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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Aug 12. 2021

도쿄올림픽과 김연경, 그리고 연경홀릭

올림픽은 연경홀릭!

 드디어 도쿄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1년 미뤄지면서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올림픽은 올림픽이었습니다. 티비를 틀면 가장 먼저 무조건 스포츠 채널부터 보는 저에게 올림픽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육아와 회사 때문에 라이브로 시청할 수 있었던 경기는 많지 않았지만, 아들을 재우고 재방송으로 많은 경기들을 봤습니다. 올림픽 시작할 때부터 대부분의 자유 시간을 올림픽을 시청하는데 쓰다 보니 당연히 브런치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다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후다닥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많은 경기들과 선수들이 화제가 되었지만, 저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명 깊은 경기는 여자 배구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 여자 배구를 열심히 보고 관심이 많았던 제게 이번 올림픽 여자 배구는 가장 중요한 경기 중 하나였습니다.

 김연경 선수는 오래전부터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청소년대표부터 시작해서 34세인 올해까지 국가대표를 해왔으니, 은퇴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죠. 김연경 선수의 오랜 팬으로서 저는 그 어느 종목보다 관심 있게 여자배구 경기를 봤고, 결과적으로 저는 이번 여름 행복했습니다.


지인에게 선물 받았던 2019 여자배구 국가대표 사인볼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세계 최고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못하는 것이 없다는 거죠. 공격을 정말 잘하는 선수는 대부분 수비가 약합니다. 수비를 하는 대신 공격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죠. 소속팀에 집중하느라 국가대표 경기를 소홀히 하는 선수도 있죠. 하지만 김연경 선수는 공격, 수비, 파이팅, 리더십까지 다 됩니다. 중학교 시절까지 키가 크지 않아서 공격수로 활약하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수비와 기본기 등을 탄탄하게 만들어두었고, 고등학교 때 키가 폭풍성장하면서 완성형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하죠.

 김연경 선수는 심지어 서브도 잘 넣습니다. (지난 국내 리그 서브 1위가 김연경 선수입니다.) 게다가 예능감까지 있죠. 원래 세계적인 선수는 안 웃기거든요. 메시가 예능에 출연한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잘 안 되죠? 하지만 여자배구의 메시인 김연경 선수는 예능감까지 장착한, 말 그대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거죠. <나 혼자 산다> 프로그램에 다시 출연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연경홀릭 그리고 대위기


 한 때 스타벅스 어플에서 사용하는 제 닉네임이 '연경홀릭'이었습니다. 작년 6월, 김연경 선수가 이번 올림픽을 위해 고액의 연봉을 포기하고 국내 리그로 돌아오겠다는 뉴스를 보고 난 후, 제가 원래 사용하던 스타벅스 닉네임을 '연경홀릭'으로 바꿨습니다. (참고로 '연경홀릭'은 김연경 선수 팬카페 이름입니다.)



 한 때 전 세계 여자배구 선수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던 선수가, 아무리 전성기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10억이 넘는 돈을 포기하면서 국내 리그로 돌아오는 것을 결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은퇴 직전에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우리나라에서 하겠다고 돌아오는 경우는 봤어도, 아직 선수 생활이 몇 년 남은 상황에서 오직 올림픽을 위해 이런 결정을 했다는 사실이 제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리그 복귀를 통해 여자배구 흥행은 물론 우리나라 대표팀 실력의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엉뚱하게도 쌍둥이 자매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연경 선수의 마지막 올림픽인 만큼 최강의 전력을 구성해도 모자랄 판에, 이 폭력 사건으로 인해 여자배구는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주전으로 뛰던 2명이 동시에 사라져 버렸으니 전력 약화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게다가 김연경 선수와 쌍둥이 자매는 한 팀에서 뛰고 있었기에, 같은 팀에서 미리 호흡을 맞춰두면 올림픽 때 훨씬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우리나라는 올림픽 직전에 있었던 국제대회인 VNL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둡니다. 고작 3승을 거두며 16개국 가운데 15위를 차지한 거죠.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것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죠. 새롭게 선수를 테스트하고, 최종적으로 누구를 올림픽에 데려갈지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베스트 전력으로 경기에 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우울하고 비관적인 전망이 담긴 기사를 계속 내보냈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선수들을 테스트했습니다. 오직 김연경 1명만 도쿄올림픽 엔트리로 확정되었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2021.7.31. 도쿄대첩


 2021년 7월 31일, 남자 축구 8강전, 야구 미국전, 여자 배구 한일전이 동시에 열렸습니다. 지상파 3개 채널에서는 축구를 중계했고, 채널이 1개 더 있는 KBS에서 야구를 중계해줬죠.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스포츠 케이블 채널에서 해주는 여자배구 한일전을 봤습니다. 다른 예선 경기였다면 고민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일전이고 8강행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기에 놓칠 수 없었죠. 결과는 아시다시피 극적인 우리나라의 승리였고, 그 경기를 라이브로 본 사람이 승자였죠. 

 사실 제가 배구를 봐야 하니 오늘은 아들을 재워달라고 와이프에게 부탁을 했었거든요. 아들을 재우다가 같이 잠이 들어버린 와이프가 나중에 경기 소식을 듣고 저에게 왜 안 깨웠냐며 뭐라 하더라구요.ㅎㅎ 5세트에 들어갈 때 깨울까 생각도 했었는데 4세트 끝나고 화장실 다녀오고 타는 목을 축이느라 물 한 모금 마시니 5세트가 시작하길래 와이프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잊어버렸다는...

 김연경 선수가 올림픽에, 그리고 메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이유 중 하나는 2012년 뼈아픈 패배에 있습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우리 여자배구는 4강까지 갔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게 패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거든요. 그 당시 김연경 선수는 전성기 실력이었고(실제로 득점왕, 그것도 2위 선수와 40점 이상 차이가 나는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죠), 멤버 구성 또한 매우 탄탄했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동메달 결정전 상대가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이었으니까 더 그랬겠죠. 그래서 김연경 선수는 우리나라 실력으로 어렵다는 걸 알지만, 이번 올림픽에 후회 없이 마지막으로 뛰겠다고 말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별 예선에서 일본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일본과 경기를 하게 되었죠.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중에서 2012년 런던올림픽을 김연경 선수와 함께 뛴 선수는 양효진, 김희진 선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도 2012년 일본에게 당했던 뼈아픈 패배를 영상으로 충분히 많이 봤을 겁니다. 그리고 김연경 선수의 불타는 의지를 함께 느꼈겠죠. 마지막 5세트 12대 14로 지고 있었을 때, 한 명이라도 경기를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길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는 투지가 가득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방송 3사의 해설 위원들 역시 그 누구보다 한일전 승리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KBS 한유미, SBS 김사니, MBC 황연주 해설위원 모두 2012년에 김연경 선수와 함께 올림픽을 출전했던 선수들이기 때문이죠.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선수들



마지막 세트는 무조건 우리가 승리한다. 왜? 마지막이니까...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승리를 거둔 나라가 케냐, 도미니카공화국, 일본, 터키(8강)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랭킹이 낮은 케냐(24위)를 제외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우리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세트스코어 3-0으로 이긴 케냐전을 제외하고 나머지 경기는 모두 3-2 풀세트 경기로 승리하였습니다. 우리 팀은 마지막 세트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일본과의 경기는 정말 마지막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경기였죠. 12-14로 지고 있던 경기를 16-14로 이기는 기적을, 그것도 상대팀의 심장인 도쿄에서 그 기적을 보여줬습니다.

 경험과 기억이 참 무섭고 위대하죠. 마지막 세트에 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에, 터키와의 8강 전에서도 마지막 5세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0-10 동점인 상황에서, 막내급인 박은진 선수가 강력한 서브를 2개 연속으로 넣었고, 상대의 리시브가 흔들리자 김연경 선수가 다이렉트 공격을 통해 연속 2점을 가져왔습니다. 서브를 넣을 때 박은진 선수는 얼마나 떨렸을까요? 하지만 박은진 선수는 알았던 것입니다. 5세트를 이길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간절하고 집중력이 좋은 서브를 만들어 낸 거죠.

 위기는 또 한 번 찾아왔죠. 14-11로 앞서고 있다가 연속 2점을 내줘 14-13이 되었습니다. 1점만 더 내주면 듀스가 되는 상황이었죠. 우리나라는 마지막 작전 타임을 불렀고, 카메라는 줄곧 김연경 선수를 보여줬습니다. 김연경 선수는 "하나만"을 외쳤죠.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고, 모두가 예상했습니다. 김연경 선수에게 공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알았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이 경기를 끝낼 것이라는 것을요. 김연경 선수의 첫 공격을 터키 선수들이 어렵게 받아서 우리 코트로 넘겼지만, 두 번째 공격까지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또 마지막 세트를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간절하다. 저도, 당신도, 김연경 선수도.


 10억 명 중에 1명 있을까 말까 한 선수를 우리나라는 보유했고(대한민국은 김연경 보유국입니다!), 그 선수가 마지막 올림픽을 치릅니다. 김연경 선수와 절친인 김수지 선수, 2012년 런던올림픽을 함께 뛰었던 양효진 선수에게도 이번 올림픽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실제로 그들은 절친이라고 하죠. <나 혼자 산다>에 함께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사실 팀 스포츠에서 한 명이 독보적으로 뛰어날 때, 그 선수로 인해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김연경 선수는 우리 팀을 김연경의 팀이 아닌, 김연경이 있는 팀으로 만들었죠.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한유미, 양효진, 김연경, 김사니, 김수지 선수


 김연경 선수는 리더였지만 튀지 않았습니다. 리더였기에 필요한 순간에는 나섰습니다. 리더로서 이겼을 때는 겸손했고 상대에게 위로를 건넸습니다. 리더로서 졌을 때는 상대의 승리를 축하해주고 인정했습니다. 리더이기 때문에 감독과 더 많이 소통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팀을 만들었습니다.


 김연경 선수를 롤모델로 생각하고 배구 선수의 꿈을 키웠을 후배 선수들(팀 막내인 박은진 선수는 2012년 올림픽 때 14살이었습니다.)에게 김연경 선수의 이런 모습은 큰 자극을 줬을 것이고, 김연경 선수의 절실함이 그대로 전해졌을 것입니다.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절실했기 때문이죠. 작전 타임 때면 김연경 선수가 "후회하지 말자"라고 자주 말합니다. 그 말에 그녀의 절심함이 가득 묻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지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절실하다고 해서 모두가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고, 매번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중에 절실하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요? 8강 경기가 끝나고 펑펑 울던 터키 선수들만 봐도 알 수 있죠. 하지만 절실하지 않다면 애초에 기적이 생길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을 것입니다. 절실함이 가득하다 보면 때로는 기적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우리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보았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선수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해본 것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합니다. 그럴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피곤하고 다음 날에도 영향을 미치니까... 결과가 좋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안 좋은 결과에도 핑계를 대기가 좋으니까요.

 '난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결과가 안 좋을 뿐이야.'

 덕분에 체력은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치열하게 무언가를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있었습니다.

 언젠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그 어떤 일이 오면 그때 정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조금씩 준비하고 싶습니다. 김연경 선수도 경기가 끝났다고, 경기가 없다고 노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다음 경기를 위해 늘 준비하고, 여전히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연경홀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김연경의 어록들


 김연경 선수와 관련된 어록들 몇 개 적으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김연경팀 세터는 참 쉽다. 그냥 김연경에게 공을 올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김연경이 다 알아서 처리한다."


 "우리는 김연경의 기술적인 면을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그녀가 경기 중에 자신의 팀을 하나로 끈끈하게 모을 수 있는 능력, 이런 리더의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 것이라 할 수 있다."

(핑, 중국 국가대표 감독)


 "서브, 리시브, 디그, 이단, 스파이크, 블로킹, 연타, 백어택. 안 되는 것이 무엇인가?"

(미국 NBC 중계진)


 "우리는 우승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김연경 같은 선수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빅토리아 라바, 前 프랑스 국가대표 센터)


 "얼굴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세계 No.1 김연경)

 

 김연경 선수가 은퇴하는 그날까지 아프지 않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연.경.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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