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끝과 시작
12월 한국에 도착하고, 자가격리를 하면서 강제로 발이 묶이니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욕망이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욕망
생각해보니 지난 내 인생은 항상 무언가를 하느라 바빴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질보단 양을 추구했던 '어린이'시절이랄까. 피아노를 배우면 바이올린을 배우는 친구가 보였고, 태권도를 배우면 발레를 배우는 친구가 보였다. 이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저 놀이터가 궁금했던 그 시절, 나의 발은 불이 나도록 바쁘게 움직였다. 어린이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갔을 때에도 항상 바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공부하는 시간보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저 학원에서 독서실로 옮겨 다니며 짐 싸고 짐 푸르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긴 하지만... (그 사이 분식 타임도 꽤 길었다.) 대학에 들어가선 진짜 진짜 바빴다. (그렇게 안 하던) 공부도 지인짜 열심히 했고, 운전도 열심히 했고(?), 여행도 많이 다녔고, 친구들과 수다에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꽤 잘 나가는 알바생으로 돈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을 청춘이란 시간에 열심히 투자했다. 대학 졸업 전에 취직을 해서 일을 시작했고, 새로운 환경에 집 나갔던 정신! 겨우 되찾은 직장인 3년 차에 결혼을 했고, 곧 아이가 생겼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한국 방문으로 의도치 않게 모든 것이 STOP 되면서, 또 아이들의 방학과 격리가 맞물리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욕망'은 완벽한 타이밍을 만났다.
그 욕망이 어찌나 컸던지, 욕망에 잠식되어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았다. 식욕과 수면욕과 TV욕(?)에 충실한 삶. 엄마인 내가 그렇게 살다 보니 아이들도 함께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방학을 보내었다.
가끔씩 어딘가가 쿡쿡 찔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의 양심이랄까.
딸의 양심이랄까.
아니면 아내로서의 양심이랄까.
에잇! 그래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이런 시간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역할에서 오는 양심 따위 무시해버리고 그냥 내가 갖고 있던 욕망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리고 2주 간의 격리가 끝난 후에도 그 욕망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의식적으로, 일부러 내가 일상에서 하던 모든 것들에서 잠시 손을 놓고 싶었다.
대신 일상으로(괌으로) 돌아가면 할 수 없는 것들에 집중했다. 마침 하늘에선 엄청난 눈이 내리기도 했고, 켜켜이 쌓인 눈이 나의 욕망을 예쁘고 하얗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2021년 1월 11일,
온라인 개학이지만 아이들이 개학하면서 다시 나의 역할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개학 며칠 전부터 (무슨 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꿈을 꾸고, 잠을 잘 못 잤는데 '진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잃어버린 2020년을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겠다.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뺏어간 코로나 바이러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못된 녀석을 핑계로 푹 쉴 수 있었던 것 같아 조금 비겁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덕분에 2020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편안했다.
이번 주 토요일, 동생 결혼식이 끝나고 '진짜 나의 자리'로 컴백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역할을 다 할 때 진짜 2021년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 나의 2021년은 괌에서 시작할 것 같다.
진심으로 올해는 나의 일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잠수탈 기회(?)가 없길. 온 세상에 기적이 일어나 "진정한 평안"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길. 기도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