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사랑이야기&개사노트
짧은사랑이야기&개사노트
한 때 작사가를 꿈꿨던 적이 있었어요.
무언가를 쓰는 걸 좋아했지만, 글 쓰는 것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시를 읽는 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시를 써보려고 하면 한 글자도 쓰기 어려웠어요.
노래를 듣고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장르는 제한적이었죠. 슬픈 발라드를 특히 좋아했거든요. 남중, 남고 시절에는 느낄 기회가 없었던 노래 가사를 대학교에 가서 사랑이란 걸 해보고 느낄 수 있게 됐죠.
이별을 하고 나면 노래 가사들은 하나같이 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제가 이런 이별을 겪을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반주만 들어도 노래 가사가 떠올라 눈물부터 나는 노래도 있었죠.
노래 가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개사하는 걸로 시작해 봤어요. 제 이별을 담아 보기도 하고, 친구의 짝사랑 스토리를 노래로 펼쳐 보기도 했어요. 때로는 저 혼자 상상으로 만들어 낸 사랑 이야기를 써보기도 했죠.
음악과 직접적인 직업을 가지진 않겠지만, 음악과 연결고리를 잘 가지고 있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 믿었어요. 하지만 제가 원래 꿈꾸던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음악과 거리가 꽤 멀어져 버렸죠. 대학교를 떠나 사회에 나오니 대학 시절의 그 촉촉했던 사랑 감정이 많이 건조해져 버리더군요. 음악 시장에서 발라드도 침체기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작사가의 꿈은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어요. 사촌동생이 작곡가로 데뷔를 했거든요. 제가 작사가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사촌동생이 저한테 곡을 하나 줬어요. 가사를 한 번 써보라고 하더군요.
그 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금요일 저녁이었거든요. 주말 내내 설렘, 긴장, 행복, 그런 수많은 감정을 가지고 가사를 한 글자 한 글자 썼답니다. 따로 마감기한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일주일을 온전히 다 바쳐 가사 초안을 사촌동생에게 보냈죠.
"와... 오빠 대단하다. 이거 가사도 많은 노래인데 언제 이걸 다 썼지?"
누군가의 평가에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이 언제였을까요... 조금만 다듬으면 되겠다는 사촌동생의 말에 꿈은 부풀고 추억은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사촌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진짜 미안한데 그 노래가 생각보다 별로여서 더 진행 안 하기로 했어."
받았다가 빼앗긴 기분이랄까요... 너무 허무했습니다. 잠시나마 꿈을 꾸게 해 준 사촌동생을 원망하지 않고 정말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슬펐습니다. 노력하면 언젠가 이뤄질 거라 막연한 기대만 하던 일이 정말 코 앞까지 왔다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심지어 그 뒤에 사촌동생은 더 충격적인 말을 했어요.
"내가 한 번 해보니까 생각보다 가사를 쓸만하더라고. 그냥 앞으로 가사는 내가 쓰려고."
그렇게 사촌동생은 싱어송라이터가 되었고, 저는 작사가의 꿈은 길을 잃었습니다.
<아름다운 구속>(김종서), <벌써 일년>(브라운아이즈), <나의 연인>(임창정),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버즈) 등의 노래를 작사한 한경혜 작가님이 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책이 있어요. 노랫말 뒤에 숨어 있는 사랑 이야기들을 담은 책입니다.
저도 작사가가 되면 언젠가 이런 책을 써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럴 기회가 찾아오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여기 브런치에라도 제 작사 노트를 꺼내 가끔씩 써보려고 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버린지 한참인 지금, 그때를 추억을 떠올리고 적어보는 게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오래전 시절의 감성이라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기억을 가끔씩 기록해 보려 합니다. 하루하루 현실을 살아가는데 급급한 지금, 때로는 감수성 넘치던 그 시절을 뒤돌아 보려고 합니다. 그 노래와 추억을 연료 삼아 다시 달려보려고 합니다.
혹시 아나요? 미래의 언젠가 사촌동생이 저에게 작사를 의뢰해 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