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이 낯설다. 낯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어서 익숙해질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그는 어떤 반응이 적절한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은 전형적이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에겐 이 모습이 낯선 세계의 이방인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무미건조하게 장례식이 진행된 후, 붉은 여름의 해변, 철썩이는 파도와 어우러지는 한낮의 뜨거운 삶에 빠져드는 찰나에 친구를 위협하던 아랍인을 우연하게 살인하게 되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닷속 자유와 상반된 공간. 한 줌의 햇볕만이 존재하는 감옥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불행이 발생된 시간은 의도적이지도 않았을뿐더러 매우 순간적이었으나, 뫼르소의 삶이 타의적으로 지속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건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타인에게 삶을 갈구하지 않았다. 그는 타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듯 그저 그가 느낀 그대로를 발설하였다. 그의 말과 행동들 하나하나가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 가는 발걸음이 돼버리는 상황에서도 죽음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처럼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이었다.
뫼르소와 우린 모두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 똑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것들, 타인에 의한 종결을 앞두고도 뫼르소처럼 자신을 버리지 않을 용기가 있을까. 또한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것에 있어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란 게 얼마나 있을까.
어머니의 죽음, 총, 재판, 변호사, 배심원은 모두 뫼르소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거나 뫼르소가 아닌 사람들이었음에도 이 모든 것들이 뫼르소의 삶을 결정지었다.
삶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행하다가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건들이 발생함으로써 타의에 의해 삶이 결정지어질 때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뫼르소 또한 그저 본인 자리에서 본인의 삶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후 갑작스럽게 손에 쥐어진 불행, 자신의 의도는 무시된 채 생사를 두고 다른 이들이 벌이는 설전, 타인의 판단대로 흘러가는 재판. 마치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발생되는 우연한 불행을 애써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혹은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허무와 비애가 뫼르소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이 공동의 세계가 원하는 모습의 반대로 향하게 되기도 한다.
배척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