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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Oct 19. 2020

6살의 사회생활

'고마운 친구'의 생일파티

사회생활 신고식

첫째가 괌에서 처음 학교를 입학했을 때 같은 학년에 한국인은 우리 아이가 유일했다. 돌멩이 하나로도 깔깔거리며 신나게 놀 수 있는 귀여운 6살들이었지만 낯선 친구+영어를 전혀 못하는 친구에 대한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담임선생님께서도 굉장히 무뚝뚝한 성격이셔서 첫째는 그 어색함의 시간을 홀로 메꾸어야 했다. 짓궂은 아이들도 몇몇 있었는데 그들은 아이를 '똥기저귀'라고 놀리거나, 땡볕 아래에서 무한 술래를 반복시키기도 했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는 처음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든(술래든, 괴물이든, 심지어 똥이든!) 행복해했다. 6살 아이에게 혼자 있는 것은 굉장한 고역이기에, 말도 안 통하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 놀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겐 깊은 안도감이었겠지.


"엄마! 친구들이 내가 grrrrrrrrr 하고 괴물 소리 내면 되게 좋아해. 계속하라고 하면서 막 도망가. 근데 왜 내가 친구들을 잡았는데도 나는 계속 잡는 사람이야? 나도 너무 더워서 좀 쉬고 싶었는데 또 괴물 하라고 해서 계속했더니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오늘은  친구들이 나랑 잘 놀아줬어!"


목이 다 쉬고 얼굴은 벌게져서는 웃으며 이야기하는 첫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같이 웃어주었지만 마음은 참 슬펐다. 감사하게도 친구들에게 참 인기가 많았던,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아이에게 이 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웃고 있는 아이의 마음속도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여 참 미안했다.


'괜히 숲학교를 보냈나봐...'

'영유(영어유치원)를 보냈어야 했어...'


숱한 후회로 밤새웠던 나날들 속에 엄마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영어문장을 외우게 하는 것과 이 시간 또한 흘러가길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약간 덜떨어진 아줌마처럼 아이의 친구들에게 엄청 친한 척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입꼬리가 귀에 걸리게 웃으며 말 거는 검은 긴 머리 아줌마가 좀 무서웠을 수도 있겠다. ^^;)




고마운 친구

그런 아이에게 한 친구가 다가왔다. 그 친구는 괌으로 2년 동안 파견 나온 군인 엄마를 따라 본토에서 온 친구였다. 엄마가 일을 하니 할머니께서 아이의 주양육자셨는데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친절한 말씨가 돋보이고, 6살 답지 않게 성숙한 언행을 가진 친구였다. 동시에 아주 남자답고 개구져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그 멋진 친구와 우리 아이는 금세 단짝이 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통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도 둘은 함께하면 무척 즐거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의 할머니께서 그 아이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새로 온 친구가 영어는 못하지만 너랑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라며 말 걸어보길 권유하셨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드디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 친구와 친해진 후, 아이의 사회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완. 전. 히.

아이는 다시 진짜 웃음을 찾았고,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언어의 진짜 의미를 찾았다.) 아이는 더 이상 똥도, 괴물도 아니었다. 모두가 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아이는 잡아도 잡은 것이 아닌 이상한 술래잡기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언젠가 아이에게 물었다.

"제일 좋은 친구가 누구야?"


아이는 말했다.

"제일 좋은 친구는 주원이야. 왜냐하면 주원이는 0살 때부터 친구잖아! 그리고 사실 난 친구들은 다 좋아. 같이 놀면 다 엄청 좋잖아! 그런데 고마운 친구는 딱 한 명이야."

"고마운 친구?"

"응, 고마운 친구는 Jordan 딱 한 명이야."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고마운 마음.

그리고 그것이 그냥 즐겁고, 좋고, 행복한 마음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아이가 말했다.

"나도 고마운 친구가 될 거야!"


어쩌면 작은 6살 꼬마는 우리 아이에게 '친구'라는 존재가 되어준 것 이상으로 더 큰 선물을 준 것 같다. 아이는 6살의 사회생활에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배운 것이다.




초대장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노력하는 요즘, 우리 남편은 그것을 따따따따블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에 대한 반항심으로 어쩔 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물론 진심은 아닙니다!) 굉장히 안전과 규칙에 엄격한 사람, 집 앞에(문 열면 바로 앞에) 주차되어있는 차에 갈 때도 마스크를 안 하면 큰일 나는 사람, 자가격리 2주가 규정인데 우리 가족은 4주를 격리해야 된다고 명령(?)했던 사람, 우리 남편은 정말이지 질병관리본부에서 상을 받아도 될만한 사람이다. 지난 8개월간 철저하게 자신의 인간관계를 차단해온 그에게 초대장이 왔다.


바로 Jordan의 생일 초대장.

코로나로 딱 우리 가족만 초대한다고 했지만 파티 장소가 워터파크였다. 난 당연히 남편이 거절할 줄 알았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수영장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남편은 기쁘게 초대를 수락했다. 물론 걱정이 되긴 하지만 Jordan의 생일은 꼭 축하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아마 Jordan은 우리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참 고마운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우리는 '고마운' 그 친구의 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다행히 워터파크에서도 인원 제한을 하고 있었고, 토요일에 날씨도 좋지 않았어서 일요일 수영장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커다란 수영장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던 하루. 비록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진 못했지만 우리 가족의 축복과 축하가 Jordan에게 기쁨이 되었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네가 우리 아이에게 '단 한 사람'이 되어주었듯,

우리가 너의 특별한 하루에 그런 존재였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생일 축하한다.

내 아이의 참 고마운 친구여.

Happy Birthday!




에필로그

나는 Jordan의 할머니와 단짝이 되었다. 할머니와 찐친이 되는 그런 이야기는 영화에서만 가능할 것 같았는데 마음 넓은 그분이 내 삶의 한 부분을 영화처럼 만들어주셨다. 참 고마우신 분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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