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아빠와 아들이 밀착하는 시간입니다

父子의 시간

by 휴리릭

"아들, 산책 갈까?"

산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아들은 바로 신발장으로 향합니다. 아들은 걸음마 단계를 지나 걷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부쩍 밖에 나가는 걸 더 좋아합니다. 아들의 산책은 대부분 제가 담당합니다. 저도 아들만큼이나 집에만 갇혀 있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죠. 집 안의 두 남자가 산책을 나가면 와이프는 잠시 자유시간도 갖고, 아들의 요리를 여유 있게 합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목을 가누기 시작할 때부터 부자(父子)가 함께 하는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성장에 따라 산책의 모습은 조금씩 바뀌었죠. 저와 아들에게 산책이 주는 의미도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1. 생후 120일 - 바람은 최고의 자장가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제대로 된 산책을 나간 것이 아마 생후 120일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이 그즈음 목을 가누기 시작해서 아기띠를 했을 때 조금 안심이 됐거든요. 아직 너무 어리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하기에는 무리였던 시절이라 주로 집 앞 산책을 많이 했습니다.

아기띠 속에 아들을 편하게 자리 잡게 해 주고 집을 나섭니다. 아들은 밖에 나오면 세상이 신기한지 처음에는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 쳐다봅니다. 여름이라 밖에 나와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아들을 보며 웃어주거나 멀리서 말을 걸어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가까이서 인사 나누고 했을 텐데 거리를 두고 인사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었죠.

사뿐사뿐 걷다가 15분 정도가 지나면 어느새 아들은 잠이 들어있습니다. 집에서 아들을 재울 때면 항상 힘이 들었는데, 신기하게 밖에 데리고 나오면 잠이 드는데 딱 15분이면 충분합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포함한 세상의 많은 것들이 아들에게는 자장가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그렇게 잠든 아들을 데리고 천천히 30분 정도를 더 걷습니다.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이렇게 산책으로라도 운동을 대신하면서 저도 바깥바람을 쐬는 거죠.

이제 집에 들어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립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아들은 거짓말처럼 눈을 뜹니다. 밖에서는 수많은 소음들 속에서도 그렇게 잘 자더니, 엘리베이터의 '땡' 소리 하나에 잠이 깹니다. 집에 와서 아들을 아기띠에서 내리고 나니 제 상의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그늘 위주로 걸어 다녔는데도 여름은 여름인가 봅니다. 그래도 상쾌하게 샤워를 합니다.


아빠에게 산책은 아들과 몸과 마음을 밀착하여 보내는 시간이었고, 아들에게 산책은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세상 구경이었을 것입니다.


2. 생후 200일 - 유모차는 포근해


200일 정도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유모차 산책을 시작합니다. 아기띠를 하기에는 이제 아들이 꽤 무거워지기도 했고, 유모차를 태우면 산책의 가능 범위가 훨씬 넓어져서 좋습니다. 산책을 나가기 위해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면 어느 정도 자세를 잡습니다. 유모차를 타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요?

유모차를 끌고 나와 아파트 근처를 돌아다닙니다. 아직 200일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과격한 유모차 주행은 피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아들에게 세상을 충분히 음미할 기회를 줍니다. 유모차 안에서 보는 세상은 또 다른 느낌인지 아들은 고개를 두리번두리번하며 여기저기 구경을 합니다.

하지만 유모차에서도 20분 정도가 한계입니다. 유모차를 밀다가 뭔가 느낌이 묘하게 바뀌었다는 생각에 확인을 해보면 어느새 아들은 잠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유모차를 눕혀서 아들이 편하게 잘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여전히 집에서 낮잠 재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 신기하게 유모차에 태우면 세상 쉬운 게 아들을 재우는 것입니다. 아들이 자면 저도 잠깐 자유시간을 가집니다. 걷는 것을 잠깐 멈추고 그늘 아래 유모차를 세워두고 저는 잠깐 게임을 한 판 하거나 웹툰을 봅니다.


아빠에게 산책은 아들을 재우고 갖는 짧지만 짜릿한 자유시간이었고, 아들에게 산책은 가장 포근한 침대에서 꿀잠을 자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3. 생후 365일 - 본격적인 세상 탐험


돌이 지났지만 아들이 아직 걷지 못해서 산책은 여전히 유모차와 함께 합니다. 대신 아파트 근처를 벗어나서 근처 공원이나 하천까지 산책의 범위를 넓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더 넓고 새로운 걸 알았는지 아들은 전에 비해 세상과 더 적극적인 교감을 시작합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지나가다가 아들을 보고 인사를 해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예전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아들이 이제는 가끔씩 그 인사에 반응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마스크로 가린 얼굴 때문에 아들은 무의식 중에 불안함이나 무서움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다가도 강아지가 가까이 다가오면 급 조용해집니다. 겁이 많은 건 저를 닮았나 봅니다.


아빠에게 산책은 아들과 세상을 이어주는 수단이었고, 아들에게 산책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동물과 하는 눈빛 교환이었을 것입니다.


4. 생후 15개월 - 두 발로 누비는 세상


아들이 태어난 지 15개월이 지나고, 아들은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더 적극적으로 본인이 즐겁다는 신호를 제게 강하게 보냈습니다. 아들과 집에 같이 있다가 제가 쓰레기라도 버리려고 신발장으로 가면 아들은 저를 졸졸졸 따라와서 같이 데리고 나가 달라고 졸라댑니다. 물론 아직 말이 아닌 표정과 행동으로 말이죠.

집 앞 놀이터에 아들을 내려놓으면 잠깐의 탐색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놀이터를 누비고 다닙니다. 형들, 누나들이 노는 모습을 빤히 구경하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나뭇잎이나 돌멩이를 만져보기도 합니다. 개미를 손가락으로 졸졸졸 따라가 보기도 하고, 정말 신이 나면 그네를 잡고 엉덩이를 흔들기도 합니다.

가끔 너무 적극적인 누나의 스킨십(?)에 아들은 당황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4살 된 누나가 갑자기 아들에게 다가와서 "너 머리카락이 솟아있네. 완전 귀엽다!"라고 말하며 아들의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아들은 그 상태로 얼음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들 손을 잡고 괜찮다고 말해주니 그제야 얼음땡 상태가 되더라구요. 그래도 전에 비하면 사람과의 소통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지나가는 할머니의 안녕에 손을 격하게 흔들어주기도 하고, 강아지가 보이면 강아지에게 다가가기도 합니다. 아들이 겁이 많은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개미에게도, 강아지에게도 적극적은 소통을 시도합니다.


아빠에게 산책은 처음으로 아들을 품에서 떼어 세상에 내려놓는 일이고, 아들에게 산책은 태어나 처음 스스로 세상에 내딛는 걸음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2020년생 아기들은 인류 탄생 이래 바깥세상을 가장 보지 못한 아기들'이라고요. 코로나가 집어삼킨 세상에 아기를 내보낼 수 없어 최대한 집에서 키울 수밖에 없는 슬픈 2020년이었죠. 2021년도 벌써 절반이 끝나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긴 터널의 끝은 쉽게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끝나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놀이터에서 마음껏 숨 쉬고 세상을 느끼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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