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여름휴가를 보내고 집으로돌아왔다.누구보다 아이가 신났다. 자기 장난감을 모조리 끄집어내반가운지 인사를 건넨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침대에 눕자 아이는 침대에 코를 박으며 "집이 더 좋아!" 한다. 너도 집이 좋은걸 벌써 아는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이 아늑하고 참 좋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는 것이 여행인 것처럼 말이다.
어린아이도 안다. 집이 최고라는 것을
여행에 돌아와생각하니 코로나 이전 여행과 달라진 점이라면 자유로운 여행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선 여행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드는 숙박이다. 코로나 이전 숙박비를 생각하면 안 된다. 한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해서 비용을 더 지불해야만 예약이 가능하고, 예약이 된다고 해도 프라이빗 공간이 확보되는지 낯선 이들과의 동선까지 고려해야 해서 숙소 잡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호텔보다는 에어비엔비로 독채를 가족끼리만 사용하는 곳을 선택하게 되고, 아침에 일어나 슬슬 조식 먹으러 가는 여유의 시간은 이미 버렸다. 룸 서비스로 방에서 조식 간단히 먹고 서둘러 숙소에서 나오게 된다. 위생적으로 관리를 한다지만 뽀송뽀송 만족스러워하던 침구류와 수건 조차 사용하기 꺼려진다. 우리들의 여행은 일상의 수고스러움을 잊고, 누군가의 서비스를 받으며 쉬고 먹고 노는 것인데 숙소에서부터 식당 청결까지 평소 느끼지 못한 사소한 것들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면서 힘이 들었다.
3일 동안 묵었던 호텔은 프라이빗 로드에 여행 기간 동안 2 가족 이하로 사용자를 제안하는 곳이었다. 우리와 같은 기간 묶었던 가족은 헬기콥터를 타고 여행을 왔다. 메인 게이트 옆 정원에 헬리콥터 착육장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 주차장에 유독 캠핑카가 많이 세워져 있었다. 숙소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면 앞으로 우리도 캠핑카 하나 사서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Social distancing 안내판만 유니크 하다. 지키는 사람은 어디도 없다.
영국의 여름은 비도 잦고, 구름반 햇살반인 날이 계속되면서 환상적인 여름을 만끽하지 못해 조금 억울해하고 있었다. 팬더믹에 날씨마저 이렇게 여름은 가는구나 싶었다. 하이스트릿 나가는 것조차 두려운 시기에 어딘가 간다는 건 자신이 없어 여행은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조금 더 견뎌 보자고 달래던 나의 마음에도 한계가 온 것이다.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났던 날은 퇴근 후 나에게 건넨 남편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오늘 집에서 뭐했어?" 3개월 동안 지켜보고도 회사 다녀와서 하는 말이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감옥생활이 따로 없는 생활에 지친 나에게 할 일 없이 뭐해?라는 말로 들렸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하고 말았을 텐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당일치기라도 떠나고 싶어 짐을 대충 챙겨잠든 아이를 차에 태워 우선 남쪽 바다로 향했다. 그렇게 떠난 우리의 여름 휴가지는 영국 콘월이었다.
2017년 7월 출산을 앞두고 콘월 땅끝마을
2019년 7월 <포트 아이작> 코니쉬 크림이 유명한 곳
영국 콘월, 작년 여름에도 다녀온 곳이다. 그러고 보니 태교여행도 만삭 여행도콘월이었다. 제주도 또는 남해 여행 가듯 바다가 보고 싶으면 찾는 곳이다. 이동하며 이곳저곳 가 보지 않은 곳 위주로 최대한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바다를 찾아서 가기로 했다.이곳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낸 적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아이와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만 해보기로 했다. 쉼을 위한 휴가를 하고 싶었다.
1일 2해변 투어하며 5일을 보냈더니 5일째 집에 가잖다
영국 콘월은 웨일스 남쪽 해안지역으로 영국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과 절벽의 바닷가뿐만 아니라 드 넓은 모래사장으로 어바웃 타임(about time) 영화 촬영지로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영국 사람들은 어바웃 타임의 촬영지로 기억하기보다 버지니아 울프가 사랑한 곳, 레베카 원작 소설, 영국 출신 감독 히치콕의 고전 명작 스릴러 레베카 영화(한국 뮤지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해안가, 펜잰스 근처 뉴린은 프랭크 브램리, 월터 랭글리와 같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이기 시작해 뉴린화파를 형성하며 화가들의 천국이되었던 곳, 런던 쇼핑 템으로 손꼽히는 영국 왕실 향수로 유명한 펜할리곤스 향수 창업자 윌리엄 펜할리곤은 펜젠스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영국 콘월은 예술가 도시이자 여러 유명 인물들에게영감을 준 도시이기도 했다.
어바웃 타임 영화 촬영지 - 뉴린파 프랭크 브램리 작품 - 펜할리곤 향수 창업자
여행을 즐겼던 괴테도 영국은 시골이 아름답다고 말했다.런던, 참 멋지고 볼 것과 즐길 이벤트가 많은 곳이지만 영국에 온다면 런던만 보고 간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짧은 일정이라도 영국 소도시 여행은 반드시 계획하길 바라본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누린 것 중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콘월에서 보낸 여름이었다. 런던에서 여러 달을 보낸 후 콘월에 내려가면 시골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 세인트 아이브에서 보낸 여름은 인생 최고의 출발이었다. <버지니아 울프 - 지난날의 스케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등대로>, <파도>, <제이콥의 방>이 바로 영국 콘월 세인트 아이브스(St.Ives)를 무대로 쓴 소설이다. 이색적인 모습에 이탈리아 해안도시를 걷는 것 같고, 버지니아 울프에게도 콘월은 어린 추억과 영감을 주는 곳이었기에 콘월에서 보낸 여름은 인생 최고의 출발이라고 했던것 같다.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미술관도 땅끝 작은 마을에 미술관을 세웠을까 생각해 보면 이곳은 예술의 도시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곳이기때문이었다.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미술관과 영국의 추상 조각가 바바라 헤프워스 조각정원도 코로나로 아직 문이 닫혀 있었다. 조각공원에 들러 조각품들 사이 나무와 풀을 보며 한 바퀴 돌아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바바라 헤프워스 작품을 가까이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 TATE St.Iyes)
묘지에서 바라본 세인트 아이브 해변의 모습
바다를 감상하기 좋은 <뉴린 아트 갤러리>
테이트 미술관 옆, 바다가내려다보이는 곳에 공동묘지가 위치해 있다. 공동묘지 이런 곳에? 의아해 하지만 묘지 앞에 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소설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가 그림을그리듯 설명했던 기록 속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한 풍광이 펼쳐졌다. 이곳어딘가 버지니아 울프의 어머니가 계실 것 같고, 그녀의행복한 추억의 장소이자 추억으로 고통을 받았던 장소가 이곳이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나에게 어려운 그녀의 책이지만 여행 후 다시 책을 펼친다면 그녀의 일상적 경험으로 쓴 글을 조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금 더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었더라면 하는 후회는 있었지만 계획한 여행이었다면 겁이 나 나서지 않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집 한 채 들고 여행을 떠날 기세로 챙겨야 할 짐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콘월 여행은 올여름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어준 여행지였다.
일상에 지쳐 자기 마음 닫아 버리며 참고 견디기보다 조심스럽게 어디든 떠나길 권해본다. 떠나면 일상이 그리워지고 나의 자리가 프리미엄 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