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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Apr 07. 2021

영어 듣기가 문제라면, 듣기부터 하지 마세요.

[Jeff는 제프가 아니다 Part1]

사례 1.

직장인 A씨: 저기.. 조 선생님, 제가 사실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조약돌: 아, 네~ 그러시군요. (속으로, 무슨 맥락으로 이런 말씀을?)
직장인 A씨: 제가 독해는 자신 있습니다. 매일 영자신문을 읽어요. 그런데, 도무지 리스닝은 안 되네요. 영작이나 스피킹은 중학교 문장도 어렵고요.
사례 2.

고등학생 K군: 저 고민이 있어요. 수능 모의고사 듣기에서 최소 4개씩 틀려요. 듣기 틀린다고 그러면, 다른 애들이 다 비웃어서 말도 못 하겠고요. 어떻게 해야 귀가 뚫릴까요? 스크립트 보면, 다 아는 내용이거든요. 근데, 자꾸 놓쳐요. 어쩌죠? 듣기 문제집을 많이 풀어 봐야 할까요?


위의 대화는 실제 내가 수업을 하면서 만났던 사례들이다. 첫 번째 사례는 직장인 A씨의 고민, 두 번째 사례는 고등학생 K군의 고민이다. 두 사례 모두, 피상적으로 살펴보면 같은 고민처럼 보인다. 스크립트를 보면 아는 내용이지만, 막상 영어 듣기가 안 된다는 고민이니까. 그러나, 조금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




리스닝이 안 된다고 무작정 리스닝부터 하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리스닝이 안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배우는 학습자들은, 주로 현상에만 집중한다. 가령, 많은 영어 학습자들은, 리스닝이 안 되면 리스닝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피킹이 안 되면 말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렇게 현상에만 집중하는 학습자들의 경우, 만약 듣기가 힘들다면, 안 들리는 이유가 영어의 발음, 강세, 억양, 연음 법칙 때문이라고 판단을 한 후, 이를 교정하는 데에만 노력을 쏟기도 한다.




물론, 순수하게 발음이나 연음 법칙만의 문제로 안 들리는 경우도 있다. 사례 1에 등장했던 직장인 A씨의 경우가 그러하다. A씨께서 갑자기 본인의 S대 학벌 이야기를 하셔서, 잠시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는 생각을 했으나, 곧 이분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어 보니, 이 분은 학창 시절부터 수년간 주로 텍스트 위주로 공부해 오신 분이었다. 텍스트 위주로 공부해 온 세대들은, 대부분 청취를 힘들어한다. 왜냐? 이 단어가 어떻게 소리 나는지 들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또한 내 입으로 발음해 보지 않으면, 안 들릴 확률은 더 높다.


사례 2의 고등학생 K군은, 스크립트를 보면 알겠는데, 듣기로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얼핏 보면, 사례 1과 비슷한 케이스로 보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다. 고등학교 수능 수준의 듣기는 한 문항당 정답률이 평균 92.5%(2021년 수능 기준, M사 통계 활용)에 이를 정도로, 정답률이 높다. 대부분의 학교나 학원에서도 듣기 수업을 따로 배정하지 않거나,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수능 듣기 평가에서 감점이 되는 학생들은 속으로만 끙끙대는 경우가 많다. K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다행히 먼저 시험지를 들고 와 상담을 요청해왔다. K는 본인의 문제가 듣기 능력의 부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K는 독해 속도가 많이 느리다. 텍스트로 쓰인 글을 읽는 데에도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하물며 듣기에서야 어떠할까. 수능 듣기 평가의 속도가 아무리 실제 원어민 화자들의 대화 속도에 비해 느리다고 한들, 독해 속도 자체가 느린 학생들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귀로 들어온 정보의 내용을 미처 처리하기도 전에, 다음 정보들이 밀고 들어온다. 문제는 또 있었다. 간신히 듣고 나서, 답을 찾기 위해 영어로 된 선지를 읽고 있을 때, "딩동~ 15번."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 버리는 식이다. 14번에 해당하는 지문을 듣고, 선지를 읽고 있는데, 다음번 지문인 15번의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15번의 앞부분을 또 놓친다. 이렇게 되면? 14번, 15번 다 놓치게 되고, 도미노처럼 모든 문제들이 무너진다.

 



리스닝이 안 된다면, 무작정 리스닝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물론, 무작정 들으면 언젠가는 귀가 뚫릴 수도 있겠으나, 굳이 그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쓸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까? 크게 3개의 케이스로 분류해 보겠다.


1. 순수하게 sound가 파악이 되지 않는다면?


답변 1-1.

짤막 짤막한 일상 회화에서, 혹은 TV series 등을 보다가, 영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먼저 내가 발음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인지 확인해본다.


스크립트를 보면, 분명히 아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듣기에서는 놓친 경우라면, 영어의 강세(stress), 연음(linking), 발음(pronnunciation) 등의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강세라고 할 수 있다.


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발음해야 하는 '음절 박자 언어(syllable-timed language)'인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내용어(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에 강세를 두어 발음하는, '강세 박자 언어(stress-timed language)'이다. 따라서, 영어에는 단어 내에서의 강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내에서도 강세를 주어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 단어 강세문장 강세가 모두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어린 시기에 영어 소리에 대한 노출이 있었던 아이들은, 이런 음운론적 지식에 대한 학습 없이도 자연스레 영어의 리듬감 및 강세에 대한 감을 터득해 발화한다. 반면, 학창 시절 텍스트 위주로만 공부한 채, 성인이 된 분들의 경우에는 소리 노출만으로는 모국어의 발화 방식과 다른 언어 체제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면, 더더욱 본인의 입으로 직접 발화해 보고 연습해 봐야 한다. 눈으로는 텍스트를 보는 동시에, 귀로는 원어민 화자의 음성을 들으며, 형광펜 등을 이용해 텍스트에 강세를 표시해 가며 입으로도 따라 해 본다. 


답변 1-2.

또한,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이라 할지라도 원어민 화자에 따라서 발음의 패턴이 다양하다. 쭉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영어 공부를 해 왔다고 가정했을 때, 대다수에게 가장 친숙한 억양은 북미권 화자의 발화 음성이다. 조금 더 나아갔다고 쳐도, 영국 억양, 그중에서도 Queen's English 또는 Received Pronunciation(약어 RP)이라고 하는 포쉬 악센트 정도까지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만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접해 보지 않은 억양은, 실전에서 자칫 외계어로 다가올 수 있다. 일례로, 영어 그림책을 읽어 주는 해외 사이트들이 많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다른 플랫폼에, "그림책을 읽어 주는 이 영상도 참고해보세요." 하고 유튜브 링크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인도네시아에 근거지를 둔 유튜브 채널이었다. 그 그림책 영상을 듣고, 어떤 분께서 "이 영상에서 읽어 주는 사람은 베트남인의 발음인가요? 너무 어색해요."라고 다. 내 입장에서는 그 음성이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기에 소개한 것이었지만, 영미권 화자의 억양에만 익숙한 분들의 경우에는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만약, 하나의 억양에만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다면, 혹은 직장 업무 등의 문제로 본인이 다양한 화자의 발음에 익숙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양한 화자의 팟캐스트 및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수용 가능한 발음의 폭을 넓히는 듣기 훈련을 해본다.


2. sound가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독해 속도나, 독해 능력의 문제였다면?


독해의 문제로 듣기가 안 들리는 경우는, 짧은 대화체 형식보다는 < 긴 대화체 형식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경우보다는 < < 혼자서 하는 긴 이야기(monologue) 형식에서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주로, 시험 영어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맞닥트리는 문제이다. 토익, 텝스나 토플 등의 장문 듣기 유형에서, 정신이 유체 이탈을 했다고 고백하는 케이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본인은 듣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독해부터 해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은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면 아는 내용'이라는 것이 그 주장의 근거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눈으로 읽어 내려가며, 실시간으로 의미 파악을 할 정도의 독해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같은 지문을 듣기로 들려 주었을 때 실시간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나마 텍스트로 접할 때는, 설령 실시간으로 의미 파악이 되지 않았을 지라도,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두고 곱씹었기에 '눈으로 보면 아는데, 귀로는 들리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이때는,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동시에, 의미가 이해될 수 있을 정도까지, 독해 실력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한다.


가령, 위의 사례 2에 등장한 K의 경우 역시, 듣기 훈련에 앞서, 독해 훈련을 해야 했다. 힘들고 고된 과정일지라도, 실시간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우선되어야 함과 동시에, 소리에 대한 훈련도 병행해야 한다. 물론, 독해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기에, 단기적 처방전으로는, 듣기 평가를 실시하기 전, 문항의 영어로 쓰인 선지를 미리 읽어 두도록 했다. 이 방법으로, K는 일정 부분 듣기에서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3. sound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독해 실력도 문제가 없는 것 같다면?
모든 연음 법칙을 공부해도 적용이 안 되는 것 같다면?


딸아이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마이 리틀 포니>라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있다. 다음은 <마이 리틀 포니> 속 대사의 일부이다.


마이 리틀 포니 공식 채널


가령, 1:20초 부분에서, 이렇게 들렸다고 치자.

What of you done with the elements of harmony?

분명히 위와 같이 들렸다.


그러나,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바꿔 생각한다.

What have you done with the elements of harmony?


/h/의 음가가 들려서, of를 have로 바꾸어 적은 것이 아니다. 단,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have로 바꾸어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What of you done with~? 는 문법적으로 비문이고, 영어 문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have p.p형태로 바꾸어야만, "너 ~ 어떻게 한 거니?"라는 문장이 성립한다.


이를 파악할 수 있으려면?


다음 셋 중 하나이다.


i) What have you done with~? 의 형태를 많이 접해서, 당연히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것을 알거나,

ii) 영어의 기본 문형에 대한 학습이 탄탄해서, of + p.p는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는 문장, have p.p는 문법적으로 옳은 문장 임을 알거나,

iii) 앞의 두 경우(i+ii) 모두이거나.


즉, 우리는 모든 사운드가 들려서 의미 파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의 기본 문형에 대한 이해, 문법적 지식도 듣기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 have의 /h/가 들려서 들은 것이 아니라, 문법적 지식이 듣기의 구멍을 채워주기도 한다는 점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끔 나는 우리나라 프로그램을 보고 들을 때, '과연 내가 저 소리를 다 듣고 이해하고 있는 것는가?'라는 질문에 의도적으로 집중하기도 한다. 한국어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놓치는 부분이 많다. 굵직굵직한 대화 내용을 놓친다는 것이 아니라, 뭉개져서 들리는 음성들에 대한 얘기다. '청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원래 인간 사회의 대화란 수많은 축약, 군더더기, 연음 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백 퍼센트를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 화자의 대화이기 때문에, 안 들리는 부분도 우리의 문법적 지식이나, 관용어구에 관한 지식으로 그 차이(gap)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 리스닝이 안 된다면, 리스닝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물론, 순수하게 음운론적인 문제들, 즉 영어의 강세(stress)나, 연음(linking), 억양(accent), 혹은 화자마다의 다른 사용역(register)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라면 이 부분에 대한 친숙도를 키워야겠다. 그러나, 그 이상의 레벨로 갈수록, 사실은 영어 문형에 관한 지식, 연어(collocation)라고 하는 짝꿍을 이루는 표현들, '독해력 + 실시간 정보처리속도' 인한 청해의 어려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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