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위해 미리 라섹을 했습니다

안경이 없는 육아

by 휴리릭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칠판 글씨가 조금 흐릿하게 보이더라구요. 부모님께 말해서 바로 안경을 맞추러 갔습니다. 칠판 글씨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은 사실 핑계에 가까웠고, 실은 안경을 써보고 싶었거든요. 안경을 쓰면 뭔가 더 지적으로 보일 것 같다는 환상이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후 시력은 급속도로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안경 없이는 살 수 없었죠.

여행을 갈 때나 운전을 할 때, 스포츠 경기를 할 때 항상 여분의 안경을 챙겼습니다. 안경이 없으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졌으니까요. 샤워를 마치고 거울 속에 비친 안경을 벗은 제 모습을 봤지만, 큰 차이를 못 느꼈습니다. 시력이 안 좋아서 잘 안 보였기 때문이겠죠. 뽀얀 수증기도 거들었을 것이구요. 제 얼굴을 굳이 자세히 보고 싶지도 않았구요.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기 6개월 전, 라섹 수술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1. 결심의 이유


라섹 수술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육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안경이 주는 귀찮은 일들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미 20년 이상 썼기 때문에 일상이 되어버려서 거기에 대한 불만이나 불편은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안경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아기가 새벽에 울면서 깬다면 나는 안경 없이 그 상황에 바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아기가 커가면서 내 안경을 자꾸 잡아당긴다면 이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몇 년 동안 물에 들어간 적이 없지만, 나중에 아기가 커서 수영장을 간다면 어찌할 것인가?'


일단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와이프가 도와주면 된다 라는 쉬운 답이 있을 수 있지만, 늘 와이프가 옆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친구들도 육아 선배로서 적극 권해줬습니다. 아무래도 안경을 쓰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면서요. 육아를 시작하면 아침에 눈을 떠서 시계를 바로 볼 수 없는 것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 될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아기가 태어나면 저를 위해 돈을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목돈이 들어가는 일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서둘러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라섹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 그래, 하자!


그래서 안과를 찾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병원이 너무 많다는 거죠. 감기 같은 것이 아니라 눈을 수술해야 하는 거니까 아무 병원이나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주변 경험자들에게 후기를 듣고 안과를 찾아갔어요.

수술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데,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제 눈의 눈물 양이었죠. 눈물 양이 0이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수술은 가능하다며 위로해주시는데 뭔가 마음이 더 건조해짐을 느꼈습니다.

라섹 수술은 바로 회복이 안 되기 때문에 회사 업무와의 일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죠. 저는 그 시기에 마침 팀을 옮기게 되어 전보다 더 편한 팀과 좋은 팀장님을 만나다 보니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위해 돈을 쓰기로 결심했지만, 막상 견적을 들으니 한 번 더 망설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한동안 정말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3개월 할부로 결제를 했습니다.


3. 라섹수술 후 부작용과 효과

저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겪는다는 야간의 빛 번짐 같은 부작용은 없었어요. 대신 시력이 회복되는데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수술하자마자 바로 잘 보였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저는 정말 시력이 천천히 올라오더군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살짝 뿌옇게 보이다 보니 초조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때도 티비는 훨씬 잘 보이더라구요. 아기 태어나면 티비 볼 시간도 거의 없다는 생각에 티비를 참 열심히 봤습니다. 옆으로 누워서 티비를 보려면 항상 안경이 눌렸는데, 그런 게 없으니 정말 편하고 좋더군요. (그렇게 누워서 손흥민 축구 경기를 열심히 봤던 그 시절이 그립...) 라섹 수술 3개월이 경과한 후에 결국 시력은 1.0까지 올라왔고, 어느 순간부터 안경 없는 생활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쓰던 안경을 벗으니 제가 봐도 제 인상이 확실히 달라 보이긴 합니다. 특히 라섹 후 몇 개월 안 돼서 코로나가 터지면서 마스크를 쓰게 되니 인상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도 마스크 쓰고 있는 저를 한 번에 못 알아보셨을 정도니...ㅎㅎ


4. 그래서 결국 육아에 도움이 됐나요?


제가 안경을 쓰고 육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비교는 해볼 수 있겠죠. 결론적으로 라섹을 한 건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생아 시절에는 아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다 보니, 저 역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퇴근 후에 집에 와서 다시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기와 와이프를 챙겼습니다.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안경부터 찾으려고 했으면 시작이 늦어졌겠죠.

아기가 크면서 아빠를 인식하고 제 얼굴과 몸을 종종 만집니다. 가뜩이나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물어뜯고, 입으로 가져가는데 안경도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기랑 눈높이를 맞추고 다가가면 안경에 손이 먼저 나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 얼굴에 스크래치는 기본이었겠죠?


다만, 육아에는 큰 도움이 됐으나 다른 장점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라이브로 제대로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네요. 아기가 깨어있을 때는 당연히 못 보고, 아기가 잘 때는 저도 졸려서 잠이 든 경우도 많았습니다. 스포츠도 계속 봐야 더 재밌는데, 중간에 갑자기 보려니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있구요. 하이라이트 영상이라도 재밌게 보기 위해 결과를 미리 보지 않고 하이라이트 영상을 재생하는 스킬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연기됐던 유로 2020이 시작했다는데... 오늘 새벽엔 라이브로 시청하는 걸 한 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금요일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