이 넘었다.
산후조리 기간에 똥 처리는 남편의 몫이었다. 그는 고무장갑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기저귀를 빨았다. 뭐 저렇게 오버하나 싶긴 했지만 신생아 똥은 미끄덩한 액체와 고체 사이 물질이었다. 기저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다. 일회용품 사랑꾼인 남편이 내 의견에 따라 천 기저귀를 빨아주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헉 이게 뭐예요? 천 기저귀!?”
내가 천 기저귀를 꺼내면 엄마들은 대화를 멈추었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2020년을 사는 1020년대 고려 사람이 된 거 같았다. 따지고 보면 천 기저귀는 백 년 전에도 있었고 일회용 기저귀는 나온 지 오십 년도 안 되었는데 왜 일회용 기저귀가 떡하니 기저귀의 정석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천 기저귀는 만드는 것도 쓰는 것도 번거롭다. 일회용 기저귀는 클릭 한두 번에 오고 쓰자마자 버리면 그만이다. 이 편리함 때문에 1983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일회용 기저귀가 터줏대감인 체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편리함을 알기 전 다른 이야기를 먼저 알아버렸다.
나는 평소 종량제 봉투도 잘 쓰고 분리수거도 열심히 했다. 쓰레기를 정확히 분류하여 수거함에 내놓는 것으로 나의 책임은 다한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분리수거로 배출한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30%가 되지 않으며 나머지 플라스틱은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이미 지구가 소화할 수 있는 용량을 넘긴 쓰레기들은 바다 위를 떠돌다가 태평양에 모여서 섬을 만들었다. 이 쓰레기 섬은 대한민국 면적의 15배 크기이다.
당장 모든 쓰레기를 없앨 수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 보기로 했다. 물티슈 대신에 걸레를, 일회용 팬티 라이너 대신에 천 라이너를 들였다. 걸레를 사용하는 것은 불편했지만 천 라이너는 기대 이상이었다. 곧이어 절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화장실 휴지를 없애고 면 와입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계속해서 물티슈를 사들이는 것을 보면 답답했지만 일단 나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기저귀는 고민할 것도 없었다. 국내에서 매년 소비되는 일회용 기저귀의 양은 무려 20억 개에 이른다. 아기 한 명이 기저귀를 떼기 전까지 사용하는 기저귀는 5,000개 이상이다. 내 아이가 일회용 기저귀 안 쓴다고 저 숫자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리는 없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천 기저귀를 쓰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안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었다. 천 기저귀를 사용하면 쓰레기도 없고 화학물질 걱정도 없다. 일회용 기저귀는 처음 발명되었을 때처럼 외출할 때나 비상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기저귀 밴드 더 살 필요 없어~ 기저귀 위에 그냥 팬티 입혀.” 천 기저귀로 나를 키운 친정엄마는 종종 꿀팁을 던져주었다. 주변에는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나라와 전 세계 언니들(오빠도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언니였다)이 남긴 경험을 전수받을 수 있어 외롭지 않았다.
소창 두 필을 재단 후 재봉틀을 돌려 일자형(전통방식) 천 기저귀 30개를 만들었다. 온몸이 먼지로 가득했지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소창은 사용 전에 푹푹 삶고 말리기를 서너 번 하는 정련 과정이 필요하다. 정련이 끝나면 빳빳했던 소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러워진다. 흡수력도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아진다.
정련으로 변하는 소창이 꼭 나 같았다. 회사생활 7년 동안 물티슈, 니트릴 장갑 등 일회용품을 사용하면서 나는 효율과 위생에 철저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나에게만 신경이 뻗어있는 뻣뻣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일회용품으로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가십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느니 시간이 들더라도 걸레와 기저귀를 빨면서 단정하게 살아가는 삶이 더 좋아졌다.
기저귀를 삶아 빨고 털면서 내 안의 묵은 먼지들도 날아가길 바랐다. 세탁을 끝낸 기저귀를 햇볕에 소독하듯 말리면 내 마음까지 맑고 정갈해졌다. 아기가 천 기저귀를 사용할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내게는 태교 이상이었다. 다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은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기저귀를 빨고 말리며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미리 만들어둔 소창 기저귀를 사용하다가 아기가 기기 시작하면서 일체형 기저귀를 사용하게 되었다. 일체형 기저귀는 고무줄과 고정장치가 달려있어서 채우고 벗기기 쉽다. 몇 달 쉰 재봉틀을 꺼내 알록달록한 일체형 천 기저귀를 만들었다.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저귀야!”, “와, 나 기저귀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어!” 아기가 잠이 들면 내 방에서는 작은 미싱 공방이 열렸다. 서툴기만 한 육아를 하다 잘하는 일이 생기자 삶에 활력이 생겼다.
아기가 쓰던 소창 기저귀는 내 생리대로 사용하였다. 몸에 좋다는 건 결혼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세탁의 벽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항복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천기저귀에서 쌓은 내공으로 천 생리대에 수월하게 정착했다. 보들보들한 천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역시 아기에게 천 기저귀를 사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6개월이 되자 낮잠 때는 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자다가 쉬를 하면 기저귀가 젖으니 찝찝했을 것이다. ‘이래서 옛날 아기들이 기저귀를 빨리 뗏구나.’ 축축하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 보통 쉬를 하면 기저귀가 축축해진다는 것을 천 기저귀의 단점으로 꼽지만 나는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발도르프 육아 공부를 하며 아기가 느껴야 할 감각들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기는 면 기저귀의 부드러운 촉감을 흡수해가며 무럭무럭 자랐다. 돌이 되기 전 천 기저귀가 좋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밤에는 자고 싶은 마음에 일회용 기저귀를 한 장 씩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기는 눈을 감고 있다가도 일회용 기저귀를 채우려 하면 인상을 쓰며 밀어냈다. 헉! 밀어냄의 강도는 점점 강해져서 매일 한 장씩 쓰던 치트키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당황스럽지만 기특했다. ‘너도 천 기저귀를 알아봐 주는구나!’ 이제 통잠은 글렀다고 생각했지만, 아기는 밤잠 쉬를 아예 끊어버렸다.
두 돌이 되면서 아기는 기저귀를 뗐다. 똥을 누고 싶을 때는 화장실에 가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천 기저귀를 골라서 가지고 오게 되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변기에서 똥을 누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이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천 기저귀를 한 덕분인지 아기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배변 감각을 빨리 익혔다.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기저귀를 사용하는 전 기간을 두고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기가 소변 기저귀를 빨리 떼면서 기저귀를 사용하는 기간은 1년 정도 줄었다. 배변 훈련을 하는 시간과 수고도 적게 들었다. 주변 엄마들이 기저귀를 어떻게 뗐냐고 물어보면 천 기저귀를 사용하니 아기가 알아서 뗐다는 말 외에는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기저귀에, 배변에 들어가는 총시간은 결국 비슷한 것이 아닐까.
천 기저귀를 쓰기 전까지는 명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빨리빨리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건조대에서 젖은 기저귀를 탁탁 털고 있으면 마음의 먼지가 탈탈 털리는 것 같았다. 기저귀를 척척 접으면 잡념으로 꾸깃꾸깃했던 내 마음은 착착 펴졌다. 부드러운 촉감이 내 마음까지도 어루만져주었다. 이게 바로 명상이구나! 기저귀 명상 덕분인지 쭉 가정 보육을 하면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는 천 기저귀 졸업반이 된 마당에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 제도가 팍팍 지원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천 기저귀 세탁업체를 지역별로 찾을 수 있다. 양육자가 사용한 천 기저귀를 통에 모아두면 업체에서 수거해서 세탁을 대신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도에 한 기업에서 천기저귀 세탁 서비스를 시작하였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였다.
기저귀 세탁 시스템이 적극 도입되면 천 기저귀를 사용하기 위해 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올해 4월 카페 내 일회용 컵 사용이 다시 금지되었다. 코로나로 주춤했던 일회용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정부 지원 기저귀 바우처를 전국 각지의 천 기저귀 세탁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아기를 위한 천기저귀 외에도 여성들의 면 생리대, 노인용 패드, 반려견 배변 패드로까지 서비스가 확대된다면 인간과 동물의 배변 처리를 위해 지구가 신음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요새는 하루 한 장 기저귀를 빤다. 기저귀 명상도 이제 슬슬 끝이 보인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앞으로도 많은 쓰레기를 남기겠지만 이 시절이 끝나더라도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지구를 돌보는 것은 고행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이며 오히려 여유를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지구 돌봄도 막상 해보면 즐거움이고 명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