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고치길 참 잘했다

자신의 일이 좋은 C에게 [석수장이 아들]

by 윌버와 샬롯

구두 깔창이 떨어져서 집 근처 사거리에 있는 구두 수선 가게에 갔다. 떨어진 밑창 좀 붙여달라고 말하기가 조금은 창피해서 꽤 오래도록 그냥 그런 채로 신고 다녔었다. 역시 신발은 처음부터 비싼 걸 사야 하는데 '싼 거 사니 이렇지'하며 조금 후회도 했다. 오늘은 용기 내서 신발을 비닐백에 넣어 사거리로 나왔다. 매일 지나가기만 하고 안으로 들어가 본 건 처음이었다. 폭은 좁지만 안쪽으로 길쭉한 곳, 그 안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당장 눈에 띄는 게 선풍기밖에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사장님 C한테,

"올여름 여기서 어떻게 보내셨어요? 고생하셨겠어요."라고 물으니 C는 뭐 쿨하게,

"저기 위에 에어컨 있어요." 그러신다.

"아, 저기 위에 있구나." 하며 내가 좀 민망해하니까 C는 저기 텔레비전도 있고, 여기에는 밥솥도 있다며 기분 좋은 너스레를 떠신다. 그러시면서,


"그래도 난 이 일이 좋아요. 열쇠 만들 때도 재미있고 아주 좋아. 우리 손자가 그래요. 할아버지는 왜 냄새나는 남의 신발 고치고 그래요?, 라고 하는데 난 여기 나와서 이 일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순간 내 낡은 신발 밑창 붙여주는 사장님 일이 매우 숭고하게 보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시는 C가 괜스레 부럽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너두 너두 이담에 석수장이가 되겠수
그까짓 석수장이


나는 나는 이담에 아주 아주 부자가 되어
사냥이나 다닌다우


<석수장이 아들>은 충남 예산의 전래동요에서 따와 탄생한 시그림책이다. 묵묵히 바위를 부리는 석수장이 아버지 옆에서 아들은 자기를 놀리는 아이와 입씨름 중이다. 아이 둘이 주고받는 노래는 그림으로 되살아나 유쾌함과 생동감을 더한다. 애써 부정하던 것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버린 아들은 잘못 말했다고 멋쩍게 실토하지만 일을 마치고 땀을 닦으며 환히 미소 짓는 아버지를 보며 마음이 바뀐다.


나는 나는 이담에 석수장이가 된나누


사냥꾼보다도 구름보다도 담보다도 고양이보다도 호랑이보다도 더욱 센 석수장이가 될 거라며 아들은 처음으로 그 넓은 모자 아래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놀리던 아이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는지 손가락으로 콧속만 후비적일 뿐이다. 아이는 석수장이 아버지가 만든 돌장승을 바라본다. 뒷모습이지만 아이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우아, 멋지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지. 내내 뒷모습만 보이며 어떤 동요도 없이 돌만 부리던 장인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나서야 끝내 웃는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찌 일을 하시나 걱정했던 나 같은 속물이 그 장인들의 기품을 쫓아갈 수나 있을는지. 미용실, 세탁소, 치킨집, 옷가게, 분식집 등 자신만의 일터에서 값진 노동을 해내고 있는 모두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구두 고치길 참 잘한 것 같다. 신발장에 멀쩡하지만 조금 유행이 지나 안 신고 있는 구두를 모아서 이참에 C한테 리폼도 맡겨야겠다. 앞으로는 사거리 지날 때마다 수선 사장님도 힐끔 볼 것 같고 해 주신 말씀도 가끔 생각날 것 같다.


그대는 뭐 할 때가 행복한가. 어떨 때 재미가 있는가. 나도 그대도 우리들만의 소중한 것을 부디 찾길 바라며!

이미지 출처 : 알라딘