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휴가로 가는 인생 최고의 여행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코로나 발생 이후에 결혼을 했거나, 지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혼부부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신혼여행은 해외로 길게 떠나는 것이 기본 룰이었는데, 코로나가 이 룰을 바꿔버렸죠. 제 주변을 보면 최근 결혼한 부부들의 신혼여행은 모두 제주도이더군요. 물론 제주도도 충분히 좋고 아름다운 곳이고, 해외여행과 비교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하지만 다른 선택권이 전혀 없이 어쩔 수 없는 제주도행을 해야 하는 신혼부부를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오늘 글은 코로나 발생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 저의 신혼여행을 되돌아보며 작성한 글입니다. 다른 친구들의 해외여행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계획을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웠는데, 그럴 수 없기에 제 신혼여행을 추억하며 몇 글자 적어보려 합니다.
1. 인생 최고의 시기, 인생 최고의 여행
결혼을 하면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회사에서 휴가를 준다는 점이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받을 수 없는 공짜 휴가를 받는 거잖아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8일의 결혼 휴가를 줬어요. 연차를 이틀만 더 쓰면 2주간 신혼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거죠. 직장 다니면서 2주를 통으로 쉬는 것이 쉽지 않은데,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은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공짜로 긴 휴가를 얻을 수 있는 거죠.
게다가 결혼을 준비하고 신혼여행을 갔다 오는 기간까지는 돈을 참 많이 쓰는 시기입니다. 과하지 않게 평균만큼만 준비한다고 해도 돈이 꽤 많이 들죠. 그 몇 달 동안 제 인생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결혼 준비하는 후배들한테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해요.
"결혼 준비하는 건 진짜 카지노 안에 있는 것 같아. 돈이 돈이 아니라 칩이야 칩. 10만 원이 분명 적은 돈이 아닌데 결혼 준비할 때는 별 거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니까? 그냥 칩 하나 더 얹는 느낌?"
제가 신혼여행 호텔을 예약하는데 돈 10만 원을 더하면 호텔 방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고 하더라구요. 별생각 없이 오케이 했어요. 그땐 돈이 칩처럼 느껴지던 시기였고,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아서 그냥 오케이 해버렸죠. 그리고 신혼여행 다녀온 다음 달 카드 명세서를 보고 깜짝 놀랐죠. 10만 원을 추가하는 것만 생각했지 처음부터 호텔 가격이 이렇게 비쌌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비싼 방에서 내가 잤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잠을 조금만 자고 더 즐겼어야 했는데...라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죠.
2. 갈등의 요소는 널려 있다.
신혼여행 가서 싸우고 왔다는 신혼부부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회사에서 주는 공짜 휴가를 받아서 돈도 평소보다 걱정 없이 많이 쓰는데 왜 싸울까요? 저도 결혼 전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됐었는데,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가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충분히 싸울 수 있겠구나...
갈등은 보통 장소 선정부터 시작될 수 있어요. 크게 보면 휴양지로 갈 것인가 아닌가. 신혼여행은 평소 여행과는 다르잖아요. 휴가도 길고, 돈도 많이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 명은 평소에 가기 어려웠던 곳을 가보고 싶어 할 수도 있어요. 도착까지 20시간이 걸리는 쿠바로 신혼여행 다녀온 제 친구가 대표적인 예죠.. 하지만 다른 한 명은 휴양지에 가서 편하게 쉬고 싶어 할 수 있어요. 결혼 준비하고, 결혼식까지 하느라 너무 지쳤으니 고급스럽게 쉬고 싶은 거죠. 휴양지에서 멋진 풍경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충전을 하면 가장 행복할 것 같으니까요.
부부의 성향이 다르다면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 있어요. 여행 중에도 음식, 선물 구입, 돌발 변수 등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요소가 참 많습니다. 결혼 전에 여행 성향이 맞았던 커플도 신혼여행은 다를 수 있어요. 원인 중 하나는 피곤함일 수 있습니다. 특히 결혼식 당일에 바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그럴 수 있어요.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 지우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장시간 비행에 환승까지 해버리면... 평소라면 웃어넘길 수 있는 것도 피곤하니까 더 짜증이 나는 거죠. 그리고 결혼을 했으니 이제 네 돈이 아닌 우리의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노르웨이로 신혼여행 갔는데 한 병에 5천 원이나 하는 생수를 열심히도 먹어대는 남편이 너무 꼴 보기 싫었다는 친구도 있었거든요.
3. 신경 써야 할 것들
신혼여행이기에 챙겨야 할 것들이 있죠. 마냥 신나서 여행만 하기는 어려워요. 양가에 드릴 선물, 축하해준 회사 동료들 선물 같은 걸 사야 할 것 같거든요. 무엇을 사야 하나, 누구누구 줘야 하나 이런 것들 고민하는데 시간을 또 써야 하죠.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목록을 만들어서 잘 정리해뒀으면 좋았겠지만, 결혼식 하는 것도 정신없는데 이런 것까지 미리 챙겨두기 쉽지 않죠. 그래서 결국 여행 가서 목록을 만들게 되는데 혹시 빠뜨린 사람은 없을까 자꾸 신경이 쓰인단 말이죠. 그래도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신 고마운 분들이니까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타려고 공항에서 대기하는데 갑자기 제가 놓친 사람이 생각나서 면세점에서 극적으로 초콜릿 선물을 샀던 기억도 납니다.
4.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니 다시 현실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결혼을 했다는 실감이 그때서야 제대로 들더라구요. 신혼여행 동안에는 아직 연애하는 것 같고,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것 보느라 못 느꼈거든요. 근데 이제 한국에 도착하면 각자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이 같은 집으로 가는구나, 내가 진짜 결혼을 했구나, 옆에 앉은 이 여자가 내 와이프가 되었구나 이런 현실감이 확 왔어요.
그리고 슬픈 사실도 있었죠. 내일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구나... 이제 공짜 휴가는 끝났구나...ㅎㅎ
다음 달에 결혼을 앞둔 후배가 저에게 결혼식 사회를 부탁한다며 제 집 앞까지 찾아왔었어요. 코로나 시국이라 집 앞 벤치에서 1시간 정도 이야기 나누고 헤어졌네요. 예전 같으면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나누고, 결혼식 사회는 어떤 식으로 볼지 논의도 하고 그랬을 텐데... 결혼을 앞둔 후배 커플은 결혼식 때문에 코로나를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단계라 이 정도 만남밖에 가지지 못했습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제주도로 간다고 하더라구요. 다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다 보니, 제주도 호텔 가격이 엄청 비싸서 슬프다는 말과 함께요. 평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인데 선택할 것이 별로 없어 씁쓸해하는 후배 커플을 보며 결혼 선배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비록 제한된 신혼여행이지만, 후배 커플이 공짜 휴가를 마음껏 누리고 신혼의 푸르름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고 오기를 바라며... 저는 결혼식 사회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