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prologue)
나에게도 '여행이 꿈이고 목적인' 낭만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한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여행지를 정했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여행의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 장학금도 받고 과외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렇게 나는 방학이면 훌쩍 떠났다. 별이 쏟아지던 록키산맥 싸구려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신혼여행의 값비싼 침대 위 하룻밤에 비할 만큼 그 시절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낭만일 수 있음은 여행 그 자체보다 그것을 꿈꾸고, 설레며, 준비하고, 그를 위해 열심히 살았던 그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엔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그랬다. 사실 나의 여행은 서점에서부터 시작했었다. 여행지를 선택하고 나면 나는 곧장 단골 서점으로 향했다. 여행책은 항상 서점의 중앙에 디스플레이되어 있곤 했다. 그곳에 서서 내가 갈 곳을 소개한 여행책들을 쫙 모아 두고 나와 여행길을 동행할 친구를 고르고 있으면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그것은 정말이지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고민해 두세 권을 골라 집에 데리고 오면 열심히 정독했다. 형광펜으로 줄도 치고, 중요한 정보는 메모도 해가며 그 친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정보로 여행 일정을 짜고, 여행 숙소도 예약했다. 비행기에 혹은 기차에 오르는 그 순간에도 그 친구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여행 내내 우리는 함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여행에 책이 사라졌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훨씬 생동감 있는 정보들이 인터넷 안에 넘쳐났다.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 그곳에 굳이 가지 않아도 이미 실제로 본 것 같은 멋진 사진들은 너무나 편리했고 심지어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곳에 친구를 사귀는 것 같은 설렘은 없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참 겁 없이 세상을 누볐던 내 인생 가장 타오르던 그 시절도 꺼져가는 모닥불처럼 점점 사그라들었다.
괌은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단다. (괌에 사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일 수도 있다.ㅎㅎ)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불과 4시간 거리라 영유아와 함께하는 해외여행에도 제격이고, 처음 해외여행을 하시는 분에게도 부담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힘 들이지 않고 부모님을 모시고 올 수 있는 곳이다. 괌은 태교여행이나 커플여행으로도,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오기에도, 온 가족의 가족여행으로도 참 좋다.
위의 이유로 나도 괌을 자주 왔었다.
비행으로도 많이 왔었고, 태교여행으로도 왔었고, 아이들과도 함께 왔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괌에 살고 있다.
(괌에 살게 된 이유를 차치하고) 누군가 나에게 괌은 너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내가 현실에 묻혀 사느라 잠시 잊고 살았던 것들을 기억나게 해주는 곳이라 말할 것이다.
그래.
나 록키마운틴에서 캠프파이어해 본 사람이지?
뉴욕에서 몬트리올까지 운전했던 사람이야!
본다이 비치에서 서핑도 했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꿈인지 생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곳.
투몬 비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볼 때,
아이들과 밤 산책 길에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별들이 유독 반짝거릴 때,
그런 평범한 순간들에서 나는 설레기도 하고 위로도 얻는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현지인이 되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 나는 여행하듯 살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과 하루하루 여행자로 설렘을 안고 그렇게 지내고 싶다.
현지인은 막상 잘 가게 되지 않는다는 바다도 자주 가고, 계란 한 더즌보다 비싼 고디바 아이스크림의 달달함에 사치도 부리면서, 매일매일 이곳의 하늘에, 바람에, 공기에 감탄하며 살고 싶다. 이곳이 익숙해져서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여행자의 마음으로 글을 쓴다.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가면 내 안에 모닥불도 다시 피워질 거란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나의 글들을 벗 삼아, 내일의 삶을 준비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살고 싶다. 낭만적으로.
그리고 조금 욕심을 내어볼까.
만약 나의 글을 읽는 분들이 괌을 여행하게 되신다면 그 여정에 이 글을 친구 삼아주시면 참 좋겠다. 그분들의 마음에 설렘이 가득 차길 바라며 함께 여행하는 마음으로 '현지인의 옷을 입은 여행자로서' 글을 쓰고 싶다.
저의 친구가 되어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