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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 Jul 10. 2020

행복의 순간


이상한 날이다


시끄러운 벨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평소 기상보다 20분이 늦어진 시간이었다. (*퇴사 전 이야기입니다.)

한껏 더워진 날씨 탓에 샤워를 미룰 수 없어서 늦은 와중에도 샤워를 했다. 그 때문에, 시간은 더 늦어졌다. 바쁘게 뛰어나가 버스를 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시간은 없고, 배차간격은 넓고... '내릴까? 말까? 늦는다고 연락할까? 말까?' 그 짧은 순간에 과장 조금 보태서 57563개의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간 적이 있었나...)


겨우겨우 회사에 도착해 근무를 시작하는데, 일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때 나는 영상편집을 진행 중이었는데 얼마나 집중했는지,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을 때 내 오른쪽 눈에 실핏줄이 터져있었다. 불쌍한 내 눈. 좋은 영양제 한번 못 챙겨주고... 흑... 


어찌어찌 업무가 끝나고 퇴근을 하는데 해가 길어져 아직 날이 밝았다. 하...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아까운 날이군. 오빠에게 연락을 해 바로 전철을 탔다. 그리고 우린 잠실나루 역으로 갔다.


그곳엔 가까운 한강이 있었다.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한강. 돗자리를 펴고 누울 수는 없었지만 운동복을 입고 시원하게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실나루 역에서 내려 그 길을 보러 가는 와중에도 곳곳이 참 예뻤다. 위에 지붕이 있는 긴 육교를 지나는데 노을이 질듯 말듯한 하늘에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자연 그러데이션이 되어, 보는 눈이 즐거웠다. 우리가 간 시간이 황금시간대였는지 전문 카메라 장비를 들고 풍경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갔다 대고 찍기만 해도 예쁜데 저 사람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일부러 시간 맞춰와도 보기 힘들만한 경치와 그것을 함께 즐겨줄 사람이 옆에 있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보정 1도 안 했는데 나오는 색감


이상한 날이다. 아침부터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한쪽이 빨갛게 변해버린 눈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안쓰러워하기도 했고, 날이 더워 온몸이 찐득찐득해서 찝찝했던 날이다. 그런데 그 수많은 시간 중에 30분이 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그 날의 내 기분이 한 번에 확 달라졌다. 행복했다. 


행복의 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상하리만큼 순간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 참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드루(@hey_dru)

사용한 사진은 @druphoto_ 계정에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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