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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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이 말(馬)의 해라 그런가. 사람들은 가끔 아무 말이나 툭 던져 놓고는, 나중에 그 말에 본인이 걸려 넘어진다. "다이어트해야지." 해놓고 치킨을 시키는 식의 귀여운 배신 말고,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 말들. 괜히 입 밖으로 나왔는데,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말들 말이다. 요즘 '말(言)에는 힘이 있다.'는 뻔한 문장이 나한테 확 와닿았다.. 예전엔 그저 좋은 글귀 정도로 넘겼는데, 요즘은 조금 무섭고, 또 조금은 고맙게 느껴지고 있다.
#1
군대에 있을 때였다. 실제 상황이 발생해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단독군장을 한 채 생활했다. 24시간 내내 긴장 속에서 경계와 수색만 반복하던 시기였기에 부대원 모두가 예민했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고요하다는 말이 이렇게 날카로울 수 있나 싶을 만큼 조용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소대장님이 갑자기 물었다.
"다들 꿈이 뭐냐"
1년 넘게 함께 지냈지만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어색하게 시작된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풀렸다. 앱을 만들고 싶다는 후임, 기자가 되고 싶다는 후임, 선생님, 간호사, 요리사, 문화 콘텐츠 제작자 등 조심스럽던 말들은 어느새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말했다.
"난 나중에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데리고 아프리카 같은 곳에 해외봉사 가고 싶다. 00 이는 앱 만들어서 후원 연결하고, 00 이는 기사 써서 알리고, 00 이는 교육하고, 소대장님은 의료 봉사하고..."
#2
경험도, 능력도 없었지만 그냥 즉흥적으로 던진 말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조금 거창해진, 그날의 허세에 가까운 말. 그 일이 있고 석 달쯤 지났을까. 전역을 앞두고 있을 때 대학 동기에게 메시지가 왔다.
"베트남 해외봉사팀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할래?"
그렇게 나는 첫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과학과 언어를 가르치는 교육 봉사, 태권무와 K-POP, 사물놀이 공연과 같은 문화 공연, 현지에서 진행한 바자회 수익금으로 의료 바우처 지원을 했고, 현지로 가기 전 활동 기금을 마련하고자 물품과 장소를 후원받아 교내 바자회를 개최하였고, 후원자의 밤을 기획해 출정식까지 열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군대에서 장난처럼 말했던 계획들을, 내가 하나씩 배우며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3
지금은 전역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날 생활관에서 함께 웃던 사람들과 그 꿈을 그대로 이루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더 잘 돕기 위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가기 위해, 경험을 쌓고 있다. 생각해 보면 시작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피곤에 절어 있던 어느 날에 툭 튀어나온 그저 공기 중으로 흩어질 줄 알았던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 말이 나를 따라다니며 길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더 나와 그 말을 믿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