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유 know 부남? - 10화 <결혼과 기념일>

기념일엔... 끝이 없다!

by 휴리릭

생일, 100일,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기념일이라 부를 수 있는 종류만 해도 엄청나죠. 그래도 연애할 때는 기념일이 좋고 설렜어요. 기념일을 기념하며 여자친구를 만나서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거나 선물을 주고받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도 내보고.

전 예전부터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고 해주는 걸 좋아했습니다.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군대 가는 후배를 위해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걸 만들어서 해주곤 했었죠. 대학교 때는 일단 시간이 많고, 체력이 넘쳤으니까요.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설레고 즐거웠어요. 다만 학생이라 돈이 많지 않은 때라 돈보단 정성을 기울이는 이벤트를 많이 했었죠.

하지만 회사를 다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과 체력이 예전 같지 않죠. 이벤트를 해주는 저와 이벤트를 받는 상대방이 둘 다 시간을 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구요. 마음은 있는데 그 마음을 실현하기엔 시간과 체력이 부족한 느낌? 한 번쯤 안 해도 같은 직장인으로서 이해해주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도 좀 있구요. 지극한 정성보다는 돈을 쓰는 쪽으로 마음이 조금씩 이동합니다. 내가 직접 풍선을 불기보다는 풍선 바람 넣는 기구까지 같이 사버리는 거죠.

그래도 지금 와이프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친구들까지 챙기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내 사람에게만은 최선을 다하자 생각했죠. 근데 결혼하고 나니 기념일이 많아졌어요. 결혼기념일도 있지만, 양가 부모님들을 챙겨야 하는 기념일도 있죠. 연애할 때와는 너무 다른 결혼 후의 기념일...


오늘은 그런 '기념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첫 번째 결혼기념일!


결혼하고 나니 가장 중요한 기념일은 결혼기념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는 연애 때도 챙겨줬던 거지만, 결혼기념일은 결혼을 했기에 새롭게 생긴 기념일이잖아요. 그래서 결혼하고 맞이하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은 정말 의미 있고 재밌으면서 기억에 남는 날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것이 '방탈출 카페'였어요. 밀폐된 방에 갇혀 그 방을 탈출하기 위해 방 안에 있는 단서들을 찾아 탈출하는 거죠. 저도 와이프랑 우연히 한 번 갔다가 완전 빠져들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와이프에게 직접 만들어서 해주기로 했어요. 집을 커다란 방으로 해서 각종 문제와 단서들을 집 곳곳에 숨겨두고, 와이프가 단서들을 조합해서 탈출하는 게임을 만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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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 현관문을 딱 열었을 때, 신발장에 이 종이를 깔아 두고, 본격적인 '방탈출'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와이프가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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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소품을 활용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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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위에 다음 단계를 풀 수 있는 도구(지우개)를 올려두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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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문제를 다 풀어서 탈출하면 제가 쓴 편지를 열어볼 수 있는 거죠.


집 안에 있는 소품들을 활용해야 하는 터라 컵, 노트북, 캐리어 등 쓸 수 있는 물건을 총동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 방탈출 카페처럼 힌트도 쓸 수 있게 해 줬어요. 제가 편지까지 썼는데, 와이프가 탈출을 못하면 안 되니까요. 제 힌트 덕분에 와이프는 무사히 탈출했고, 그렇게 행복한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냈습니다.


2. 결혼과 함께 불어난 기념일


결혼을 하고 나니 결혼기념일과 같은 즐거운 기념일만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였어요. 더 챙겨야 할 기념일이 꽤 많이 추가됐어요. 양가 부모님 생신, 명절, 어버이날 등. 이것만 더해도 벌써 7번입니다. 문제는 연애할 때 챙겼던 기념일에 비해서 훨씬 더 신경이 많이 쓰이고 고민이 된다는 겁니다. 선물은 어떤 걸 해야 할지, 용돈은 얼마큼 드려야 할지, 이번 달에는 회사 업무가 바쁜데 그래도 찾아뵈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양가에 동등하게 선물이나 용돈을 드려야 할지도 고민이 됩니다. 당연히 똑같이 하면 편하고 좋긴 한데, 그렇게 하기 어려운 조건들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제 본가는 지방에 있고, 처가는 서울에 있어요. 똑같이 찾아뵙고 얼굴을 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양가의 사정이 다른데 용돈을 똑같이 드리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도 한 번씩 들구요.

지출하는 돈의 규모도 달라집니다. 연애할 때는 여자친구만 이해해주면 됐거든요. 근데 결혼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괜히 선물이나 용돈을 약소하게 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자꾸 쓰입니다. 부모님께서 괜찮다고, 안 줘도 된다고 하시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늘 어렵습니다.


3. 현실적이 되어가는 우리 부부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피곤하죠. 대학교 때도 물론 레포트와 시험 때문에 바빴지만 직장 생활에 비할 건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그때는 체력과 열정이 넘쳐서 며칠 잠 조금 못 자도 괜찮았는데 직장인이 되고 연차가 올라가니 점점 더 쉽지 않더라구요.

결혼하고 한 해, 두 해 지나다 보니 신혼의 푸르름은 옅어지고, 가족의 익숙함이 짙어지더라구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기념일을 챙기는 것도 덜 하게 됐어요.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는 그런 날이 왔는지도 모르게 넘어갈 때도 있을 정도로요. 크리스마스도 편하게 보내게 되더라구요. 굳이 사람 많고 물가도 비싼 날에 나가지 말고, 다른 날 기회를 봐서 분위기를 내도 되니까요. 연인 때는 크리스마스 계획을 한 달 전부터 세우고 그랬었는데... 이젠 부부니까, 가족이니까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되더라구요.


4. 그래도 다 핑계일 뿐!


네, 맞아요. 사실 다 핑계입니다. 회사 일이 피곤하다, 내일도 할 일이 많다, 가족끼리 뭘 이런 걸 하느냐, 이것 말고도 챙겨야 할 기념일이 너무 많다... 다 핑계입니다. 매년 쓰던 편지를 한 번 생략하고 선물로 대신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더라구요. 마음을 담은 편지보다 돈을 담은 선물이 더 편하고 와이프가 더 좋아할 것 같다고 스스로 믿어버렸던 거죠.

편지를 쓰는 게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렸을 때, 매년 어버이날이면 부모님께 편지를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낯간지럽고 민망해서 안 쓰기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죠. 여자친구가 와이프가 되었을 때 설레고 좋았는데, 와이프가 가족이 되니 편하고 좋은 거죠. 편하니까 편지 대신에 장미꽃 한 송이를 줘도 괜찮을 것 같고 말이죠.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편지를 한 번 다시 써봐야겠어요.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기념일인데, 결혼할 때 마음을 되새기며 오랜만에 펜을 들어봐야죠. 근데... 편지지가 어디 갔더라... 분명 여기 서랍 어딘가에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